글쓰기 시작을 위한 30분 자동기술

이 글은 무해합니다

by 가가책방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상점 책상에 앉았는데 문득 보이는 에어컨 온도가 22도다. 어쩐지 춥더라. 이상하네 아까 23도로 올려둔 거 아니었나. 지난해 여름 3일을 비워뒀더니 원목 합판으로 만든 테이블이 둥글게 휘어진 일을 겪은 뒤로 되도록 매일 2시간 정도는 에어컨을 켜서 습기를 빼려고 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추울 만큼 에어컨 온도를 내릴 일인가 싶어 늘 24도에 맞춰두는데 리모컨을 잘못 눌렀는지 22도. 아 추워. 한 여름에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러다 냉방병 걸리겠네. 에너지는 무슨 죄야. 지구는 어떡해. 아들이 매일 걱정하는 코에 빨대가 박힌 채 발견된 죽은 거북이 생각도 난다. 어쩌다 습한 자리에 가게를 열어서 습기를 매일 빼지 않으면 물건이 못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가. 여름은 더위보다 습기가 더 불편한 거구만. 장마가 끝났다고 한 게 1주일도 더 전인데 뒤늦게 장마라던 때보다 더 많은 비가, 더 자주 온다. 오늘 밤에는 200미리가 내린다고 하던데. 별 일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생각을 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말이 되어 나오는 대로 쓰는 게 자동기술이라면 지금은 반자동 정도의 기술인가. 말을 높이는 게 맞는지, 놓는 게 맞는지. 좀 전에 말을 높였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저녁 글쓰기 수업을 앞두고 있다 보니 내가 하는 수업이 아닌데도 글쓰기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이거 좋지 않은데. 글쓰기를 생각하고 수업을 생각하고 뭘 가르치거나 뭘 배울지를 미리 떠올리다 보면 도무지 생각 없이 있을 수가 없어지는 병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 오른 손목 위쪽 근육이 벌써 뻣뻣해지는데.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했더니 손글씨까지 바라지 않고 키보드라도 원만히 두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반하네. 글쓰기가 근육과 같다는 건 이럴 때도 적용되는 말인가 보다. 자꾸 쓰고 익숙하게 하면 10분, 20분 정도는 키보드를 두드려대도 손목 근육이 경직되는 일로 신경을 거스르지 않아도 될 텐데. 아, 이게 무슨 추락인가.

한 호흡 쉬고. 커흠, 침도 삼키고 다시 시작한다. 마침 에어컨 숫자가 23도로 올라갔다. 바깥 날씨가 차건 덥건 에어컨 온도는 늘 별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데,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바깥이 더 온도가 낮은데 생각도 없이 에어컨은 에어컨대로 켜두고 있다가 갑자기 어라 하고 창문을 열고는 멍해지는 일. 바깥이 더 시원하잖아라는 생각보다 에이, 쓸데없이 전기만 낭비했네 라는 자기를 탓하는 마음. 한 걸음 나아가면 지구에게 미안하다는 일말의 양심. 그러면서도 생산된 전기는 어차피 쓰지 않으면 무한히 저장되는 게 아니라 손실되는 건데 쓰는 게 낫지 않나라는 뭔가 무지에서 시작된 느낌의 깨달음.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 경제를 지배하는 세력이란 멈추지 않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법이라 부족함 보다는 늘 약간 남게, 조금 넘치게 준비하는 게 당연해진 거 아닌가.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제는 세계가 부족함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 아닌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위안받으면서 위안받은 스스로를 혐오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또 그런 부끄러움보다 자기보다 못한 세계에 책임을 다시 묻기도 하고, 거기가 싫으면 떠났어야지 왜 그러지를 못하냐며 그들에게 책임을 돌려줌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이 없었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이라서 오래 짊어지는 일은 견디기 힘들다. 왜 티탄 누구였더라 헤라클레스한테 지구를 떠넘겼던 거인. 신 같은 존재도 그랬는데 인간이 그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건강에 이롭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 거 없고, 한 숨을 더 쉬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화분 몇 개를 내놓았는데, 내놓을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다툰다. 하나는 얘들도 비도 맞고 그래야지 하는 마음이고 하나는 누가 이거 가져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둘 다 화분을 생각하는 마음이긴 한데 고작 화분 하나 없어진다고 뭐가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하나 싶은 마음과 고작 화분 하나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뭔가 하는 마음이 또 부딪힌다. 고작 화분 하나. 가져가서 뭘 더 잘 산다고, 참 그럴 리가 없지 싶으면서도 주변에서 가끔 들리는 화분이 없어졌다거나, 꽃을 뽑아갔다거나 하는 얘기에 현실이 어지러워진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인간.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지 싶다.


손목은 좀 나아졌는데 이제 팔뚝이 단단해져 온다. 이게 무슨 아령도 아니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데 팔까지 단단해질 일인가. 전화가 왔다. 나가봐야겠다. 나를 찾는다. 드물게. 이쪽으로 오란다. 그럼 가야지.

20분, 혼자만의 기록이지만 남긴다.

별 의미 없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쓰라고. 별 일 아니어도, 별 거 아니어도, 그저 쓰자고.

첫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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