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은 없다
주말 저녁 감은 무인으로 운영하는 가게에 정리하러 들렀다. 사람들은 가게라고 하는데 감은 자꾸 공간이라고 했다. 뭔가로 채워져 있을 뿐 주인도 없고 별 의미도 없기에 공간이라며 애초에 뭘 파는지 모를 곳을 두고 가게 운운하는 게 이상한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감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질렸다는 말을 입 대신 고개로 했다. 그런 감을 두고 흘겨보던 사람들도 고개를 돌렸다. 감은 친구가 적었다.
문 앞에 섰을 때 감은 벌써 공간에 펼쳐졌을 풍경을 그려냈다. 틀림없이 사람은 없고 에어컨은 켜졌을 것이며 어쩌면 선풍기마저 돌아가고 있을 거였다. 자물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물쇠 없이 열린 걸쇠만 있고, 꺼져 있어야 할 불은 다 켜져 있는데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그야말로 지나가던 아무나 들어와서 공간을 잠시 채웠다가 비우는 일이 흔했다. 문제는 잠깐 채웠다 비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흔적을 남긴다는 거였다. 흐트러짐, 어지럽힘, 문 열림, 불 켜짐이 모두 흔적이었다. 감의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구분되는. 감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예감하며 들어섰음에도 폐허나 다름없는 테이블 위 상황을 마주한 순간 처음 공간을 만들며 꿈꾸던 마음이 쫓겨나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주말이면 늘 같은 장면과 마주하면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감은 괜스레 한참이나 더 먹은 나이를 탓했다. 요즘 사람은 아니었다. 옛날 사람은 되지 못했다. 어중간한 사람.
감은 같은 마음과 만날 가능성을 꿈꾸기도 했다.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닮은 마음이나마 스쳐지날 확률을 셈하는 게 고작이다. 마주친 적은 없지만 남겨둔 편지로 목격하는 더 많은 존재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우연이었는지 기도가 통했는지 알 수 없지만 테이블을 지나쳐서 두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감은 멈칫했다. 오디오 앞에 어지럽게 쌓여 있어야 할 엽서와 편지가 없었다. 감을 멈칫하게 한 건 사라진 엽서와 편지가 아니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엽서와 편지가 낯설고 의심스럽고 고맙지만 당황스러워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인지상정.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감도 그랬다. 어쩌면 마주치기를 포기한 같은 마음의 사람이 다녀갔을지 모르는 흔적. 적어도 닮은 마음이 스쳐 지나갔음을 기대할 수 있는 증거. 감은 가지런히 정리된 엽서와 편지를 주르륵 쓰다듬었다. 두 번, 세 번 쓰다듬었다. 처음 쓰다듬에는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 두꺼운 종이와 얇은 종이가 두루 섞여 있기에 마구 정리했다면 찢어지고 상했을 거라서. 두 번째 쓰다듬어는 놀라움이 스몄다. 자신이 정리했어도 이렇게 하려면 한참이나 걸렸을 거였다. 얼마나 오래, 천천히, 공들여 정리하고 떠난 걸까. 세 번째 쓰다듬은 그저 고마운 마음이었다. 어지러운 엽서와 편지를 외면하지 않은 고운 마음. 그 마음은 아마 테이블 위의 어지러움도 가지런히 해두었을 거였다. 테이블의 흐트러짐, 어지럽힘은 그가 떠난 뒤에 찾아온 누군가가 남겼을 거였다. 감은 마치 유적을 발굴하는 사람처럼 시간의 결을 헤아렸다. 누가 먼저고 어떤 일이 나중이었을지 가만히 가늠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게 아닌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아무리 보고 싶다고 말해도 볼 수 없는 건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없는 공간의 어지러움을 가만히 두고 떠날 수가 없어 한참이나 공들여 정리했을 손길과 마음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와서 잠시 채웠다가 비울 마음으로 들어선 이가 볼 수 있을 리가. 출구로 나가는 발걸음은 대여 섯 걸음으로 비슷했겠지만 나서는 마음은 까마득히 멀었을 것이다.
공간을 나서며 감은 같은 마음과 만날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자고 되뇐다. 오늘 닮은 마음이나마 스쳐 지났음을 확인하며. 다시 돌아오는 한 주를 넉넉히 지낼 수 있겠다는 든든함으로. 출구다.
2025. 07.19. 23.16-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