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자동기술 어쩌구
감은 소설이라고 부를 예정인 뭔가를 쓰려고 할 때마다 입구가 없는 출구가 떠올랐다. 어느 더운 날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먹고 하나는 내일 먹어야지 하면서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이 막상 먹으려고 꺼냈는데 바스락 거리는 봉지와 막대만 남았던 기억과 맥락이 같았다. 아이스크림이 왜 이 모양인가. 누가 몰래 먹고 빈 껍질과 나무 막대만 넣어두었단 말인가. 감은 혼자 산다. 그럴 리가. 살 때부터 불량이었던 건 아닌가. 더위에 벌써 기억이 혼미하지만 분명 집어 들 때의 감촉은 아이스크림 두 개의 존재감이었다. 고작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면서 검은 봉지에 담아왔던 게 문제였을까. 환경 파괴를 그만두라는 의미의 천벌인가. 감은 점점 더 본질에서 멀어졌다. 더위 탓이 분명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와서 차근차근 돌아볼 일인데 이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감은 평소 자주 하는 말을 실천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최대한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라. 따라 걸을 수 있으면 걸어보고, 되풀이할 수 있으면 최대한 천천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감은 빈 봉지를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돌아서서 발 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두 개쯤 비슷한 크기의 동그란 자국이 보인다. 뭔가 말라 붙은 모양인데, 뭘 흘렸나 하고 넘긴다.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서 문을 닫는다. 이 모든 동작을 어제처럼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하는 중이라는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두고 또 바닥을 둘러본다. 현관 앞에 있던 동그란 자국이 하나 더 보였다. 동그란 자국. 말라붙은 무언가. 영 뜬금없는 기억이지만 아이스크림을 넣어둔 저녁 주방 바닥을 밟은 발이 끈적했던 게 생각났다. 요리하다 뭘 떨어뜨렸나 하고 얼른 닦아내고 말았는데 거실에서 현관 가까운 자리와 주방 가까운 자리에서 끈적이는 걸 두 번 더 밟았더랬다. 설마 하는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감은 되짚기를 그만두고 주방으로 가서 식탁에 봉지를 올렸다. 봉지를 열고 껍질과 막대만 남은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손으로 잡아서 바스락 하는 소리와 비어있는 감촉만 느낄 때는 몰랐던 사실. 껍질은 끈적했고 막대 손잡이 쪽인지 아이스크림 쪽인지 모를 껍질의 접합 부위가 작게 벌어져 있었다. 순간 감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봉지에 넣은 후 집으로 오는 길과 현관 앞에 섰을 때, 신발을 넣을 때, 거실을 가로지를 때,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넣을 때 펼쳐졌을 장면이 한 편의 영상이 되어 그려지는 걸 느꼈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건 감도 다른 누군가도 아닌 길과 현관과 바닥. 어떤 영양도 되지 못하고 말라 붙어 끈적임이라는 번거롭고도 불쾌한 감각만을 남긴 덧없는 삶이 아이스크림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감에게 소설이라고 부를 예정인 뭔가란 아무도 먹지 않았는데 사라진 아이스크림과 입구가 없어서 들어갈 수 없는데 출구라는 결말은 있는 이야기 같았다. 봉지를 뜯지 않아서 맛도 느낌도 알 수 없지만 이미 사라진 아이스크림을 책임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시달리고 마는 것이다. 애초에 소설이라고 부를 무언가를 쓰려고 하면서 소설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키고 있는 자신에게 소설 비슷한 것이나마 쓸 자격이 있는지. 감은 답을 적지 못했다.
입구가 없는데 출구로 나가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럼 아이스크림을 껍질을 벌려둔 건 누구지. 누군가 밀봉된 아이스크림 껍질에 어떤 충격이든 사건을 일으켰으니 안에 있던 게 다 빠져나간 건데. 애초에 내가 입구로 들어갈 필요가 있나. 이미 길바닥에 다 흘러간 아이스크림인데 내가 그걸 먹을 수도 없는데 꼭 입구로 들어가야 하나. 아이스크림 껍질이 열려 있는 건 옮기다가 그렇게 됐다고 해도 봉지에 있는 구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우연의 우연. 언뜻 현실적이지 않은데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현실인 게 소설 아닌가.
감은 비로소 입구이거나 입구 비슷한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디에도 문이 없고, 어느 문도 열리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됐다. 감은 이야기 밖에 머물기로 했다. 잃어버린 아이스크림을 되찾았을 때처럼 기억날 때까지 되돌아가서 천천히 되짚어 오기로 했다. 출구는 확실히 있기에 이야기는 끝에 닿았다. 바로 여기.
2025. 0718. 12.47-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