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지지자
'이상하다', '기이하다', '낯설다', '의심스럽다', '난처하다', '곤란하다', '감동이다', '감격스럽다', '고맙다', '영광이다', 감은 자기 기분을 정의하는 표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일기를 써야 하는 시기를 견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기 쓰기를 곤란해하는 이유와 같았다. 특별히 기억하거나 기록할 일이 없다거나 괜히 기록으로 남겼다가 먼 훗날 기억조차 미래의 자신에게 오늘의 기록을 책임지게 하기 싫다거나 하는 단계 이전에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하루 혹은 그 순간의 자신을 제법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일의 번거로움과 그 기억에 남은 자기감정을 기록할 표현을 정하지 못하는 모호함이다. 독자가 자기 자신뿐인 일기조차 그랬다. 기록은 늘 책임지기를 요구했으므로 기억에 머물다 놓아주는 게 옳았다. 감은 새삼 자신이 쓰고 있는 게 일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적어낸 단어가 열 개를 넘었을 때 벌써부터 그만두고 싶어졌다. 뭘까, 이 감정은. 낯설어서 기이하게 느껴지는 어색한 고마움. 감은 어색했다. 오늘 불쑥 걸려온 전화를 끝내고 실제로 전달된 격려금과 보낸 사람과 보내는 마음 모두가 그랬다. 감은 어리둥절했다. 왜 이만큼의 호의를 자신에게 베푸는지, 스스로가 그만큼의 사람인지 의심했다. 감은 친구가 적었으므로 조건 없는 지지자의 출현이 믿기지 않았다. 의심이 많은 사람에게 세상은 매 순간 지옥이기 쉽다더니 인과응보였다.
감은 습관대로 차근차근 되돌아가기로 했다. 오늘 일어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했다. 격려금의 주인공은 손님이다. 자세하게는 손님이자 가끔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 지인이다. 손님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공간 운영자로서 물건을 납품했다. 단순하고도 명료했다. 지인으로 보면 첫걸음부터 덜컥 거린다. 기분이 좋을 때나, 새해가 밝을 무렵이거나, 오늘처럼 무더위 한가운데서 드물게, 별일 없느냐는 안부를 묻는 게 다였다. 나이도 짐작만 할 뿐이고, 가족 관계는 아주 몰랐으며, 사는 곳도 어디쯤이라더라 하는 풍문뿐이었다. 남들이 파는 가격에 같은 물건을 파는 장사꾼에게 늘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건네는 바람에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인가'하는 착각이라도 나쁠 것 하나 없는 좋은 기분을 선물 받았다. 그러고 보면 감은 늘 받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유로 취소되긴 했지만 초대도 감이 받았고, 주문도 감이 받았고, 돈도 감만 받았다. 돌아보니 감은 더 영문을 모르게 됐다.
"도대체 나는 뭘 잘한 걸까."
내가 뭐라고 이렇게 해주시는 걸까 하고 기막힌 마음에 혼잣말도 나왔다. 어디에 얘기하고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이때만큼 안타까울 때가 없었다. 친구가 적은 협소한 인간관계가 드물게 후회스러웠다.
얼마를 보냈다며 전화를 다시 걸어서는 "많지 않지만 맛있는 거 드세요."라고 했다. 감은 "아니, 뭘 정말 보내시고 그래요." 했다.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곤란해하면서 감은 기뻤다. 진정으로 고맙고 기뻤다. 오랜만에 잘했다고,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돌려받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억하고 전화를 걸고 응원에 격려를 더해 지지해 주는 조건 없는 지지자의 존재가 반너머 꺾인 마음을 일으켜주었다. 꺾인 나뭇가지라도 바로 세우고 지지대를 대고 천이라도 감아두면 회복되기도 했다. 사람의 힘이었다.
감은 오래 사람과 세상을 믿지 않고 지냈다. 믿지 말아야지 하는 삐딱한 마음이 아니어도 조금만 지켜보면 못 믿을 이유가 주르륵 드러났다. 공간을 열고서도 같은 마음과 만나지 못했다. 드물게 닮은 마음이 스쳐 지났음을 확인하는 장면과 마주쳤을 뿐이다. 감은 갑자기 미안해졌다. 마음 돌아보기의 끝에서 어색한 고마움의 이유 하나가 끌려 나왔기 때문이다.
반대였다. 감은 늘 자신과 같은 마음과 만나고 있던 거였다. 의심하고 난처해하고 곤란한 걸 피하고 싶고 낯선 걸 멀리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자신의 공간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열린 공간을 열기로 했다면 마음부터 열어야 했음에도 감은 자기의 서툰 구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드물게 마주친 조건 없는 지지자의 격려가 가져온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알아차리지 못했을 속마음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든 감이 기다리던 건 늘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듯 행동해 왔다.
빛이 어디에 있는가. 빛이 마음에서 왔다. 마음에서 오는 건 오로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거였다. 조건 없는 지지자, 이 모든 게 오해에 불과할지라도 마음에 빛이 들어왔다고 믿었다. 감은 조금 밝은 구석으로 한 걸음 옮겨 섰다. 길이 있었다.
2025. 07.20. 23.45- 07. 21.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