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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27. 2019

고사리 꺾으러 가던 날

  하선하여 연가를 즐기고 있는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넘어서며 몸이 근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동안 연가를 기다렸던 마음에 포함되어 있던 국내 여행을 아내와 함께 떠나려던 예정을 부추기는 모양이다. 


 평생을 집을 떠난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온 생활인이니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는 집을 지키며 식구들과 돈독한 유대를 제대로 확인하며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들어서지만... 


 그렇건만 함께 여행 떠나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기실 혼자만 세상을 떠 돌아 살아온 생활이 미안하여 가족과 짧게라도 함께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얽혀 들어서 인 모양이다. 하기사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일 자체가 이미 여행이므로 결국 짧게나 또는 길게 떠 도는 일로 내 생애를 채우라는 뜻이겠거니 억지 풀이하며 얼버무리기를 해본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 여행은 혼자 보따리를 싸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집 식구와 함께 하는 것이므로 훨씬 부담감 없이 그야말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기로 했다. 


 먼저 김천까지 새마을 열차로 가서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처형과 해후한 후, 그녀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이번에는 광양에 있는 처제 네로 향한 자동차 여행에 함께 들어서기로 한 것이다.


 결국 의좋은 처가의 세 자매가 만나는 행사 한가운데로 둘째로서 끼어 들은 꼴이 되었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게 된 그녀들과 그녀들의 배우자인 동서들과의 해후는 어차피 즐거운 만남으로 기대하기에도 충분한 일이다.


<고사리 꺾기> 

그런저런 과정을 거쳐 떠나게 된 이 번 여행과 방문의 목적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내 세운 타이틀이다.

아침 일찍 서울 역을 떠난 기차가 김천에 도착하여 5월 초의 한낮 따갑게 내려 쬐는 햇볕이 달구기 시작하든 역 광장으로 나서려는데, 때 아닌 풍악소리가 들리며 춤사위가 눈 안으로 들어선다.


<살아나는 김천경제 노인들도 한몫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마침 김천의 노인네들이 힘을 합쳐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일하는 데의 어려움을 돕고 싶은 마음을 표출시킨 <어버이 날 행사>의 마지막 예행연습을 진행하든 광경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여 한소끔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을 품어 머뭇거리면서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쫓기니 바쁘게 역 광장을 빠져나와 처형네와 약속한 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광양에서 고사리의 군락지를 찾아 나서려는 우리 들 앞에 나타난 첫 소식은 우리가 찾아오기 전인 어제 누군가 먼저 이곳을 도둑 방문하여 고사리 채취를 해간 사람이 있어 오늘 우리들의 고사리 꺾기 행사가 좀 차질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기다리고 있든 그 땅의 주인인 처제의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엄연히 땅 주인이 있는 사유 산림인데 그곳에 나 있는 고사리를 주인의 눈을 피해 도둑질해 갔다는 이야기에 야속하고 괘씸한 세상 인정을 욕하며 씁쓸한 입맛부터 다셔야 했다.


그러나 벼르고 벼르면서 방문한 것이니 도둑이 미처 못 꺾어 남겨진 것 중에 그나마 우리 눈에 뜨일 수 있는 걸 찾아보자며 산비탈을 오르기로 한다. 주위에 있는 나무는 밤과 감나무이고 매실이 유명한 지방답게 매실나무도 수월찮이 심어져 있는 산 중턱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처제가 먼저 와서 꺾은 고사리를 삶아서 널어놓은 모습에 그나마 위안의 마음을 가져 본다. 

이름 모를 풀꽃의 앙징스러운 작은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 렌즈를 들이 대주었다.

 풍성한 기대는 한껏 줄였으면서도 열심히 산 능선을 훑으며 찾아낸 고사리의 실한 모습에 흐르는 땀을 씻을 생각도 못하고 아내는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이제 한 달 뒤인 6월이면 우리를 다시 이곳으로 유혹하듯 불러 내릴 준비가 다 된 매실이 영글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곳에 사람들의 임시 거처를 만들기 위해 쌓아 둔 축대인 시멘트와 돌멩이 사이의 좁은 벽으로 된 공간에 서로가 이웃이라고 우기기라도 하려는 듯 돋아 오른 풀들이 자태를 드러내며 자신의 색깔을 뽐내고 있다. 

그렇듯 척박한 틈새 안이지만 푸짐한 흙이라도 남겨져 있어 그들의 뿌리가 튼실히 내려져 삶을 이어가며 이웃 간의 정을 도탑게 해 줄 수 있는 현실이 되어 주소서 바라는 마음 품으며 카메라의 눈을 대어 주었다.

 길 건너편 개울 너머 다리를 건넌 곳에 있는 이웃집 뒷산에 구름이 안개같이 찾아와 이슬비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렇게 싸리 꽃이 핀 걸로 보아 몇 년쯤 지나면 이곳에서 넓다 란 마당도 넉넉히 쓸어낼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싸리비를 엮어낼 수 있는 건 아닐까?

둥굴레 꽃의 등불 같은 꽃 봉오리가 이슬비의 물기를 이슬로 머금어주고 있다.


<여보, 이 굵은 고사리를 봐요! 이것 만으로도 이곳을 찾은 보람은 너끈히 받은 것 같네요.>

땀 닦을 생각도 미룬 채 꺾어 온 고사리 한 다발을 자랑스레 내밀며 아내의 입과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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