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수저

승선할 때, 내 수저를 갖고 타는 마음

by 전희태
090404사무실 062.jpg 선장 사무실


따지고 보면 승선하여 살아가는 기간이 내 생활의 주된 세월이었기에, 연가가 끝난 후 다시 집을 떠나 승선하러 갈 때마다 아내는 늘 준비한 내 전용의 은수저 한 벌을 그 배의 식사 때마다 사용하라며 짐에 넣어 주었었다.


나도 공동생활하는 생활이긴 해도 혼자 사용하는 수저가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하고 위생적인 일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이제는 승선 때마다 내가 먼저 챙기는 경우로 변하였다.



지난 항차에 회사로 청구했던 식기 건조기가 이번 항차 국내 기항시 공급이 되어 식당에 설치해 놓게 되었다.

따라서 식사 전에 조리수가 식탁 위에 나란히 준비해주며 수저를 놓아주던 일이 중단되고 식기와 함께 수저도 그 건조기 안에 넣어 소독해주면, 각자가 식사하러 와서 꺼내 쓰면 되는 일로 간편화 되었다.


위생적인 면이나 조리수의 일을 덜어주는 그런 모든 면에서 달라진 방법이 매우 바람직한 변화인 것은 틀림없는데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직접 수저를 식기 건조기에서 찾아내는데서 약간의 일이 생겼다.


배에는 크게 두 군데의 식당이 있다. 사관 식당과 부원 식당으로 나뉘는데, 사관 식당은 선장이 호스트가 되어 기관장과 일, 항기사가 함께 쓰는 시니어 식탁과, 2항사가 호스트가 되는 주니어 사관들이 쓰는 식탁으로 다시 두 개로 나뉜다.


물론 부원 식당도 보슨(갑판장)이 호스트가 되는 petty officer 식탁과 일반 부원의 식탁으로 갈리긴 하지만 우리나라 상선에서는 사관 식당 내 구별만큼 엄격하지는 않다.

이런 관습은 유럽 선진 해운국의 전통에서 온 것이며, 그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보다는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제 두 식당 모두에 식기 건조기가 설비되었고 식탁 사용자가 직접 수저를 꺼내 들어 사용하게 바뀐 환경에서 자신의 수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수저를 찾아내는 손길에 신경 써야 하는 한 가지 일이 더 생긴 셈이다.


아침 식사를 하려고 7시 반쯤에 식당을 찾았을 때, 이제는 당연으로 되어버린 수저를 꺼내려고 식기 건조기를 열었는데 내 수저가 보이질 않는다.


수저의 모양이나 크기가 본선에서 사용하는 회사 제품과는 제법 달라 있기에 사용하려 꺼낼 때 이미 손에 다른 감촉을 느꼈을 터인데도 그냥 사용한 후 개수통에 넣어 놓고 자리를 뜬 것이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식사를 하러 왔던 주니어 사관들 중, 한 사람이 내 수저를 그냥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돌아서서 개숫통을 들여다본다. 실제로 아침 식사에 쓰임을 당한 다른 두 벌의 수저와 함께 내 수저도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홧증에,

-요새 애들이란~ 쯧쯧.. 불만 어린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항해 중 사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기에 개숫물 통에 들어 있는 수저의 수를 보면 누가 식사를 끝내었는지 얼른 알 수 있기에 떠오른 투덜거림이다.


세 벌의 수저가 들어 있었으니 나보다 먼저 식사를 끝낸 세명을 찾으면 되는데, 그 시간에(아침 7시 20분쯤) 식사를 했을 사람은 3항, 기사와 3항사 당직을 같이 실습하고 있는 실항사일 것이다.

따져보면 오전 8~12시 당직을 위해 3항, 기사는 식사를 끝냈을 것이고, 3항사 당직시간의 실습을 배당받은 실습생도 그 무렵 같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식탁을 같이 쓰고 있는, 2항 기사는 미드나이트 당직을(00시~04시) 선 후라 잠을 잘 시간이니 통상 항해 중의 아침 식탁에서는 빠지고 있다.

또한 시니어 식탁의 1항기사(4시-8시)는 3항기사가 당직을 교대해 준 후에야 아침 식탁에 올 수 있으니 역시 아직 식사를 안 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3항기사는 내 수저가 따로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이니, 새로이 승선한 실항사가 범인 아닌 범인으로 짚이는 꼴이 된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벌려 놓은 쓰레기통의 사용이나, 개숫물 통도 초벌 씻는 곳과 마지막 씻어내는 곳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을 처음부터 훈련시켜야 하는 경우가 예전에는 거의 없었다.


씻어낸 식기를 넣어 주어야 하는 곳에 구별하여 넣지 못하고, 아무 데나 사용한 식기를 넣어주는 무감각하거나, 아니 아예 무관심해 보이는 요지음의 새로운 승선자를 위해 그런 사항을 일일이 사전 설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참 번거롭다.


그런 형편이니, 수저를 골라내어 사용해야 할 때도,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어 사용하려는 사람을 막아야 하는 교육을 안 시킨 우리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밖에 없음이다.


오늘 아침 그런 손길에 잡혀버린 내 수저가 불행한(?) 처지로 된 것이고, 나는 그런 수저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미약한 주인이 되는 건가?


개숫물 통에서 꺼낸 내 수저를 수세미를 가지고 박박 문질러 깨끗하게 닦아낸 후, 흐르는 물로 헹구어서 식탁으로 옮기며 식사 준비를 한다.


남의 수저를 함부로 사용하고 떠난 괘씸한 부하에 대해 구시렁거리는 불편한 심사만 가질 게 아니라 한 번은 이야기해서 주의를 환기시켜 줌이 옳은 일이겠지, 맘을 다독인다.


뭐 그런 쪼잔한 일로 신경을 쓰고 그러는가?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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