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 골다공증이 있는가?

파도 한방에 옆구리가 찢어지고.

by 전희태


081001(9033)1.jpg 해치코밍의 철판을 갈아 대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있는 모습.



바람은 옆에서 불어오고, 파도는 약간 뒤에서 밀어주는 형태이지만, 복합된 두 운동의 중간을 달리고 있는 우리 배가 움직이는 모양은, 그 큰 덩치에 비해서는 매우 촐랑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방에 그냥 앉아 있으려니, 힘이 다 되어 쓰러져 가려는 팽이가 받는 움직임 같은 운동으로 내 거동을 괴롭히려 한다.


몸을 바로 세워가며 아직 어둠이 덜 걷힌 갑판으로 나서서 선수 쪽을 향한다.

사실 어둠 속에 묻혀 있고 파도도 쳐 올라오는 앞쪽으로 나서려니 은근히 공포감이 생기고 겁은 나지만 내가 책임지는 배인데 겁낼 것이 뭐야! 하는 일종의 허세를 앞 세우며 나선 것이다.


이따금 휘젓는 롤링에 의해서 발라스트 탱크에 부착된 AIR VENTIRATOR를 통해 바람이 들락이는 소리가 거인의 목쉰 소리 같이, 아니 거친 숨소리 같이 쉬이-익 쉭 거리며 역시 공포의 신경을 건드린다.

통풍관 안의 BALL이 들썩거리다가 바람구멍을 막아 부딪치며 내는 ‘꽝’하는 갑판 위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실컷 인지 하면서도 가슴을 흠칫 쓸어내린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온다. 사방을 살펴가며 돌아볼 여유가 생긴 눈썰미에 5번 선창의 우현 쪽에 부착된 HOLD VENTIRATOR가 비스듬히 목을 꺾고 서 있는 걸 발견한다.

극심하게 넘어지게 만드는 커다란 롤링은 아니지만, 자주 발생하는 횡요(롤링)로 인해 발라스트 탱크를 빠져나오는 해수나 공기가 녹이 많이 끼어있는 에어벤트 내부를 계속 강타하여서 발생한 목 꺾임 사고이다.


마치 골다공증으로 인해 외관상으론 멀쩡한 사람이 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것 같은 연상을 품게 만들고 있다. 바쁘게 운항한 선박의 나이 15년이란 이력을, 사람의 생애로 비교한다면, 이미 환갑을 지나 살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나이를 가진 이 배도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각종 파이프가 터지는 것은 혈관이 막히어 뇌출혈을 일으키는 동맥 경화증과 같은 것이고 각종 보강재가 찢어지거나 금이 가는 것은 골다공증으로 인해 뼈가 쉽게 부러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새로이 신조하여 모든 부품이 새 것이고 튼튼한 상태의 배와 구석구석이 낡아서 계속 수리를 해줘야 하는 배를 구별하여 어떤 선박에 승선함을 원하는가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박을 택할까?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선(老朽船) 보다는 신조선을 애호하겠지만, 노후선이라도 늘 사람들 손이 가고, 손 때를 묻혀가며 잘 돌보아 온, 선박은 쓰임새에 있어 아직 길들이지 않은 신조선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각각에 일장일단이 있어서 선뜻 어떤 배를 타겠다고 결정하여 말하기는 그렇지만, 신조선을 인수하여 몇 년을 타다가 이 배로 왔을 때 만 해도,

-뭐 이런 배가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며 정을 함부로 줄 수 없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승선 한 달이 지난 다음 아예 책임 선장으로 되고부터는 비록 낡기는 했지만 이 배도 괜찮은 배라는 생각이 새삼 들며 이 배의 역사와 함께 그런대로의 새로운 정이 생겨 났던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위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고장으로 인한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지는 황당함만 줄여진다면, 승조원의 숫자도 많고 봉급도 신조선보다는 조금이지만 더 받아 드는, 하여간 여러 가지 면에서 괜찮은 일도 따르는 배다.


아니 그런 약한 부위는 내 먼저 점검하며 찾아내어 고장이 유발되지 않게 사전 수리해주는 게 노후선을 타는 사람의 의무요 일하는 기쁨으로 생활하면 되는 데 아무래도 일거리가 많이 생기다 보니 예정대로 하기가 힘든 점은 있다.


이번 남아공에 기항하는 두 항구 중 첫 포트인 살다나 베이(SALDANNA BAY)에서는 4만 톤의 철광석을 두 개의 선창에 나눠 싣고, 나머지 일곱 개 선창에는 12만 톤 정도의 석탄을 두 번째 기항지인 리차드 베이(RICHARDS BAY)에서 선적할 예정이다.


어쩌면 한 용광로에 들어가서 불을 내고 녹여지는 일을 행하여야 할 입장의 석탄과 철광석이지만 선적 과정에서 임의로 마구 섞이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단다.

따라서 그간 석탄만 싣던 전 선창에서 철광석을 받아 들일 두 개의 선창은 물청소를 시행하여 깨끗이 석탄 찌꺼기를 없이 하는 게 제일 큰 우선순위의 일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를 떠나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5번 창은 인도네시아에 접근하기 전에 모든 청소를 끝냈지만 나머지 한 선창인 7번 창은 해적 방지 당직을 서느라고 청소의 기회를 뒤로 미루게 했다가, 이제는 날씨가 나빠져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생각지 못한 항해 중의 변수로 인해 예정에 차질이 생겨서, 이번 항차 미리 손을 봐주려고 벼르던 발라스트 탱크의 에어벤트 점검이 늦어지면서 5번 선창의 우현 쪽의 HOLD VENTIRATOR가 비스듬히 목을 꺾고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곧 날씨가 회복되면 모두 무사히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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