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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멀미 안 하는 아내

가족이 잠깐 배 멀미하는 걸 바라는 마음도 있지.

by 전희태


DSCF0082(1411)1.jpg 동승중 자매 사선을 만나 지나치면서.



-애들한테 잠 잘 자라고 요람을 흔들어 주는 것 같아요.

어제 하루 종일 배를 흔들어 주는 너울의 수고를 아내는 그렇게 비유해 준다.

어제와 비슷한 상태로 배는 움직이고 있다. 회색 단장으로 잔뜩 찌푸린 날씨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롤링의 지겨운(?) 맛을 보여주고 있다. 복도에서 만나는 선원들마다 인사말 끝에


-사모님은 배 멀미를 하지 않으시네요.

라는 말을 모두들 덧붙인다.

-예, 괜찮네요.

라는 응답으로 아내는 배 멀미를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체질에 강한 자부심마저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당당한 표정으로 응대해준다.


예전 결혼 초기 까지만 해도 택시나 버스에 잠시 타기만 해도 차멀미를 심하게 하던 아내였기에 지금의 멀미 없이 배를 타고 대양을 항해하는 현상은 정말로 자랑할 만큼 발전한 일이다.


대부분의 동승 가족들은 배에 승선하면 벌써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가 출항하게 되면 아예 방에 들어 눕게 하는 배 멀미 때문에 남편을 따라 나온 것을 후회할 정도로, 출항 후 며칠간, 고생하는 사람들도 여러 명 보아왔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육상에서 조차 멀미로 고생을 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던 아내가 이제는 하루 종일 흔들고 있는 배에서도 멀미를 안 하는 체질로 변한 일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동승 환경을 선원 세계의 어려움을 가족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서, 선원이란 직업이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한다는 환경의 이미지를 한껏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선원들의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 일이 된 셈이다.


그야말로 쉽고 편안한 항해만을 만난다면, 우리들의 남편은 힘들지 않은 생활을 하며 돈을 버는구나! 하는 너무 안이한 생각이라도 할 것 같은지 배안에서 동승한 가족을 만날때마다 선원들은 꼬집어보듯 던지는 인사가 <뱃멀미를 안 하시네요!>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날씨도 좋고 파도도 없어 배에 충격을 가해주는 심한 선체 운동이 존재치 않는일이, 얼마나 복 받은 사실이란 것도, 뱃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무도 말려주지 않는 아니 말릴 수 없는 바다 한 복판에서의 선체 운동은 그 종류가 여러 가지이지만, 복합적인 운동일 수록 더욱 어지러움을 주는 힘든 사항이다.


선수미가 서로 반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피칭(Pitching)과, 선체를 좌우로 흔드는 횡경사인 롤링(Rolling) 그리고 이 두 가지 운동이 합쳐지어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요잉(Yawing)이란 선체 운동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런 선체 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는 알고 있기만 하고, 실무에서는 결코 심하게 경험하지 말았으면 바라는 게 배 타는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이 동승으로 같이 항해를 할 때쯤이면, 그런 파도를 잠깐이나마 경험하여, 그에 따른 선체 요동을 가족들이 느껴보면 어떨까?라고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뱃사람도 간혹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런 어려움을 제 혼자 감당하며 속으로 삭이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것 같아, 가족들도 경험하여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좁은 마음 때문에 그래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넓은 바다를 장기간 항해하게 되면 이런 선체 운동 한두 번은 꼭 만나게 되는 것이 대양에서의 현실이지만 이번 항차는 아직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또한 지금의 항로가 지구 상에서 제일 무난한 기상을 갖고 있는 항로 중 하나이니 황천을 크게 만날 확률도 희박하고, 현재의 아내 컨디션으로 봐서도 어지간한 파도가 와서 제법 선체가 흔들리더라도 꿈쩍 안 할 태세이니 여러 가지 선체 운동을 보여주며 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는 아예 틀린 것 같다.


거기에 부부가 같은 배를 타고 밤낮을 함께 항해하게 되면, 싱글로 항해하는 사람들보다 뱃멀미를 덜 한다는 우스개 비슷한 속설에 비추어 봐도 아내의 이번 항차 뱃멀미는 역시 비껴갈 소지를 하나 더 첨가받은 형편일 뿐이다.

뱃멀미를 안 하는 늠름한 아내를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한번 튕겨보는, 배 부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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