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

배에서 맘껏 소리 칠 수 있는 곳

by 전희태
DS002(3561)1.jpg 저 앞쪽 선수루에 가서 앞쪽을 향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을 때, 브리지 쪽에서는 직선거리로 200미터쯤 되지만, 그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위성전화의 벨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생각과 동작을 접으며, 얼른 방을 나서서 뛰다시피 통신실로 가는데, 브리지의 모니터로 전화 벨소리를 들은 당직사관인 3 항사도 바쁘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세 번째의 벨이 울릴 무렵 먼저 통신실에 도착한 내가 수화기를 건져 올렸다. 3 항사는 내가 통신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돌아서 브리지로 되돌아 간다.


-여보세요, D S호 선장입니다. 약간 숨찬 음성을 잔잔히 고르며 응답하려니,

-아, 여보세요. 저 OOO입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누구라는 걸 얼른 알아채겠다.

-선장님 목소리가 아주 젊게 들리는데요.

인사말 치고도 듣기 좋은 말이 이어서 흘러나온다.

-3 항사나 2 항사인줄 알았습니다. 하는 말까지 덧붙여 주면서 말이다.

우리 배를 담당하고 있는 O 감독에게서 온 전화이다.


-아! 그래요, 참 기분 좋은 소리이군요 허허....

몇 마디 더 안부와 농담을 주고 받은 후 전화 걸어온 용건에 들어섰다.


이윽고 통화를 끝내면서, 요 근래 내 목소리를 주제로 해서 들어 본두 번째 언급이란 걸 생각해낸다.

첫 번째는 지난 항차 광양에서 치과의원을 갔는데, 접수하면서 간호사와 내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던 의사가 나를 진찰하며 내 목소리가 아주 멋지고 듣기 좋은 목소리라며 칭찬했던 말이다.


순간적으로 황당하기도 했었지만 진찰 결과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좋은 상태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목소리 칭찬의 말에 수긍을 하게 된 기분 좋은 느낌을 가졌던 것이고, 또 한 번은 오늘 전화로 내 목소리가 젊은이의 목소리 같다는 농담의 말을 들은 이 일이다.

인사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이따금 위성전화를 하다 보면 목소리가 달라져 들릴 때가 많아, 그렇게 오해하게 들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뭣도 모르고 내 흥에 겨워 제멋대로 그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며 난 체 한 것이나 아닌지, 은근히 남의 말에 내 흥을 돋우며 우쭐해 보고 싶었던 맘이 났다는데 대해 떨떠름한 느낌을 지으면서도, 갑자기 바람을 쐬고 큰 목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갑판으로 나가는 계단 길로 들어선다.


맑고 푸르고 시원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는 실외로 나서니, 한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 가운데에서 찰싹 하니 뱃전을 두드리는 파도를 뒤로 보내며 작은 기우뚱거림에 몸을 맡겨줄 수 있는 갑판이 저 앞쪽 선수루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놀란 듯 갑자기 나타난 몇 마리의 날치가 뱃전을 치는 작은 파곡 속에서 솟아오르더니, 수평선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두 손 입에 모아 손 나팔 만들어, 큰 목소리로 야호! 하고 배의 앞쪽에 서서 앞을 향해 고함이라도 쳐 볼 심산되어, 선수 쪽을 향한 부지런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배 안에서 고함소리는 금기 사항이 되지만, 그곳-선수루-에 가면 어지간히 큰 소리를 쳐도 뒤쪽 하우스가 있는 곳에서는 잘 들리지 않기에 마음 놓고 소리치고 싶을 때는 찾아가 고함을 질러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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