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는 항해에 생각난 일들-3-

by 전희태


090619E7_0091.jpg 챠트(海圖)위에 ABNOMAL WAVE라는 표지가 있는곳을 지나며


인도양에서는 마다가스칼 섬의 남쪽 끝을 바라고 올라가기 시작하여 점점 남반부를 벗어나는 항로로 들어선다.


아직 남아공화국의 해변을 왼쪽에다 두고 달리는 거지만 거리상으론 많이 떨어져 있어 실제로 육지의 그림자는 볼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곳 육지가 있는 쪽 수평선 위의 밤하늘에 마치 오로라라도 떠 있는지 붉은 빛을 띠운 조명이 어두운 무대를 밝혀주듯 비쳐지고 있다. 포트엘리자베스 항이 있는 곳의 하늘 밑 부근이다. 그 빛이 아련히 떠오르는 감상을 유발시켜 준다.


아직은 내가 젊은 선장이었던 70년대 후반 무렵이었다.


당시는 인종차별이 계속되고 있었던 시절이었는데 그곳 포트엘리자베스, 이스트런던 등의 항구를 연달아 기항했던 적이 있었다.



저 불빛의 밝기만큼이나 뚜렷하기도 하면서도 흐릿하니 떠 오르는 그 기억에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깨끗하니 정돈되고 햇볕마저 아주 따사로웠던 밝고 아담한 작은 항구 도시가 배경되어 그날들의 광경이 떠 올려지는 것이다.


당시 도시의 아름다운 인상을 배반해주던 시내 곳곳에서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었던 인종차별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하얀 눈동자를 유난히 희번뜩이며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조차 아주 반항적으로 보였던 하릴없이 떼지어 배회하던 검은 얼굴의 청년들 모습에 동정과 연민과 무서움조차 품었던 기억이 젤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위치가 찾아지면서 오히려 뒤바꿔져 버린 형편이 된 이들의 오늘을 보며 인생유전을 잠깐 떠올리는 허허로움에로 생각은 넘어간다.


남아공화국에서 인종차별이 없어진 만델라 정권이 들어섰을 무렵, 석탄을 싣기 위해 리차드베이 항에 기항했을 때였다.


 그 동안에는 그곳을 기항했을 때면, 접안 즉시 짐을 싣기 전의 선창검사를 하는 것은 백인 서베이어의 몫이었는데 이번에는 수습을 겸한 흑인 서베이어도 함께 참가하여 검사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헌데 검사를 위해 해치커버를 열었을 그 당시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홀드(선창)내부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 상황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감항능력을 의심받아 선적허가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될수도 있는 일이다.


당연히 검사관은 여러 가지 원인을 찾으며 검사에 패스를 주지 않아서 애를 태우게 되었을 때, 우리가 주장한 당장 펌프를 돌려 물을 빼면 된다는 의견을 들어주며 물만 빼면 당장 짐을 실어도 된다는 검사 통과의 길을 열어준 서베이어가 있었다.


 먼저 반대했던 서베이어는 백인이었고 나중 우리의 의견을 들어준 서베이어는 흑인으로서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위세가 떨어져 버린 당시 그 백인 서베이어는 두 말 안하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우리는 흑인 서베이어의 호의(?)로 물을 빼낸 후 검사패스의 증서를 받은 후 아무 문제 없이 선적을 끝내고 이틀 안에 출항할 수가 있었다.


사회의 커다란 변혁이 가져온 희비의 뒤엉킴을 그 안에 보며, 나는 힘들 뻔한 일을 잘 넘길수 있게 된 행운에는 감사하면서도,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뜨던 그 백인 서베이어의 뒷모습 위에 백인 전용이던 해변가에서 보았던 흑인 출입금지의 팻말이 오버랩 되든 씁쓸했던 기억을 떠 올려 봤었다.


 이제 그들이 살아가는 나라는 아프리카를 선도하는 나라로 변화되었다. 예전과는 국가 위상이 달라진 모습 되어, 다가오는 월드컵 축구도 주최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면서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항사, 챠트(海圖)위에 <ABNOMAL WAVE> 라는 표지가 된 곳이 있는데 보았는가?

나혼자의 옛 기억에서 벗어나면서 당직중인 3항사에게 말을 건넸다.

-예, 봤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글쎄요, 왜 그런 표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항사는 주저주저하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알아둬라.

-그 말은 이 앞바다 수심 100패덤 정도에서 가장 빠른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AGULHAS 해류와 이곳의 계절풍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갑자기 발생하는 기상학상 이상한 너울의 이야기란다.

-그 너울의 주기가 파나막스형 배 길이와 맞물리는 크기인데 그런 너울이 기승을 부릴 때 그 파곡의 가운데로 선체가 잘못 빠져들면 배의 허리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며 침몰하는 해난이 발생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지.


열심히 듣고 있던 3항사의 표정은 이해는 하지만 믿음이 안 가는 눈치이다

-그러니 그곳을 지나갈 때 파도가 심상치 않으면 즉시 연락을 해야 한다.

-예, 잘 알았습니다. 삼항사의 시원스런 대답을 들으며,

-그럼 수고해라.

당직 상황을 다시 3항사에게 떠 맡기며 브리지를 벗어난다.


파도는 별로 없지만 배를 울렁거리게 만드는 너울이 배를 흔들어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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