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할 아차사고
며칠 전부터 알려 놓은 SHORT NAVIGATION을 다시 실시하기 위해 약속한 일요일 아침이라 브리지에 올라간다.
본선의 움직이기 위한 상황을 점검하는 과정으로 엔진 준비를 위해 기관실에 연락하였고 브리지의 텔레그라프를 3 항사가 잡아주고 있다.
준비상황의 엔진 시동을 걸어 보는 것을 지켜보는 데, 아무래도 평소 때보다 좀 길어 보이는 후진 엔진의 터닝 상황이라 느껴져서 한말 거들고 나섰다.
-너무 시간이 긴 것 아니야?.
그 시동 상황이 길어지어-너무 긴 시간 동안 엔진이 걸려 있는 상황이 되면- 원하지 않은 본선의 움직임으로 인한 돌발 사고도 생길 수 있기에 드는 걱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 즉시 기관 정지로 연락이 온다
이윽고 기관 준비가 완료된 상황을 알리며 브리지 컨트롤로 바꾸어 주려는 신호가 올라온다. 오늘 움직임을 위한 기관 스탠바이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이번에는 움직이기 위해 갑판상 준비상황을 살려보기로 한다.
그 간 열흘 넘어 닻을 내리고 있었기에 그동안 선원들이 좀은 무질서하게 선미에서 낚시질을 하였는데 그런 흔적들을 없애고 다시 잘 정리 정돈해 주었는지를 살펴보려고 브리지를 빠져나와 선미 갑판을 볼 수 있는 윙 데크 뒤쪽으로 나섰다.
특히 낚시하던 선미 쪽으로 고기들이 가까이 오도록 유도하려고 수면 상부에 내려 주었던 카고 라이트들이 아직 그대로 있는지 의심스러워 나선 것인데 좌현 쪽으로 나가서 보니 마침 전선들은 우현 쪽에다 설치해 놓았던 것이라 잘 안 보이기에 우현 쪽을 살피려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우현으로 다가가는 귓전으로 마치 산중에서 산모퉁이를 돌아들다가 갑자기 폭포수라도 만났을 때 듣는 듯한 물이 쏟아져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얼른 눈길을 아래쪽으로 돌리니 작은 해수 풀장에 물을 채워주는 파이프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지금 그곳은 임시로 물이 들어가면 안 되는 장소로 쓰고 있는데, 흰 거품을 머금은 해수가 마구 쏟아 드는 모습을 보여주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른 브리지 안으로 돌어가 기관실로 전화를 걸어 해수 펌프의 작동을 정지하도록 지시한다.
현재 풀장 안에는 윤활유 드럼통이 여섯 개나 들어 있어 만약 해수가 넘치면 약해져 있는 윤활유 드럼통 어디선가 구멍이라도 뚫릴 수가 있는 거고 그것은 바로 기름을 바다로 부어 버리는 형국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아찔한 사고 순간으로 다가온 것이다.
풀장에 물을 공급하는 해수 라인의 발브들이 누군가 열심히 정비(?)하였는지 빨갛게 페인트 칠을 해 놓은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냥 밸브를 열어 놓은 채 페인트 칠을 해서 이런 일을 발생하게 만들었다는 심증이 들었다.
잠가두어야 할 발브를 사용하는 방향으론 열어 놓았으면서도 겉보기에는 번뜻하고 잘 정비된 것처럼 보이려는 고의성 조차 보이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마치 되지도 않은 치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보려는 매소부의 속 들여다 보이는 얄팍한 화장끼 덕지 덕지한 모습이라도 만난 기분이다.
아니 이렇게 느닷없이 힘든 아차사고라를 당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치솟아 오르는 걸 억지로 참으며 우선은 이 일의 뒤처리를 위해 사람들을 수배한다.
어느새 풀장 반 넘어 차오르려던 물길이 정지한 펌프로 인해 더 이상 물이 들어 오진 않지만 윤활유가 들어 있는 5가론 들이 작은 캔 하나가 물 위에 둥둥 떠 있고 얇은 기름막도 무지개 빛깔의 모습으로 고여있는 물 위로 퍼져 나오고 있다.
우선 열린 채 고착된 발브를 손보기로 하고 고인 물에서는 유분 고착 섬유포를 사용하여 기름기를 걷어서 제거한 후 남은 물을 배수시키도록 하면서 더 이상 들어온 해수가 드럼통을 흔들어 주어 기름이 새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직접적으로 발브 조작을 하며 정비한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ABB-조타수로서 2 항사와 같이 당직을 서는 외국인 선원이 그 주인공임이 밝혀졌지만 그 친구의 죄송합니다. 하는 한 말을 듣고는 앞으로 조심하도록 단속하는 말만 하고 일을 끝내기로 한다.
통상적으로 이들 선원들은 이런 식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일에 연유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요리저리 핑계대어 빠져 보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친구는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더 이상 큰 소리를 치지 않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