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의 갑판상 누유
아직 어둠이 지배하는 새벽이라 선외에 켜주고 있는 조명등의 불빛이 없다면 감히 갑판을 계속해서 돌아가는 걷는 운동은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조명등 불빛을 믿고 때만 되면 깨어나는 습관 덕에 오늘도 5시 반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새벽 낚시를 즐기는 선원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는 것이 어제 닻을 빼어 움직인 후 다시 찾아온 자리가 낚시의 포인트를 좀 벗어나 있는 모양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18노트 정도의 바람이 계속 불어주고 있었기에 아침까지도 바다가 궂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많이 잦아들고 있어 훨씬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선미 쪽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는데 갑자기 미끈둥하며 오른쪽 발바닥이 허공을 내지르듯 미끄러지며 그대로 엉덩방아로 이어졌다.
정신을 차려 상황을 살피며 보니 오른쪽 팔꿈치도 자연스레 엉덩이와 함께 바닥을 같이 쳐주는 마치 유도의 낙법이라도 써서 넘어진 듯 편안한 기분으로 넘어진 상태이다.
순간적으로 툭툭 털며 일어났지만 바닥을 친 팔꿈치도 엉덩이도 별 다르게 아픈 곳은 없다. 단지 번지르르하게 미끄러운 기름기가 살짝 묻힌 상태가 기름기만큼 매끄러운 기분을 주눈 게 아니라 기름기에 오염된 씁쓸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한층 위의 갑판에 저장해주고 있는 윤활유 드럼통에서 새어 나온 기름기가 이 일의 주범인 모양이다.
하던 운동을 중지하고 한 층 위로 찾아 올라간다. 예상했던 대로 기름기가 약간 고여 있어 아래로 내려가는 스커퍼(SCUPPER)로 그야말로 기름기가 스며들고 있는 게 보인다.
기름기의 선외 배출을 막기 위해 당장 필요한 조치를 위해 브리지로 올라간다. 당직을 서고 있는 일항사를 찾아 상황을 이야기 해준 후 현장으로 내려와서 걸레로 닦아 주고 막아주도록 지시한다.
어저께 풀장 사건이 나며 관련된 발브를 잠 그어 주기 위해 놓여 있는 드럼통 위를 밟고 다녀야 했던 것이, 녹슬어 있는 드럼통 중 약한 부분에 구멍을 내게 만들어 내용물이 새어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이것들의 처리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찾아내어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심심하면 한 번씩 기름기를 내보여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것이란 짐작이 들기에 새로운 조치가 필요함을 감지하며 운동을 계속한다.
아침 식사 시간. 기관장과 이 이야기를 한다.
플라스틱으로 된 빈 드럼통을 청구하여 약해진 드럼통과 교체시켜 주던가 아니면 갑판 위에 반영구적으로 작은 탱크라도 만들어 이 기름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안도 나왔지만 그 방법은 선급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므로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이 기름은 모두 갑판상 해치커버를 열고 닫는데 쓰이는 유압라인에 들어가는 하이드로릭 오일이니, 우선 유압 라인의 약해진 부분을 수리하면서 시용하는 소비를 촉진하는 방안과 병행하여 당장 새고 있는 기름을 옮길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나 드럼통을 찾아보기로 하며 기관장과의 이야기를 끝내었다.
타이틀의 사진은 갑판상 운동을 마칠 무렵 어둠을 물리치며 해가 떠 오르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