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에 기대어, 다시 하늘로

by 이기장


조종사에게 루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의 리듬이자, 신뢰의 마중물입니다. 처음 조종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좋은 습관을 들여라’는 말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비행시간이 100시간, 500시간, 그리고 1,000시간에 이르게 되면서 그 반복의 진가를 몸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반복된 행동은 반드시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행 임무를 앞두고 항공기에 오르기 전부터 조종사들은 점검표를 꺼내 듭니다. 항공기 외부를 점검하고, 장비 상태를 확인하고, 시동 절차를 하나하나 따릅니다. 목적지나 기상 조건은 바뀌더라도, 이 준비 과정만큼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순서, 같은 흐름으로 비행을 준비합니다. 지루한 반복이자, 루틴의 연속입니다.


저희 조종사에게는 매년 한 차례 ‘표준화 평가’라는 비행 평가가 주어집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임무를 준비하고, 항공기를 운용하는 전 과정을 평가관이 직접 동승해 확인합니다. 이 평가를 앞두고 긴장하는 이들도 많지만, 저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평가란 결국, 내가 평소에 해오던 습관을 점검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은 저에게 더 특별한 시기입니다.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와, ‘자격회복비행 평가’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받는 평가이지만, 다행히도 큰 부담은 없습니다. 평소에 몸에 익혀둔 루틴 덕분에 복잡한 절차를 다시 새로 외우지 않아도 되고, 감각을 억지로 끌어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손끝과 발끝에 남아 있던 ‘익숙한 순서들’이 자연스럽게 저를 이끌고 있습니다.


루틴은 귀찮음을 견디는 인내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늘 하던 거니까’라는 자기 합리화는 조종사에게 가장 위험한 마음입니다. 습관이 흐트러지면 루틴도 무너지고, 루틴이 무너지면 안전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모든 비행을 늘 같은 방식으로 준비하고 실행하려고 합니다. 반복된 절차 속에서 더 많은 여유를 확보할 수 있고, 그 여유가 실수를 줄여줍니다.


루틴은 저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저를 조금씩 성숙하게 만들어줍니다. 비행이라는 긴장의 연속 속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 다듬어온 습관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격회복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저는 그 루틴을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 길은, 언제나 같은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도 그 발걸음을 따라 조심스레, 그리고 단단하게 이륙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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