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결혼 축하드려요!"
나는 프러포즈에 성공한 예비신랑과 행복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신부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지인의 소개로 주말마다 프러포즈 이벤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혼주의자인 내가 결혼의 최전선에서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한편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그들이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돈을 내면서 프러포즈를 하고 신혼집을 장만하고 호화로운 예식장에서 식을 올린다는 것이 내게는 멀고도 낯선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다가도 비어 있는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현실을 깨닫곤 했다.
그렇게 현실과 싸우면서 꿈을 꾸고 연애를 하던 어느 날 스포츠 브랜드와 음향기기 회사가 합작으로 만든 파란색 헤드셋을 생일선물로 받았다. 데이트를 하다 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일을 그녀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어서 청음을 하다 바로 다시 진열대에 내려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싼 건데 뭘 이런 걸 샀어?"
"이거로 음악 들으면서 항상 내 생각해."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웠다. 졸업공연 준비를 하는 동시에 남양주까지 가서 티칭을 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선물을 사 주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빨리 헤드셋을 사용해보라고 보챘다. 그리고 쑥스러워하며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음질 좋지?"
나는 안 들린다는 입모양으로 복화술을 쓰며 그녀에게 답했다
"장난치지 말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똑바로 말해보라고 했지만 꽤 즐거워 보였다. 답례로 그녀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날이 프러포즈 이벤트 페이를 받는 날이었다.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에게 거듭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졸업공연에 대해 물었다.
"준비 잘 돼 가?"
졸업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 하루에 세 시간도 못 자면서 안무를 짜고 있다는 그녀는 무용수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못해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종종 졸업공연 연습을 하는 곳으로 찾아가 도넛과 커피를 건네주곤 했지만 다들 개성이 강해 보였다. 삭발을 한 여성 무용수부터 빨강머리 샤기컷을 한 여성 무용수까지 누가 봐도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이었다. 힘내라는 내 말에 그녀는 졸업작품을 망칠 것 같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함께 했던 작품에서 그녀가 만든 안무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내 오디션 준비에 대해 물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졸업작품 연습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해 걱정이라며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다행히도 이번 오디션엔 안무가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지금은 졸업작품 공연 생각만 하라는 말과 함께.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식당 입구로 갔다. 잘 먹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점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하지만 점원이 몇 번이나 카드를 긁어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고객님. 잔액부족이라고 나오는데요?"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만 아직 프러포즈 이벤트 페이가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던 그녀가 자신의 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했다. 너무 부끄러워 점원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계산을 하고 뒤따라 나온 그녀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그녀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먹고살기 힘들지?"
남자가 돈 때문에 기죽어선 안 된다는 그녀의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것도 생일 선물이라는 말을 하며 대신에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달랬다. 생일날 여자 친구에게 밥 한 끼 사주지 못하는 현실에 비참함을 느끼며 그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 찬 지하철 안으로 잔잔한 재즈풍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하철 속에서 그녀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우리는 평소보다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내가 지금은 돈도 없고 능력이 없어도 꼭 이 사람을 위해서 기필코 성공을 해야겠다고 맹세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현실의 힘든 벽이라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졸업공연 날 엄마 아빠도 오시니까 인사드려야 해."
나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알겠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그녀와 헤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지만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직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다시 한번 식당에서 계산을 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이런 내가 무슨 낯짝으로 그녀의 부모님을 뵐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것이 없으면 비참해지고 초라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면서 때때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번번이 불합격이었다. 새로 작품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내가 배우로서의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점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순전히 내 고집과 가족들의 응원 덕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무대가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나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을 그녀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며칠 후 그녀의 졸업공연 날이 되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잘하라는 말보다는 끝나고 잠깐 보자는 연락만 남긴 후 공연을 관람했다. 몽환적이면서도 어두운 느낌의 작품이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재능이 부러웠다. 왜 나에게는 재능이 없는 걸까 싶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연이 끝나고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꽃향기를 맡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꽃다발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그 모습을 본 것만으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녀의 부모님이 나타났다. 나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아버님은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굳은 표정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순간 어머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는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계속 나에게 말을 거셨다.
"요즘은 어떤 작품을 하고 있어요?"
"쉬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말에 어머님은 한층 더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아버님은 껄껄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금방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거라며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아버님이 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님의 표정이 안 좋았기도 했지만 두 분에게 내 민낯을 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도 계속 함께 식사를 하자고 졸랐지만 나는 약속이 있다며 정중히 거절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왜 자랑스러운 남자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이 배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난한 무명배우인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싫었다. 그녀가 말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내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배우를 그만두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SNS를 보면 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 교정을 거닐면서 머리를 식혔다. 앞으로 있을 오디션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는 없었다.
'오늘 와줘서 너무 고마워.'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좋은 작품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졸업을 축하한다고 답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예술가로서 그릇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들의 이유가 직업이 배우여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배우로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다음 날부터 코피를 쏟으며 연습을 했다. 고교시절 입시를 할 때도 겪은 적이 없던 경험이었다. 내가 빨리 성공을 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빨리 멋진 배우가 돼서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노력을 한 덕분에 운이 좋게도 대학시절부터 꿈꾸었던 유명 창작 뮤지컬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이 소식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할 말이 있다고 그녀를 불렀다. 그녀도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서로 할 말이 뭔지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실랑이를 하다 그녀가 먼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입을 열었다.
"나, 뮤지컬 안무가로 입봉 하게 됐어"
그녀는 조금은 신이 난 듯했다. 극단 관계자가 졸업작품 공연을 보고 안무가 제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공연계에서 유명한 극단이어서 너무 기뻤다. 내가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훌륭한 안무가가 되어서 나를 캐스팅해달라는 농담을 건넸다. 그녀는 웃으며 단칼에 거절했지만 다시 한번 같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화장실에 갔다.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실을 나오는데 그녀가 격앙된 어조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녀의 통화가 끝나자 적당한 타이밍에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녀는 우울한 눈빛을 숨기지는 못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작품의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 것을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다. 자신도 어렸을 때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면서 빨리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와 함께 작업을 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티브이 드라마에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점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내가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았더라면.'
노력을 해서 달려가도 그녀는 다시 저 멀리 가 있었다.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고 싶었다.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새로 들어간 뮤지컬은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훌륭한 작품이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그 해의 운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디션에 합격한 배우들도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창력이 뛰어난 J와 감성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S, 연기를 잘하는 B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특출한 배우들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매료되었고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존경하게 되었다. 배우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 또한 흠이 없었다. 배우를 하면서 처음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내용이어서 전에 했던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연출은 훌륭한 연기 스승이었지만 성격이 괴팍했다. 그는 항상 과일 원액에 소주를 탄 술을 마시며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성을 지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정확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네가 하는 연기는 가짜 연기야!"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짜 연기로 관객모독을 하면서 배우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재능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머릿속에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가 넘는 시간까지 연습을 하는 날들이 늘어 갔다.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었고 그녀와 만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 중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연습을 하는 동안 수입이 없어 단돈 천 원에도 벌벌 떠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쉬는 날에도 돈이 없어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기념일에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전화기 너머로 울면서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능력이 없는 나 때문이니까. 그녀가 나보다 더 멋지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연습이 끝난 뒤 자정쯤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갔다. 많은 추억들이 서린 곳이었다. 그녀도 연습을 끝내고 나보다 조금 늦게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가 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까지 하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그녀답게 이를 세게 물고 참으려는 것 같았지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메마른 땅바닥 위로 얼룩졌다. 잠시 후 내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얼룩자국을 보며 가난한 무명배우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과 함께 돌아섰다. 더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상업예술을 하는 사람이 가난한 건 능력이 없기 때문이야!"
등 뒤에서 그녀가 흐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다신 나 같은 사람 만나면 안 돼."
아까보다 더 격하게 흐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이 무용을 그만두려 했던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교를 다녀도 춤으로 돈을 벌기가 어려워 다른 일을 할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결국 나를 만나 작품도 같이 하고 뮤지컬 안무가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그녀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였다.
"오빠도 지금은 힘들겠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 돼."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큰소리를 치며 그녀에게 성공을 약속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만났을 때의 눈빛, 고백하던 순간의 기억, 같이 연습을 하던 시간, 오디션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 날 위해서 기뻐해 주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이별이라는 것을 겪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와 헤어진 다음 날에도 내 통장엔 돈이 없었고 아침 열 시부터 연습은 시작되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배우 S와 B는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해 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얼버무렸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날따라 연습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출이 생각한 만큼 배우들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어서도 연습은 계속되었지만 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연습하는 내내 그녀의 우는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연출의 코멘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연출은 마시고 있던 술잔을 내게 집어던지며 이 작품에서 나가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공연을 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 앞에서 '나는 연기 X밥이다'라고 외친 것을 촬영하고 다음날 오전에도 똑같이 한 것을 촬영해서 자신에게 보내라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것도 못한 채 얼어 있었을 텐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까지구나.'
배우로서 여기 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연습을 하고 있던 배우들은 숨을 죽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연출에게 인사를 한 후 가방을 가지고 연습실을 나왔다. 어차피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대중교통은 끊겼고 택시를 타고 갈 돈도 없었다. 연습실을 나오자마자 배우 J가 뒤따라 나왔다.
광화문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망설이는 나에게 자존심도 없냐고 질책했다. 나는 말없이 차에 탔다.
광화문에 도착하자 영상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J를 만류하고 보냈다.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걱정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던 J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으로 노란색 리본과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정처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슬픔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내가 이 짓을 해도 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순간 연출이 나에게 해주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과거 그가 연기를 못해서 잘랐던 배우가 주식으로 백억을 벌어 공연에 투자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백억에 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배우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여기까지 와서 배우를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디뎠다.
'미안합니다.'
수많은 노란색 리본과 깃발을 뚫고 이순신 동상 앞에 섰다. 주변에는 순찰을 돌거나 보안을 위해 배치된 경찰들도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운이 없게도 카메라 렌즈에 심한 금이 갔다.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 돼.'
내가 능력이 있고 훌륭한 배우였다면 그녀를 슬프게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다시 핸드폰을 꺼내 녹화버튼을 눌렀다.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담아 이순신 동상 앞에서 외쳤다
"나는 연기 X밥이다!"
'정말, 안녕!'
"나는 연기 쓰레기다!"
몇 번이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자 리본과 깃발들 속에서 사람들이 나와 바라보았다. 근처에 있는 경찰들도 나를 보고 있었다.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그곳을 빠져나와 야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겪는 것들이 훗날 내가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 믿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은 내가 강해지려면 아직 멀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다시 이순신 동상 앞에서 촬영을 하고도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그게 나의 행복이야.
-언제나 응원할게.
영상을 찍은 뒤 버스를 타고 연습실로 향하는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의 말처럼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나였지만 내 행복이 그녀의 행복이라는 마지막 말을 지키고 싶었다.
'행복하게 연기를 해야지, 그녀를 위해서라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주인공인 연극에 멀티맨 역을 맡고 있는 배우가 자기가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을 보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 동갑내기인 그가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싶어 세종문화회관으로 갔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있는 이순신 동상 앞에 다시 가 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그날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고 그때보다 단단해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경험이었다.
극장에 들어가 작품의 팸플릿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안무 감독을 맡고 있었다. 헤어지고 한 번도 연락을 못했지만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올리는 공연의 안무 감독이 된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배우들의 안무를 보면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관람이 끝나고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그 날이 공연 마지막 날인 것 같았다. 인사를 끝마치고 공연장을 나오는데 저 멀리 로비에서 축하를 받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화장은 조금 짙어졌지만 여전히 작은 키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랬다. 그녀가 행복하길.
빠르게 극장을 나왔다. 멀리 서 있는 이순신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뒤를 돌아 세종문화회관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나직이 속삭였다.
'안녕, 나의 평강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