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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Sep 05. 2019

눈빛2

눈빛2

   그날도 지하철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졸음과 싸우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눈이 반쯤 풀려서 멍하게 서 있는 사람, 핸드폰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있는 사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 모두 살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막내 무용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녀에게 메신저를 통해 어떻게 되었느냐는 글을 썼다가 지웠다. 그리고 다시 우산은 언제 돌려줄 거냐고 썼다가 알아서 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지우고 그녀의 프로필을 보았다.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전에 올렸던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과 공연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도 새로운 게 없었다. 남자친구와 잘 화해한 걸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은 평소처럼 대본을 보지 않고 자리가 나자마자 앉아 잠을 청했다.

  얼마쯤 갔을까. 누군가가 내발을 툭툭 차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고 입가에 흘리던 침을 닦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막내 무용수였다.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산 언제 주실 거예요?"

  그녀는 깜빡 잊고 우산을 집에 놓고 왔다며 다음 날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제 비를 맞지 않았냐며 물었다. 자신은 남자친구가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어서 우산이 크게 필요 없었고 하면서. 

  나는 집이 역에서 멀지 않아서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았지만 어제 그녀의 무단 지각을 무마하기 위해 조연출에게 사준 커피값이 꽤 들었다고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신 이런 일이 없겠다고 사과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놀란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 졸려서 도착할 때까지 자겠다고 한 후에 눈을 감았다

  '헤어지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그리고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잤다.  

  역에서 내린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산 중턱에 있는 연습실로 향하는 버스는 한 대밖에 없었고 배차간격도 이십 분이나 되었다. 우리는 오 분 정도 기다리다가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녀가 사과의 의미로 택시비를 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빈차'에 붉은빛이 들어와 있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헤이! 헤이!"

  내가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며 택시를 잡았던지 건너편의 행인들은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놀란 그녀도 내 모습을 보며 정말 환하게 웃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택시를 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택시 안은 라디오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처음 보았을 땐 말이 별로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밝은 성격 같다며 백미러를 통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앞으로 서로 시간이 맞으면 함께 택시를 타고 연습실로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나는 거울에 비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역에 도착할 때쯤 서로 연락을 하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택시가 연습실 앞에 도착하자 그녀가 재빠르게 카드를 내밀어서 계산을 끝냈다. 잠시 머뭇거리다 시계를 보니 공식 연습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이층 연습실로 향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평소에도 이렇게 일찍 오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보통 두 시간 전에 와서 몸을 풀고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한 시간 전에 연습을 하러 온다는 나의 말에도 그녀는 의심의 눈빛으로 자신이 항상 일찍 나와서 연습을 하는데 왜 나를 보지 못했을까 하고 물었다. 나는 이층에 있는 공식 연습실이 아닌 일층에 있는 작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이층 연습실로 간다고 설명을 했지만 계속 믿지 않는 눈치였다. 

  "어쩐지 연습할 때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한국무용은 원래 그런 춤이에요."

  계단을 오르다가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언짢은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과를 할까 망설이다가 농담이라는 말로 넘기고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냥 연습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연습실이 새삼스럽게 크고 넓게 느껴졌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고 연습실 구석에 있는 청소기로 바닥을 밀었다. 반 정도 청소를 했을 무렵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헐레벌떡 연습실로 들어왔다.


뮤지컬 루나틱(2016)

 "제가 할게요."

  나는 기왕 시작했으니 생색을 낼 수 있게 내가 다 하겠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본인이 하겠다고 하는 그녀를 말리고 청소를 끝냈다. 다시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 후 가볍게 몸을 풀다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땀이 나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장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노래가 들렸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을 나와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뜻밖에 한국무용이 아닌 현대무용을 하고 있었다. 빠른 박자면서도 몽환적인 곡이었다. 바닥을 구르고 점프를 하고 턴을 도는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 그녀였지만 큰 연습실이 꽉 차게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였다. 넋이 나간 채로 그녀의 춤을 감상하다가 음악이 끝나자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치며 물었다.

  “꿈이 뭐예요?”

  그녀는 거친 호흡을 정리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안무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전공이 한국무용이 아니라 안무 창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장르의 춤을 잘 추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춤이 제일 힘들어요?"

  그녀는 나의 질문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창작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올해 졸업작품을 발표해야 하는데 안무를 짜는 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배우들도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게 힘이 많이 든다며 안무가와 배우는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젠 내 차례네요."

  나는 그녀가 보여준 춤에 보답하기 위해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 작품의 오디션에 붙게 해 준 비장의 노래라는 말을 덧붙이며.    


  간절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지금 이 순간)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수정~

  (뮤지컬 내 마음속 풍금-나의 사랑 수정)         

  살아 있어~ 이렇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난 살아있어)                        

  가야 해~ 저 별을 향하여~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이룰 수 없는 꿈)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크게 웃었다. 연습실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었다. 웃음을 멈추고 그녀가 정말 오디션 때 이 노래를 불렀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네 곡을 붙인 이유가 뭐냐고 했고 나는 내 강점을 다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절실했나 보네요."

  "그냥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았다는 말에 그녀는 자신의 절실함은 대학 입시 때 다 써버린 것 같다며 아직까지 절실함을 가지고 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명문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서 엘리트 길만 걸어온 덕분에 양질의 교육을 받아왔을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이라는 것이 내가 원해서 생긴 게 아니었기에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다가 전과를 했기 때문에 연극영화과를 가기 위한 입시 준비를 한 적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입시 준비 기간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라면서 나에게 그런 과정을 겪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울면서 춤춰 본 적 있어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매일같이 이른 새벽부터 정오를 넘기면서까지 춤을 췄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태풍이 와서 비가 쏟아지는데도 새벽에 연습실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레슨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지만 동작을 멈출 수 없었다고도 했다. 춤이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주어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길을 걷게 된 자신이 한 때는 너무 싫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슬픔을 보았다.  

  "부모님이 시켜서 시작하신 거예요?"

  “아뇨. 어렸을 때부터 그냥 춤이 좋았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서 시작했어요.”

  그렇기에 자신이 더 원망스럽다고 했다. 

  다음 생에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았다.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 더 빠른 길을 갈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티다 보니 이런 엘리트 예술가와 공연도 하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무대 위에서는 평등하니까.

  그녀가 겪었던 슬픔과 내가 겪었던 슬픔은 종류가 다르겠지만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녀 또한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섬세한 동작은 타고났다기보다는 오로지 노력에 의해서 습득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가 했던 고생의 종류는 다르지만 만나서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던 그녀가 손을 내밀며 새삼스럽게 왜 이런 인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반가워서요."

  그리고 우리는 음악에 맞춰 거울 앞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몸을 풀면서 멀고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고 비슷한 점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풀고 있는 그녀를 거울을 통해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엔 웬 바보 한 명이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연습시간이 되자 배우들이 연습실로 몰려들어왔다. 그 후로 공식 연습을 하는 내내 한 번도 그녀와 다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고 다들 파이팅을 외치며 연습실을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그녀와는 조금 떨어진 채 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역까지 걸어 내려갔다. 인천에서도 끝에 있는 역에서 지하철을 탔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들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 올 때처럼 최대한 그녀로부터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을 청하면서도 내 위치에서 한 시 방향에 앉아 있는 그녀가 신경 쓰였다. 그녀는 양 옆의 남자 배우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눈을 살짝 떠서 고개는 그대로 둔 채 눈동자만 한 시 방향으로 돌렸다. 음악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모양에서 '연출님'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음악을 정지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아 너무 멀리 떨어져서 앉은 자신이 미웠다. 

  '뭘까?'

  순간 자신이 이상하고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나는 괴로워하고 있을까. 비어 있는 그들의 옆자리를 보면서 당장이라도 자리를 옮겨 태연하게 웃으며 대화 속에 끼어드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지만 나답지 않고 어색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평소보다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내릴 준비를 했다. 그들에게 다가가 이어폰 한쪽을 뺐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보다 말을 하기 위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더 크게 그들에게 들릴 것 같았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내립니다."

  태연하게 말을 내뱉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의아해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그 역에서 나와 동갑내기 여배우와 같이 내리게 되었다. 문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나와 동갑내기 여배우는 문이 열리자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엉겁결에 그 눈을 피했다. 

뮤지컬 미추홀에서 온 남자(2015)

  낭패였다. 바로 다음 열차를 탈 생각이었지만 동갑내기 여배우에게 내리는 이유에 대한 어색한 거짓말을 한 탓에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가게 되었다. 덕분에 여배우가 특이하게도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서 영어 선생을 하다가 배우의 꿈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배우는 나에게 음색이 좋다며 자신이 배우고 있는 보컬 레슨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다면 더 멋진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이 끝나면 소개해주겠다는 여배우의 말을 뒤로하며 버스에 올랐다.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집에 도착한 나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워 연출부가 없는 단체 채팅방의 대화들을 확인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어서 대충 읽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책상 위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나는 비행기 모드를 켜고 확인해 보았다.

  '잘 들어가셨어요?'

  '혹시 저한테 화나신 거 있으세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썼다가 보내지 않고 지웠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삼십 분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썼다. 

  '제 우산 잊지 않으셨죠? 평온한 밤 보내세요.'

  전송이 되지 않아 비행기 모드를 끄고 다시 보내기를 눌렀다. 그리고 난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악몽을 꾸었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새벽의 저주'에 나왔던 좀비들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그러다가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 휴대폰을 확인했다. 

  '내일 드릴게요.'

  읽지 않았던 그녀의 답을 확인하면서 이상하게 우산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그 우산이 나와 그녀 사이의 연결고리가 아닐까. 그걸 받는 순간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우산을 가져오지 않길 빌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연습실에 도착했다. 그녀와 같이 택시를 타고 연습실에 가기로 했지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일층에 있는 연습실에서 홀로 작품의 듀엣곡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여배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제안에 우리는 같이 듀엣곡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웠지만 평소에 연습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놀랍게도 그곳엔  막내 무용수가 서 있었다. 나는 부르던 노래를 멈췄다. 그녀는 연습실에 들어오지 않고 신발을 신은 채로 평소보다 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화장기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낯선 눈빛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닫혀 있는 문 너머로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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