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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꿀 Jul 05. 2021

큰엄마

엄마 아빠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신랑 측 부모님 자리에 앉았다.

우리 집은 큰집이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내가 초등학교 때쯤에 둘째 작은아버지는 택시를 하셨고, 도박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둘째 작은어머니와 두 딸이 있었다. 셋째 작은아버지는 이혼을 하셨고, 두 딸이 있었다. 넷째 작은아버지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넷째 작은어머니는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고 들었다. 넷째 작은아버지는 제사뿐만 아니라 명절날에도 거의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둘째 작은어머니도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 제사음식을 준비하셨다.


명절에 엄마는 '조상님도 이해하실 거다' 하며 사촌언니, 사촌오빠 그리고 사촌동생들에게 전날 한가득 한 튀김과 전을, 제사를 채 지내기도 전에 내어 주셨고, 튀김과 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돌아가는 길에도 탕국 · 나물 등의 음식을 비닐에 싸서 거의 대부분을 챙겨 주셨다. 사촌언니, 사촌오빠 그리고 사촌동생들은 엄마를 '큰엄마' 하고 불렀으며 좋아했다. 챙겨주는 음식과 용돈도 좋았겠지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마음이 더 좋았으리라.


명절이 아닌 평일 저녁 작은 제사를 지낸 다음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빨리 가서 튀김과 전을 먹어야지' 하며 집으로 갔다. "엄마! 튀김 하고 전이 왜 하나도 없어?" 내 물음에 엄마는 셋째네의 사촌언니, 사촌동생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둘이서만 '큰엄마'하며 찾아왔었다고. 그래서 튀김과 전을 모두 싸주었다고 말했다. "그게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왔겠노?" 엄마는 말했다. "나는! 나도 먹고 싶다고! 나도!" 나는 철이 없었다.


넷째네의 사촌오빠와 사촌 남동생은 어는 순간부터 단 둘이서만 살았다. 사촌오빠는 성당의 지원과 아르바이트로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첫 직장을 다니다 경력을 쌓아 국내로 들어와 다시 직장을 구했다. 사촌오빠는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어도 한 번씩 큰집을 찾아왔다. 한낱 땡볕에서 밭을 매고 있는 엄마를 찾아와 빵과 음료수를 건네주고 갔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두 언니들이 결혼을 하고, 사촌언니와 사촌동생들도 모두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도 비교적 늦은 나이, 34살에 결혼을 했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였다. 사촌오빠가 오랫동안 연애를 해온,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여자 집에서 친정엄마의 반대가 심하다고 들었다. 사촌오빠의 상견례에는 넷째 작은아버지는 참석하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가 대신 사촌오빠의 큰어머니, 큰아버지로 참석했다. 딸의 오랜 설득 끝에 왔지만 친정어머니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보증합니다. 야가 진짜 힘들게 컸지만,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온 거 보면 안다 아입니까. 사람이라고 다 사람입니까. 내가 살아보니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라예. 명절 · 제사 한 번도 안 빠지고 찾아오고, 내 밭 매고 있는데 그 밭을 어째 알고 찾아왔는지, 큰엄마 고생한다고, 시원한 음료수랑 빵을 챙겨주고 가는 아이입니다. 한번 믿어 보이소"


"내도 이 집에 시집오고 진짜 고생 많이 했는데, 우리는 딸만 셋인데 그래도 첫째는 10년 이상 대학병원 간호사하고 있고, 둘째도 경기도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고, 막내도 병원에서 의무기록사라고 하던데. 아무튼 작년에 결혼해서 우리는 이제 딸 전부 시집 다 보냈고, 사위도 다 잘 봤고. 사촌이라도 다 잘돼 있으면 좋다 아입니까"


엄마는 그 어머님의 손을 잡고 그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별말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사촌오빠는 결혼 승낙을 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신랑 측 부모님 자리에 앉았다. 


"큰엄마 아니었으면. 나는 결혼 못했을 거야" 사촌오빠는 담도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내게 그렇게 말하며 울었다. 오빠! 힘들었던 만큼, 행복하게 더 잘 살면 좋겠어. 엄마를 따뜻하게 기억해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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