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말하지 못했다.
"커닝하지 않았다"
반성문에 글을 남기고 한 고등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짧은 뉴스를 보았다.
다른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초등 때 독후감 숙제를 제출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중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ㅇㅇ는 아주 글을 잘 써서 독후감 숙제를 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숙제를 자기가 하지 않고 누군가 대신해 주는 건 안 되는 일이에요" 하셨다. 이후에도 선생님은 뭐라고 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더 듣지 못했다. 몸이 순간 얼음이 됐으니깐. 정신이 가출해 버렸으니 말이다.
"선생님 저는 가정에서 거의 방치 수준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대신 내 숙제를 해줄 일은 없었어요"
고등 때 첫 담임 선생님은 입학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종례를 하러 오시다 복도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는 나에게 "너! 남자 친구 오토바이 뒤에 탈 때 교복 입지 마라. 사복 입고 댕기라. 학교 망신시키지 마라" 하셨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친구들은 '아,, 그런 아이인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 남자 친구라니요? 오토바이라니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건가요?"
그런 냉대를 받는 학교생활은 계속되었다. 나는 반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이이였다. 나는 거의 늘 혼자 있었다.
그러던 중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의 수업 시간. 선생님은 지난 수업 나눠준 프린트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7~8명의 학생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그 학생들 중 유일한 한 명. 나를 교단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나가자마자 선생님께 뺨을 맞았고 몸이 비틀거릴 정도였다.
"선생님. 프린트물을 안 가져온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표정이 좋지 않았거나 제가 살짝 미소를 띠어서 그랬다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정확히는 생각나지 않아요. 그런데 뭔가 이목을 끌만한 과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돼요. 하지만 어쨌든 준비물을 안 챙겨간 제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초에 프린트물을 잊지 않고 챙겼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죠. 아니면 제가 평밤한 가정이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요?"
소식을 당연히 전해 들었을 법한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말씀도 없으셨다. 오히려 실습을 나오신 교생 선생님이 대신 미안하다며 사과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은 1학년 마지막 우리에게 마지막 말씀 하셨다. 우리 반 학생 모두에게 아주 기분 좋게 생활기록부를 쓰셨다고, 그런데 딱 한 학생만 쓸 말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한결같다'라고 적었다고. 나는 그 이야기가 나를 향한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었다. 나는 미친개 선생님보다 담임 선생님이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결같다'라는 말이 그렇게 심한 말이 될 줄이야.
고등 2학년, 나는 평범한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손 놓고 있던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들을 사귀었다. 거의 매일 엄마에게 향하는 아빠의 폭력이 있었지만, 아빠는 우리에겐 공부를, 대학을 지원해 주었다. 나는 빨리 돈을 벌어 엄마를 호강시켜주고 싶었다. 나는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선택했다. 졸업 후 나는 병원에 취업을 했다.
가정이 불안한 친구들이 있다. 가정에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선생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고 기본적인 생활규칙이 좋은 친구였다면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할 텐데 그게 아니니, 그 친구가 잘한 건 누가 대신해 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단언컨대 선생님이 말한 '한결같다'라는 의미의 말을 들을 만큼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집에 가면 아빠에게 맞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다. 집이 전쟁이라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날도,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나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너무도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으니깐. 엄마처럼 꾸준히 버티고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아주 느렸지만 천천히 성장했다고 믿는다. 다만 아주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지금의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유년시절을 그렇게 외롭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며, 나의 청소년 시절을 그렇게 불행하다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한결같다는 말이 그렇게 가슴 아프게 들리지 않았을텐데. 그때의 내가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