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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Oct 17. 2022

좋은 상담자가 되려면

경청

 혜주의 눈물 

 학교에서 다양한 아이를 만난다. 학교에서 10년 정도 근무하면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직도 온전히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오전 9시가 넘었는데도 혜주가 등교를 하지 않았다. 성실하기로 소문난 혜주가 지각을 할 리가 없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급히 혜주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혜주가 아직 등교를 안 했어요. 혜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선생님, 죄송해요. 혜주가 지난 주말에 전국 체전에 선수로 출전을 했거든요.”

“네, 저도 알고 있어요.”

“대회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나 봐요. 도통 저랑 말도 안 하고, 뾰로통한 상태로 있어요. 오늘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간신히 깨워서 방금 전에 학교로 보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혹시 혜주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못 냈나요?”

“네, 제대로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첫 경기에서 탈락을 했대요. 경기에서 질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해줬는데도, 소용이 없네요.”

“네, 저도 혜주랑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곧이어 혜주가 교실에 들어섰다. 축 처진 어깨, 초점 없는 눈동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쉬는 시간에 혜주와 이야기를 나눴다.

“혜주야, 속상한 일 있니?”

“아뇨, 없어요.”

“대회에서 무슨 일 있었어?”

“1회전에서 탈락했어요.”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네...”

갑자기 혜주가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를 해줘야 할까? 혜주가 민망할 테니 못 본 척하는 게 나으려나? 몹시 당황스러웠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다.

“혜주야, 대회에서 원하는 성적을 못 내서 서운했구나. 대회에서 네가 원하는 성적을 못 낼 수도 있어. 네가 전국 대회에, 우리 지역 대표 선수로 나간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야.”

“제가 속상했던 건, 대회 결과 때문만은 아니에요. 대회를 앞두고 주말 내내 숙소에서 합숙을 했거든요. 대회에 함께 출전한 동생들 챙기고요. 그게 힘들었어요. 제가 제일 언니라서 동생들을 모두 챙겨야 했는데,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몰라요. 다신 대회에 안 나갈 거예요.”

“그래서 네가 더 힘들었구나. 우리 혜주 정말 애썼네. 수고 많았어.”

혜주가 꾸벅 인사를 하더니 교실로 돌아갔다. 눈물을 쏟아내며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혜주를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먼저, 내 앞에서 속상함을 쏟아놓는 걸 보니, 나와 어느 정도 유대감이 생긴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론, 펑펑 울며 속상해하는 혜주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씁쓸했다. 상담을 배우면 아이의 아픈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주변에 상담을 공부한 사람들이 많다. 심리학을 전공한 아내는 초등학교에서 전문 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상담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한 주변 동료들도 많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이해해 주고, 시의적절한 조언도 건넬 수 있겠지. 그들이 마냥 부럽다. 그런데 꼭 상담을 공부해야만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군대 동기 문진이의 위로

갑자기 약 20년 전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상병으로 근무 중이었다. 어느 날, 후임병과 경계 초소로 단 둘이 근무를 나갔다. 근무를 나갔는데, 후임병의 근무 태도가 평소와 달리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근무 똑바로 안 설래? 너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이런 대화가 몇 차례 오갔지만, 그 이후로도 후임병의 태도에 큰 변화가 없었다.

“야, 너 나 무시하냐? 똑바로 안 해?”

 상하 관계가 엄격한 군대였기에 험한 말을 쏟아내면서 지적하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한참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후임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되돌아왔다.

“자꾸 왜 그러십니까? 저한테 괜히 시비 거시는 겁니까?”

“뭐? 다시 말해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더욱 험한 말을 했다. 꾹 참고 있던 후임병도 화가 났는지 맞대응했다.

“너 근무 끝나고 돌아가서 보자. 내가 가만히 안 둘 테니까.”

생활관에 돌아가서 근무 중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 선임들도 다들 내 편을 들어주겠지. 씩씩대며 생활관으로 돌아온 나는, 욕을 내뱉으며 쓰고 있던 철모를 바닥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아 진짜 짜증 나서 못해먹겠네.”

 휴일에 삼삼오오 모여서 티비를 보던 내무실 선 후임 모두가 굳어버렸다. 당시 생활관에는 나보다 한참이나 선임인 병사들도 많았다. 내 행동은 그들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들이 내게 질책을 하려다가, 그냥 넘어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내가 평소 조용하고 성실했기에, 그들이 이번에만 못 본 척 참고 넘어가는 듯했다.

 내 행동으로 인해서 갑자기 생활관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다. 후임병이 내게 반항했다고, 그래서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말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무실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거기에서 더 이상 화풀이를 하진 못하고 혼자 휴게실로 내려왔다. 분함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혼자서 먼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같은 날 입대 동기인 문진이가 내게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낯빛을 한 문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문진이가 내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진이의 진심을 담은 태도에 마음이 풀린 나는, 속에 있던 말을 전부 꺼내놓았다. 문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그는 나와 갈등이 있었던 후임병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함께 후임병 욕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문진이가 온 힘을 다해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어서 고마웠다.

 한 시간 가량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있는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복잡하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내 얘기가 다 끝나자, 1시간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만 있던 문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네 후임이랑도 조금 전에 이야기 나눴거든. 걔가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에서 한숨만 푹푹 쉬어 대서 큰일이 생겼구나 했어. 자세히 물어보니, 순간적으로 욱해서 선임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대. 네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마음을 표할 방법이 없다고, 어쩔 줄 몰라하더라.”

“나는 뭐 잘했나. 나도 별 것도 아닌 일 갖고 종일 트집만 잡았는데 뭐. 험한 말도 많이 하고.”

 “네 후임이 너를 평소에 진심으로 잘 따르는 것 알잖아. 오늘은 걔가 순간적으로 욱해서, 큰 실수를 한 거야. 네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진이가 말했다.

“야,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걔 데려올게.”

문진이 덕분에 후임병과 화해할 수 있었고, 금세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할 때면 이따금 군대 동기인 문진이가 떠오른다. 아무 말 없이 한 시간 동안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던 그 모습이 말이다. 상담은 공부해 본 적도 없는, 가방끈도 짧았던 문진이가 내게 진짜 상담을 해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문진이가 한 일은 진심으로 내 이야기에 집중한 것뿐이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문진이를 통해 상담의 기본은 내담자를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좋은 상담자가 되려면

 과거의 문진이처럼 좋은 상담자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떤 모습이 필요할까. 첫째, 한 아이를 위해서 충분히 시간을 내어 주어야겠다. 충분한 시간 동안 들어줘야 하는데, 사실 30분의 시간도 아이에게 온전히 내어주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 상대 방의 말을 들어주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한 아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진심 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아이를 생각할 때 그 아이의 아픔이 나의 아픔처럼 생각되는가. 아이를 향한 애정이 없다며, 아이의 말에 공감해 주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조언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참 말을 듣다 보면, 불쑥 끼어 들어서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특히 아이와 상담을 할 땐 더 그렇다. 내가 아이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기 때문이다,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끊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내가 문진이와의 대화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 반 아이들도 나와 나눈 대화를 10년 후, 20년 후까지 기억해줄까. 물론 상담을 더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설프게나마 지금 알고 있는 상담 지식을 잘 활용해서 아이들 곁에 온전히 있어줘야겠다. 또한 이론적 지식을 더 알아가는 것 못지않게, 아이를 향한 마음도 키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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