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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Apr 19. 2020

우울증 환자의 행복한 임신

임신과 함께 사라진 우울증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샤워를 할 때, 머리를 말릴 때, 길을 걸을 때, 색색의 꽃이 가득한 길을 걸을 때, 연둣빛의 새잎이 돋아난 나무들 사이를 드라이브를 할 때, 요가를 할 때, 남편과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치밀었다.

임신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


 처음에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재빠르게 생각을 전환하려고 노력했다.
 '아니야, 나는 결혼도 잘했고, 일하는 것도 좋고, 글 쓰는 것도 좋고, 임신 전의 내 인생도 가치 있었어.'
 하지만 불쑥불쑥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났다.
-임신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
 이렇게 나를 잃게 되는 걸까,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날은 내 속에서 솟아난 이 생각에 뭉클하기도 하고, 점점 커지는 배를 볼때면 경이롭기도 하며, 말 그대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런 생각이 든 지 수십번째, 나는 이제 이 생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 내 인생도 의미 있었지만, 임신이 내게 주는 의미도 무척 크다는 사실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이렇게 사랑해도 되는 걸까?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로 나를 잊어버리고 아이에게만 몰두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아직 본 적도 없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정말 '좋아한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 어느 날은 정말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가 황당했다.
 18주가 넘어가자 태동이 잘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태동을 매일매일 느낄수록 내 마음속에서 아이의 비중은 커지고 사랑이 쌓이는 느낌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단어가 아니면 나의 이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아이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가끔은 눈물이 나오고, 벅차기도 하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한다.


 임신하기 전에는 자주 '만약'에 대해 생각했었다. 만약에 내가 그때 다른 대학을 갔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내가 다른 과를 갔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내가 다른 회사에 입사했다면 어땠을까? 내 인생이 후회되고 아쉬워질 때면 자주 만약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하던 그 생각을 멈추었다. '만약'이라는 생각과 '후회된다'는 생각을.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어느 부분이 달라진다면, 지금의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 모교도, 내 학과도, 20대 때의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이 30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내었고, 지금의 아이를 만나게 해주었다. 그때 그 시기에 남편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때 아이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는 내게 필요 없다.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지금의 이 유전자로 이루어진, 이 작은 생명체만을 사랑한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이 아이만이 내게 필요하다. 아이의 힘차게 뛰는 심장과 유연하게 뻗은 척추, 곧게 뻗은 다리뼈와 둥근 두개골을 사랑한다. 아이 덕에, 후회 많던 내 지난날이 다행으로 생각되고 모든 선택이 잘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는, 이 이유만으로.


 정말 마음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 없던 어느 날 아침,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를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자기 덕에 아이를 만나서 너무 행복해. 가끔 임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 돼서 좀 무섭긴 하지만, 임신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임신하고 우울증이 없어져서 너무 신기해. 다 자기랑 아이 덕이야. 고마워. 아이가 태어나면 힘들 때도 있겠지만, 아이를 만나기를 기다리던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지치지 않고 잘해 나가볼게."
 여전히 다짐하는 한 가지는 남편을 아이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남편에게 더 표현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이던 내가 임신으로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나 스스로가 너무 신기하다.


정밀 초음파를 보던 날


 임신 22주, 정밀 초음파를 보러 갔다. 이 때 양수가 풍부하고 장기형성이 거의 이루어진 시기여서 태아의 이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별 탈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무탈하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초음파실에 누우니 무섭다. 평소와는 달리 별도로 마련된 초음파실에서 작은 모니터를 보고 30~40분 정도 초음파를 본다. 민망하게도 초음파 화면에 아이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눈물이 주룩 흘렀다. 평소와 달리 따뜻한 젤이 내 배 위에 뿌려지고, 임상병리사는 정면에서, 또 측면에서 이리저리 아이를 관찰한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제 어느 부분이 어디구나 하고 알아본다. 항상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5분 남짓의 초음파를 보다가 길고 설명 없이 초음파를 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아이의 초음파가 아름답다. 아이의 쿵쿵 뛰는 심장이, 이심실 이심방의 모습이 꼭 네잎클로버를 닮았다. 심장이 힘차게 뛴다. 아이의 s자로 휘어진 척추는 햇빛이 잔뜩 쏟아지는 날 물속에서 보는 수면에서의 모습 같다. 아이의 갈비뼈의 모습이 아름답고, 두뇌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두개골이 아름답다. 아이의 다섯 개의 손가락과 다섯 개의 발가락이 앙증맞다. 아이의 콩팥과 위가, 각 장기로 연결된 혈관이 경이롭다. 500여 그램 남짓이라는 아이의 작은 몸에는 아이의 몸무게의 100배나 되는 나와 같은 것들이 이미 형성되어있다. 신체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임신을 하고 나서 알았다.
 "아이는 정상입니다."
 임상병리사의 말에 마음이 놓인다. 요즘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감사했던 말.


아이가 내 전부가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아이가 내 전부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처럼, 얼마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이가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넘치는 이 마음을 억지로 눌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가 내 전부가 되면 꼭 나를 잃게 되는 걸까? 아이를 가진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이제까지 가져왔던 내 생각을 부정하게 되고,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이 오면서도, 그 일이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려동물의 사진으로 프로필과 SNS를 도배하는 사람들을 '반려동물에게 자신을 빼앗겼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아이의 사진으로 프로필과 SNS를 도배하면 '아이에게 자신을 빼앗겼다'고 말하고들 한다. 사실 미혼일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절대 아이를 낳아도 아이 사진을 프로필사진으로 해놓지 않겠다고, 아이 사진을 해놓는다면 내 얼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이제는 뭘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미 아이의 SNS를 만들었고, 초음파 사진을 올리며 행복해하고 있다. 임신 후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으며, 매주 임신일기를 올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아이가 크면 줄 생각으로 공책에 태교일기도 꾸준히 쓰고 있다. 정말 사람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자신이 어떨지 모르는 것 같다. 아마 아이가 태어나면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은 아이의 얼굴로 가득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SNS, 블로그를 보면 '이 사람은 아이한테 자신을 빼앗겼다'고 생각할까? 사실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삶인데 뭐 어때서. 와, 신기하다. 임신 전에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했는데 임신 후에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임신과 함께 사라진 우울증


 우울증은 항상 이유 없이 찾아왔다. 특별한 사건이 없이도, 어제와 같은 일상인데도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나는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다. 가끔 행복하던 날이 평소보다 오래 지속되던 날이면, 자고 일어나면 우울증이 찾아올까봐 잠드는 일이 두려웠다. 퇴사하고 내가 하고 싶던 취미생활을 하던 중에도 나는 우울했고, 다시는 행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던 날이 많았다. 상황으로 보면 그때가 더 행복할 때인데 -일 스트레스가 없고, 매일 취미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코로나가 없어 외출도 마음대로 하고-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 감정과 그때의 내가 남처럼 낯설다. 그때 남긴 글을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우울했을까 하며 놀란다. 지금처럼 우울증이 없이 좋은 기분이 오래 지속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또 우울함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나도 우울증 없이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인 걸 내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모두 아이와 남편 덕이다. 내게 찾아와 무사히 자라고 있는 아이와 아이를 만나게 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결혼을 한 건 겨우 일 년, 임신을 한 건 겨우 6개월일 뿐인데 결혼의 하기 전의 나는 이제 상상도 되지 않는다. 결혼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많이 달라지다니.


내게 너무나도 행복한 임신


 임신하기 전부터 임신, 육아 관련 웹툰이나 책을 즐겨봤다. 앞으로 나도 하게 될 일이지만 자세히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미리 경험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대부분은 '임신과 육아는 괴로운 일' '행복한 지옥'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아닌 것도 있었지만 그런 기억이 내게 오래 남았다) 내가 임신과 육아에 많이 무지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두려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싶어서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했지만, 결혼하고서 아이를 가지는 게 두려웠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인 변화보다도 내 삶이 아이로 인해 송두리째 바뀐다는 것, 이제까지 쌓아온 내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다. 임신하면 우울증세가 더 악화될까봐 두려웠고, 혹시나 아이에게 유전이 될까봐 정말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이제는 아이를 가져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평범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남편과 내 사이에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이한 임신은 정말 생각보다 훨씬 행복하다. 물론 내가 특별한 임신 증세가 없고, 아이가 무사히 자라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습관을 개선했더니 가끔은 오히려 임신 전보다 건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을 정도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쓰다 보니 깨달았는데, 우울증 환자에게 정말 필요하지만, 지속하기 힘든 것 - 꾸준한 운동, 건강하고 규칙적인 식습관, 감사하는 마음 갖기, 매일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 를 임신을 하고 나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꾸준히 하고 있어서 내 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 정말 내게 임신은 축복이구나. 아이는 내게 복덩이구나.


 내게 임신이 이렇게 행복한 일일지 몰랐다. 신에게 나를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하곤 했는데, 지금은 아이를 만나게 해 줘서 고맙다고 자주 생각한다. 아이가 있기에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가능하고, 스스로 성격이 밝아지고 유해지고, 포용력이 넓어졌다고 느껴진다. 직장동료와의 관계도 좋아졌고, 남편도 내게 표정이 밝다며 예쁘다고 말한다. 잔뜩 꾸민 웨딩사진을 볼 때면 제일 먼저 홀쭉한 배가 눈에 들어오면서 저때는 아이가 없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내게 아이가 없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임신한 지금도 이렇게 아이가 좋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다들 극성 부모, 도치 부모가 되는 걸까.


 "임신하니 이기적으로 되는 것 같아. 이제는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 얼마 전까지는 엄청나게 이해가 잘 되었었거든. 이렇게 행복한 일인데 왜 안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어."
 "자기가 임신한 게 좋은가보다."
 며칠 전에는 남편에게 이런 고해성사(?)도 했다. 얼마 전에 '한 임산부가 보는 비혼과 비출산'의 글을 장황하게 썼는데 몇 주 만에 이해가 안 되다니 나란 인간의 사고란 참 제멋대로이다. 아마도 내가 임신으로 너무 행복하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가 되었다면, 지금은 여전히 그들을 존중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는 안 되는 느낌? 부디 출산 후에는 다시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혼과 임신은 내가 한 선택 중에서 잘한 선택 중 하나다. 일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길 바라며, 혹시나 미래의 내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 글을 보고 힘냈으면 좋겠다. 2020년의 나는 정말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오랜 우울의 늪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으니 다시 우울함이 찾아와도 나는 다시 극복할 수 있을 거야.

햇볓이 내리쬐는 수면 같은 척추와 네잎클로버 같은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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