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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20. 2023

다시 수술




아빠는 고맙게도 천천히 병마와 싸워서 이기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회복의 속도가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난 그게 순서와 시간에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칠순이 넘은 나이고 평소 우리에게 보이는 기질 자체가 그리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혹자는 사람의 성격은 걸음걸이에서 볼 수 있다고도 했는데 우리 집에서 세월아~ 내월아~걷는 사람은 아빠와 언니 둘뿐이다. 아! 천천히 걷는다고 아주 느긋하고 차분한 성질이 아니니 오해는 하면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의 스타일과 속도로 가는 게 아빠였다.


개두술을 해서 움푹 파인(마치 호빵맨이 자신의 머리를 한입 떼어준 모양과 아주 유사한) 머리는 점점 부기가 빠져서 머리만 보아도 아빠의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푹 꺼져도 괜찮은가 싶어서 회진 때 여쭤봤지만 탈수 증상만 아니면 상관없고, 바짝 내려가야 복원술*을 할 시기를 당길 수 있다고 하셨다.


[*복원술은 뇌출혈로 인한 개두술 후 다시 머리뼈를 닫는 수술로 이건 미용수술이기 때문에 비보험이고, 백만 원 중 후반 정도의 수술비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안 닫으면 그 부분이 중력과 뇌압으로 점점 더 움푹 파이게 되므로 결국 꼭 해야만 한다. (근데 비보험이라니 아직도 이해는 안 된다.)]




뇌압이 높아지지 않고 별다른 이벤트 없이 부기가 계속 빠져서 첫 수술 후 한 달 보름 만에 복원술 날짜가 잡혔다. 생명에 위협이 되는 수술이 아니라 그런지 보호자 빼고는 다들 심플해 보였다. 수술 전날 저녁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다 밀었고, 수술은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를 받았다. 수술 당일 아빠가 말을 할 수 없어서 수술방 코앞까지 내가 동행했다.(앞에 있는 문만 열면 각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복도 앞이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수술실 코앞까지 오니 손이 덜덜 떨렸다. 환자 인적 사항을 확인하러 수술실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오는데 덜덜 떨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이 굉장히 낯이 익었다. 눈을 마주치고 목에 걸려있는 명찰을 확인하는 순간 의심이 확신이 됐다.


“어! 째리야!”


(여기서 째리는 같은 동네에서 자란 초등학교+고등학교 친구입니다.)


“누구…?”


자신의 이름을 들은 친구는 눈이 동그랗게 변해 나를 3초간 응시했다.


“어머! 너 라미구나! 근데 너 여기 왜? 아니 이분은 누구셔?”


“우리 아빠. 얼마 전에 뇌출혈 수술받았어.”


같이 동행했던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어리둥절해진 상황이었다.


"친구예요?"


“네. 동창이에요. 어떻게 여기서 만나?”


“아휴. 그럼 난 가도 되겠다. 동의서 사인하고 병실로 올라오세요.”


놀람과 반가움 반인 상태로 친구는 프로페셔널하게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수술 안내까지 마쳤다. 내가 걱정스럽게 아빠를 보고 있는 걸 확인한 친구는 다정하게 한마디를 남겨줬다.


“걱정 마. 아빠 수술 잘 받고 나오실 거야.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어.”




마음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이미 아빠 덕분에(?) 특혜를 보며 여기까지 들어온 상태라 수술이 잘 되길 바라며 병실로 돌아왔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쉬어도 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아빠가 와서 다시 누울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침대 커버를 다 벗겨서 리넨실에 넣어두고 욕창 매트를 소독 티슈로 깨끗하게 닦아 말리고, 다시 커버를 씌우고 방수 매트와 반시트까지 다시 올렸다. 베개커버도 다 갈아서 평소에는 하나씩 해결할 걸 한 번에 다 끝냈다.


수술을 끝내고 올라온 아빠는 마취가 깬 후부터 곤욕이었다. 장장 5시간 동안 다시 잠들면 안 된다는 특명을 받았다. 이유는 그랬다. 의식이 있고 인지가 있는 환자는 본인 의지로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 동안 깨어있으며 자가 호흡을 해서 본래의 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데 아빠는 셋 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이대로 다시 잠들면 깨어있을 때보다 호흡이 줄어서 폐포까지 산소 전달 부족해 무기폐*가 생길 수 있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무기폐 : 폐는 풍선과 같이 공기를 품고 팽창되어 있어야 하는 장기인데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폐의 일부가 팽창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피가 줄어 쭈그러든 상태. 질환이기보다는 다양한 병이나 장기간의 침상 안정에 의해 깊은 숨을 못 쉬어 호흡기 분비물에 의해 기관지가 폐쇄되어 폐조직이 허탈되는 경우가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5시간 동안 절대 잠들면 안 된다는 거였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진짜 억겁 같은 시간이었다. 아빠가 병실에 올라온 시간은 다섯 시가 아주 조금 지난 시간이었고 10시까지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건데… 분명 잠을 사랑하는 아빠는 100%의 확률로 삼십 분 안에 잠들게 뻔했다. 이어폰으로 아빠에게 온갖 노래를 다 들려주는 것도 계속 말을 거는 것도 거의 소용이 없었다.


결국에는 아빠와 나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필승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꼬집기’였다. (세상 유치한 방법이지만 아빠가 건강했을 때 나와 싸우는 방법의 일종이었다. 제일 아픈 부위만 꼬집고 도망가는 그런 식…) 시시하게 볼을 꼬집거나 귓불을 꼬집는 걸로 해결될 건 아니라 강수를 뒀다. 아빠의 눈이 서서히 감길 때마다 겨드랑이 밑살과 가슴팍을 인정사정없이 꼬집었다. (하… 써놓고 보니 이렇게 무지막지한 딸이 또 없네…) 그걸로도 안되면 손톱 밑과 발톱 밑을 꼭꼭 눌렀다.


저녁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5시간 동안 이 난리에 최선을 다했다. 10시가 다 되어가니 이젠 나도 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시간이 코앞이라 아까워서라도 잘 수 없었다. 비몽사몽으로 시계와 아빠만 번갈아 보고 있는 와중에 나이트 근무 선생님이 이제 다섯 시간이 되었으니 자도 된다고 하셨다.


“아 진짜요?”


반쯤 풀린 눈으로 다시 확인을 받고 침상 위 메인 불을 껐다. 불을 끄고 5분도 채 안 된 순간 아빠는 이미 잠이 들었다. 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분이 정상 컨디션도 아닌 상태에서 5시간을 참았다는 게 대단하고 안쓰러웠다. 아빠가 편히 잠든 걸 확인하고 보호자 침대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저녁을 강제로 굶은 탓에 배는 고팠지만 나 역시 밀려오는 졸음에 밥맛도 없어서 대충 씻고 쪽잠에 들었다.


유난히 고된 오후를 보냈기에 서로를 위해 오늘 밤에는 부디 아빠의 가래가 덜 끓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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