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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20. 2023

욕창관리 대작전




방심은 금물이라는 건 그냥 인생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회사일을 할 때도. 사실 기계가 아니고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것에 100%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해 능력을 쏟아내긴 어렵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고 어떤 날은 너무 아플 수도 있으니까. 그런 날, 안 생겨도 될 구멍이 나고 최악의 경우 그 구멍으로 오만 잡다한 것까지 와르르 쏟아질 때도 있다. 그나마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예방책은 ‘자만하지 않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정도면 내가 잘하고 있을까?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항상 본인에게 질문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봐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매사에 소심한 쫄보처럼 굴 필요는 없다. 돌다리를  두어 번 두드려보고 건너가긴 해야 한다. 삶이란 내 과거가 일수를 찍으며 내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미래에선 공수표 한두 장씩 던지며 앞으로 오라고 유혹하기 때문에 유예는 가능할지 몰라도 멈춰서 한없이 머무를 수는 없다. 간병도 똑같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놓쳐버린 것이 결국 눈앞에 놓인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든 계속 움직인다. 환자의 컨디션이 악화되거나 좋아지거나.




결국 내가 놓친 건 욕창*이었다. 그것도 뒤꿈치 욕창. 잠도 줄여가며 두 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두고 양옆으로 뒤집는 걸 그렇게 했는데 예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욕창이 생겨버렸다. 눈앞이 하얗게 됐다.


[*욕창이란 우리 몸의 어느 부위든 지속적인 또는 반복적인 압박이 주로 뼈의 돌출부에 가해짐으로써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 조직이 죽어 발생한 궤양이다.(네이버 지식백과_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발췌)]


‘어디서 놓친 거지? 욕창 매트를 깔았는데 이렇게 된다고?‘


동공 지진이 나버린 내 모습을 보고 수간호사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고 다독였다. (욕창 매트는 전기로 공기를 넣어 침상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욕창이 생기는 걸 방지해 주지만 공기가 빵빵한 부분에 움직임 없이 마비된 부분이 계속 닿아있음 그것도 압력이 전해져 피부가 괴사 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줄씩 교대로 바람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는 제품도 있는데 그건 일반 욕창보다 2-3배 비싸다.)


이미 생긴 건 어쩔 수 없으니 다른 부위에 더 생기거나 악화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하셨다. 바로 데이 근무 간호사 선생님이 뒤꿈치 전용 메디폼을 가져다 덧대주셨다.(5mm 정도 되는 폼인데 가격이 사악해서 진짜 너덜너덜하지 않는 이상 의료용 테이프로 찢어진 부분을 붙여 사용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그걸 권장하셨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보니 한 켤레에 2만 원 중반 대였다. 하지만 병원에 들어올 때는 그것보다 비싸다고 한다.)




괜찮다는 말에도 마음 한편이 욱신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다행히 회진 후 바로 피부과 협진이 잡혔다. 직접 봐야 한다고 외래로 내려오라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뜨는 아빠를 이송 요원(병원에서 혼자 거동이 안 되는 환자를 이동시킬 때 도와주시는 분)과 함께 휠체어에 겨우 태워 피부과로 내려갔다. 의사 선생님이 돋보기 같은 걸로 아빠의 뒤꿈치 욕창을 살펴보셨다.


“어. 이건 지금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네?”


상태가 안 좋다는 말보다 듣기에는 더 안 좋은 말이었다. 처치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뒤꿈치 표면 말고 안쪽에 생겼는데, 안에 고름도 없고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바를 수 있는 약도 없고… 일부러 열어서 상처를 내는 것보다 그냥 지켜보는 게 최선일 것 같네요.”


“더 심해지면 열어야 하나요?”


“그럴 수도 있는데 지금 이 상처면 스스로 나을 것 같긴 합니다. 더 이상 뒤꿈치에 압력 안 가게 관리 잘해주세요.”


애매한 말에서 희망을 찾았다. 스스로 나을 수도 있다니. 천만다행이었다.





피부과에 다녀오자마자 바로 욕창 관리 모드가 간병에 추가되었다. 손목이나 팔꿈치에도 욕창이 생길지 모르니 당장 병원 앞에서 작고 말랑한 쿠션을 두 개 정도 샀다. 간병 들어올 때 언니와 엄마한테 부탁해서 챙겨 온 메밀베개, 사탕 베개, 목 쿠션까지 하면 아빠 침상 위에는 베개 천지였다. 누가 보면 병원에서 베개 장사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모든 쿠션을 아주 요긴하게 썼다.(주말에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곳에서 베개 꿀팁을 많이 얻었다. 감사드려요!)


어른용 메밀베개는 아빠가 앉아있을 때 무릎 뒤 오금에 둬서 관절이 일자로 굳지 않게 방지하고, 아기용 메밀베개는 경관식을 할 때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게 지지하는 역할을, 솜이 적당히 들어서 말랑한 사탕 베개는 아킬레스건 뒤에 두고 뒤꿈치가 침상에 닿지 않게 공간을 벌렸다. 목 쿠션은 손목 아래 두고 압력을 분산시키며 통풍이 되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베개는 아빠의 체위를 변경할 때 총동원됐다. 아빠가 의식적으로 힘을 줄 수 없고 내가 계속 서서  한쪽 방향으로 잡을 수도 없으니 몸 방향을 바꾸면 등 뒤에 베개를 둬서 30분 정도는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지지했다. (보통 욕창 방지를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변경해 주라고 하지만 마비가 심한 사람은 30분에 한 번씩 돌려줘야 더 좋다고 하셨다.)




온 신경을 욕창에 쏟은 지 한 3주 정도 됐을까? 결국 아빠는 욕창을 이겨냈다! 압력을 최대한 줄이고 3-4일에 한 번씩 밤마다 바셀린을 발바닥에 꼼꼼히 바른 뒤, 위생봉투 안에 발을 넣어 불리고 닦아내는 과정을 여러 번 하니 죽은 각질들 속에서 결국 새살이 나왔다. 마지막 각질 제거에서 500원짜리 동전 2배만 한 직경이 거의 4cm에 육박하는 굳은 딱지가 피부에서 부드럽게 떼어져 나오는데 그 뿌듯함과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오죽하면 너무 기뻐서 나이트 근무선생님까지 불러와 확인을 시켜드렸다.


“우와.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처음 보세요? 저도 처음 봐요. 진짜 신기하네요?”


“이거 사진으로 찍어도 될까요? 노티 할 때 쓰려고요.”


“그럼요! 깨끗한 뒤꿈치랑 같이 찍어 가세요.”


그 오밤중에 조용하지만 기쁜 소란스러움이었다. 아빠가 아직 의식이 없어 과연 내 말을 들을까 싶었지만 아빠 머리맡으로 다가가 말해줬다.


“아빠 욕창 다 나았어! 불편했을 텐데 고생 많이 했어. 잘 회복해 줘서 고마워.”


 깨끗해진 뒤꿈치 덕분에 몇 주 동안의 부채감을 떨치고 쪽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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