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술 후 우리에게 남은 일은 다시 회복과 재활이었다. 아빠는 복원술 이후에 수두증*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할 뻔했지만 아주 조기에 발견한 덕분에 수습이 가능했다. 아빠에게 나타난 수두증의 처음 모양새는 마치 볼거리 같았지만 그와 조금 달랐던 게 왼쪽 귓불 뒤부터 턱 방향으로 미세하게 부어있었다. 여기 보세요! 저 부었답니다! 정도로 확 티 나는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로 병동 간호사 선생님께 알렸다.
PA 간호사 선생님은 회진 후 찾아오셔서 부어있는 쪽에 반시트를 단단하게 말아서 괴어주라고 하셨다. 또 석션 사태 이후 다시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자는 쪽잠 생활이 시작되는 걸 알리는 순간이었다. 아빠가 그때만 해도 완벽하게 누워 자는 상태가 아니라 상체를 20~30도 정도 높여서 자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괴어둔 시트가 옆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다 깨서 제 위치에 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수정을 해줘야 했다.
[*수두증 : 뇌실과 지주막하 공간에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로 어떤 원인에 의하여 뇌실 내 맥락총혈관에서 마지막 상시상 정맥동에 이르는 뇌척수액의 순환로가 일부 막히게 되면 뇌척수액이 두개강이나 척추강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게 된다. 뇌척수액의 축적은 대부분의 경우 뇌압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로 인한 증상과 뇌 발달의 장애를 일으킨다. 급격한 뇌압 상승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한 이틀 동안은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 몇 분이 돌아가며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아빠를 확인했다. (더 부어오르는지, 의식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지 등등…) 한 분이 아닌 여러분이 자주 오는 걸 보고 직감적으로 잘못하면 위중한 상황이 또 올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3~4일 정도 괴어줬더니 더 이상 붓지 않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사실 의료진 쪽에서 증상이 시작된 처음부터 아빠에게 수두증이 온 것 같다고 말하지 않았다. 부기가 빠지고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게 초기 증상이었다고 살짝 왔다가 간 거라고 말해줬다. 복원술 후 머리 안에서 생기는 뇌 척수액이 뇌 안에서 순환하다 제대로 흡수되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리 경한 질병이 아니었다. 만약 제대로 걸렸으면 우린 또다시 암담한 상황에 마주했을 것이다. (척수액을 인위적으로 빼주는 ‘션트 수술’**을 했을지도 모른다.)
[**션트 수술 : 뇌실복강 단락술이라고도 하며, 뇌실에 얇은 관을 두고 뇌척수액을 두피 아래로 뽑아내어 이어진 관을 통하여 이를 복강으로 보낸 후 그곳에서 복막을 통하여 다시 몸에 흡수되도록 하는 수술이다. 중간에 밸브 장치를 설치하여 뇌압의 높은 정도에 따라서 흐르는 뇌척수액의 양을 조절해 준다. 복강의 상태가 수술 등으로 좋지 않으면 가슴 폐주변의 흉강으로 넣기도 한다. 예전에는 밸브의 압력 수치를 조절하려면 다시 수술하여 밸브 자체를 교체해 주었으나 최근에는 체외에서 조절 가능한 밸브가 개발되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쉽게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 션트 수술은 수두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수술로써 교통성 및 비교통성 수두증 모두 치료 가능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수두증’에서 발췌)]
+내가 알기로는 밸브가 금속이기 때문에 MRI 찍을 때 꼭 이 수술을 했다고 이야기해야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수두증이 지나가고 이제는 신경외과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고 했다. 환자가 빠르진 않아도 회복 중이니 재활에 몰두해야 할 시기라 전원을 알아봐야 한다고 PA 간호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세상 막막한 이야기였다. 두 달 가까이 여기에 적응하고 지냈는데 당장 일주일 안에 병원을 옮겨야 한다니… 우선은 급한 대로 바로 옆 건물 한방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했다. (연계되어 있는 병원이라 따로 서류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한방은 원래 입원조차 엄청 어려운 곳인데 바로 옆이라는 이유로 나름 빨리 갈 수 있었다.) 그곳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양방에서 치료받던 운동치료사 선생님들과 연결해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운동 치료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약간 의아하고 찜찜한 표정을 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아빠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의식이 모호한 상태+ 기도삽관+연하곤란+완전 오른쪽 편마비+언어는 하나도 안 되는 상황_써 놓고 보니 최악이네.) 이 시기에는 한방치료보다는 양방에서 재활을 많이 받아 의식을 깨우는 게 중요하니 차라리 전원이 아니 재활의학과로 전과를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속 갈대밭에 태풍이 불어버린 것 같았다. 갈등도 사치일 만큼 시간은 가고 있었고 몇 시간이라도 빨리 PA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다행히 오전 재활을 끝내고 돌아와서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죄송하지만 재활의학과로 전과를 하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하지만 재활의학과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아서 빨리 안 될 수도 있으니 한방에 대기도 걸어두고, 다른 병원도 알아봐야 한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간병하기도 바쁘고 힘든 상태라 언니에게 아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아서 재활 전문병원으로는 아직 갈 수 없다, 그러니 연하 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정보를 입수한 언니는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대학병원들로 전원이 가능한지 확인을 하고 재활의학과 대리 진료를 보기 위해 서류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재활이 끝나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서류와 영상 CD를 발급해 주는 창구에 아빠를 모시고 가서 CT 기록과 영상판독지, 그간 치료기록 등 관련 서류는 몽땅 발급받았다. 양이 엄청나서 CD와 서류 발급 비용만 몇만 원씩 나갔다. A4용지 한 묶음 이상이 되는 서류는 엄마와 교대할 때 집에 들고 오면 언니가 찾아가는 식으로 전달했다. (언니는 항상 서류 발급 비용이 아깝다며 대리 진료를 보고 꼭 서류를 다시 찾아와 다른 병원에 들고 갔다. 알뜰함 칭찬한다!)
[***연하 치료 : 연하장애가 발생한 환자에서 삼킴 기능의 회복을 위하여 시행하는 제반 치료를 의미한다. 여기서 연하 즉, 삼킴은 음식물을 인식하고 입안으로 가져간 후 구강과 인두, 그리고 식도를 거쳐 위까지 보내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비록 단순해 보이지만 음식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구강 및 인두에 있는 많은 근육들이 순차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하도록 정교하게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순차적이고 조화로운 근육 활동은 뇌간의 연하중추뿐만 아니라 이에 영향을 미치는 양측 대뇌 반구는 물론, 감각 정보와 근수축 신호를 전달하는 뇌신경의 정상적인 기능을 필요로 하며,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는 경우에는 연하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연하 치료’에서 발췌)]
다행히 일주일 안에 재활의학과로 전과가 가능해졌고 첫 수술 후 57일 만에 정들었던(?) 서관 신경외과 병동에서 본관 재활의학과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진짜 파란만장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재활 지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