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아미 Oct 20. 2023

가래 살려!




집중치료실에서 비몽사몽으로 6일을 보내고 드디어 일반 병실로 들어왔다. 아빠가 그만큼 안정됐다는 증거이자 이제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로 오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는 방증이었다. (집중치료실에 있으면 간호사 데스크에서 아빠의 상태(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를 모니터에 띄어두고 보신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지체 없이 오신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는 말과도 같았다.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의 반은 내가 밤낮으로 아빠를 보며 짧은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간병인에 적응을 한 덕분에 덜 어리바리하게 일반 병실에 올 수 있었다.(내 기준으로 정말 간호사 선생님들 질리게 물어보고 도움 요청했는데 면전에서 진상 취급 안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일반 병실로 들어오면서 간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석션*이었다.


 [*석션(suction) 은 병원에서 수술 등의 행위를 할 때 사용되는 가래나 혈액 등을 흡입해 주는 기계이다. 석션은 환자가 호흡할 수 있도록 피, 타액, 구토, 기타 분비물을 청소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폐위생학에서 석션은 호흡을 용이하게 만들고 유기생물의 성장을 예방할 목적으로 기도로부터 유액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출처 : 위키백과)]


인터넷에서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데 막상 현장은 심플하지 않다. 원래 기관석션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는 의료 행위라고 하는데 인력은 한정적이고 환자들은 많고 석션은 정말 수시로 병실 문턱이 닳게 오며 가며 해주셔야 하는 부분이라 병원 내에서는 관례처럼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교육 아닌 교육을 간호사 선생님들께 받고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수간호사 선생님, 데이 근무 때 간호사 선생님들, PA 간호사 선생님께 배워서 선생님들이 빨리 못 오시고 급할 때(가래가 정말 부글부글 끓을 때) 수시로 석션을 하게 되었다. 한 달가량 석션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 전까지는 거의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꼭 해야 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과 습도가 높은 밤은 거의 10분에 한 번씩 석션을 하며 쪽잠조차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비가 억수같이 많이 오던 8월의 어느 날 밤. 나와 석션으로 전우애를 다진 나이트 근무 간호사 선생님이 계셨다. 병동을 한차례 돌고 나서도 우리 때문에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병실에 찾아오셨다. 그 고요한 밤 동안 나는 수시로 석션을 하느라 지치고, 아빠는 들끓는 가래 때문에 잠 못 들고, 선생님은 미쳐버린 가래 양에 진땀을 빼셨다.


“아이고… 우리 아버님 이렇게 가래가 끓으셔서 잠을 어떻게 주무시나… 따님도 한숨도 못 주무시네요.”


“선생님 죄송해요. 도저히 제가 하는 걸로는 해결이 안 되어서 자꾸 귀찮게 하네요.”


“아니에요. 이렇게 계속 끓으면 혼자 못하세요. 저랑 우선 해보고 안되면 다른 선생님 불러올게요.”


선생님과 내가 수시로 가래를 빼도 감당이 안 되자 선생님은 선임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오셨다. 나이트 근무를 하시는 선생님이 삐약삐약 느낌이라면 구원자로 오신 선생님은 마치 사건을 해결하러 온 범죄도시 마동석 같았다.(형은 다 알 수 있다? 왜 가래가 끓는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선생님. 이 환자가 아무리 가래를 뽑아도 계속 끓어서요. 저희가 몇 시간 동안 했는데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요?”


그 선생님은 무심하고 간결하게 위생장갑을 착용하고 아빠의 흉부를 요령 있게 몇 번 두드리고 카테터에 식염수를 적신 다음 석션을 시작하셨다. 모든 일이 끝나기까지 채 3분도 안 걸린 것 같다.


“된 것 같네.”




상황 종료를 알리고 선생님은 쿨하게 사라지셨다. 신기하게도 아빠는 동틀 무렵 가래가 잠잠해졌고 나는 밖이 밝아오는 걸 보고 겨우 한숨 붙였다. 밤새 우린 무슨 이유로 그렇게 힘들게 석션을 한 건지 현타가 왔지만 가래가 줄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회진 시간 전에 우리 병실에 오신 수간호사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의학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비가 오고 습도가 높은 날은 가래가 엄청 생긴다고 하셨다.


이럴 때 가래를 잘 제거하지 못하면 폐렴이 올 수도 있으니 석션 전에 가래가 폐와 기관지에서 잘 떨어져 나오도록 폐 앞, 뒤, 옆을 손을 오목하게 모아서(오목하게 모으는 이유는 두드릴 때 압력이 확실하게 걸려야 하기 위함) 두드리거나 고무 팡팡이(어린아이들 객담 배출에 용이하도록 만든 가운데가 움푹 파진 돔 형태의 고무 소재 도구)로 때려줘야 한다는 말도 하셨다.


회진 후 점심시간에 오신 PA 간호사 선생님은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려 주셨다.


“사람이 체감은 못하지만 건강한 사람도 하루에 2리터 가까이 몸에서 가래가 발생해요. 신기하죠?”


진짜 신기했다. 건강한 사람도 하루에 2ml도 아니고 2L씩이나 나오다니! 생각지도 못한 의학지식을 알려주신 선생님은 이번에 석션도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다. 뽑기 전에 충분히 흉부를 두드리고(폐의 크기는 생각보다 커서 갈비뼈 안이 다 폐라고 생각하고 때리면 된다고 하셨다.) 카테터에 압력을 걸지 말고 신속하고 조심스럽게 목관 안으로 쑥 넣는데(보통 10-15cm 안되게 넣음) 이때 뭐가 닿는 느낌이 나면 멈춘 다음, 압력을 계속 걸면서 카테터를 빼지 말고 촙! 촙! 촙 압력을 끊어가며 빼면 입구에서 조금씩 여러 번 제거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많이, 환자도 시원하게 느낄 정도로 빼줄 수 있다고 하셨다. 정말 그렇게 뽑고 나니 아빠의 가래도 전보다 확 줄었다. (진짜 경력은 걸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시 태어나도 의료인은 못될 것 같았다.)




재활치료에 가서도 가래가 많이 끓으면 치료사 선생님들도 가래를 확실하게 빼주셨다. 다만 기계가 아닌 오로지 기술로 빼주셨다. 어느 날 담당 선생님이 휴가를 가셔서 팀장님께서 운동 치료를 해주셨는데 역시나 가래가 많은 날이었다. 팀장님은 주저하지 않고 누워있는 아빠를 일으켜 앉혔다. 다리를 땅에 지지하게 두고 균형을 못 잡는 아빠의 마비된 오른쪽에 내가 앉고 팀장님은 앞에 앉아서 아빠의 상체를 땅과 거의 수평이 되게 접었다. 그 상태로 아빠의 등 쪽 폐 부분을 팡팡! 두드리셨다. 운동치료실이 정말 쩌렁쩌렁 울렸다.(이렇게 몇 번 하고 나니 목관에서 가래가 덩어리로 두어 번 나왔다.) 본인이 시범을 보인 뒤에 나에게도 보다 정밀하게 손 모양과 두드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신경쓰지 않으면 막 두드리게 된다. 요령도 손에 익도록 연습!


손을 오목하게 만들 때는 너무 구부리지 말고 안에 작은 달걀이 하나 들어올 만큼만 오므리고 꼭 손가락 사이에 빈틈이 없어야 하며, 두드릴 때는 과감하게 두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게 소리는 엄청 큰데 환자는 하나도 안 아프다며 내 등에 시연(!!)까지 해주셨다. 근데 정말 시원하기만 하고 아프진 않았다. 또 신기하고 유용한 기술을 알게 되었다. (아빠부터 나까지 생에 첫 대학 병원이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간병 지식의 80-90%는 거기에서 다 배워온 것 같다.)   


그날 이후로 간병이라는 게 참 배워도 배워도 배울게 생긴 다는 걸 알았다. 그냥 한 번 배운다고 해서 오롯이 내 지식이 되는 게 아니고 업데이트는 필수였다. 진짜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 내가 이거면 되었지- 하는 순간 분명히 놓치는 게 생기고 말 못 하는 아빠가 주는 신호를 놓칠 수 있다.



방심하지 말자. 그리고 경청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