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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19. 2023

죽음은 포장 할 수 없다




겨우 눈을 떴다. 엄마가 잠든 사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죽이며 울었던 것 같다. 어둠이 주는 공포감은 내 기분을 높은 확률로 더럽게 만들지만(그래서 놀이공원 귀신의 집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이번에는 뼈에 사무치게 슬픔과 절망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들었으니 눈이 퍽이나 잘 떠졌다. 누가 내 눈꺼풀에 300방짜리 사포를 붙여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몹시 까끌거렸다.


엉망진창인 얼굴을 대충 씻어내고 하루 사이 바짝 말라 거죽밖에 남지 않은 엄마와 간신히 아침밥을 한 술 떴다. 밥 먹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우선 핏기 없는 엄마의 얼굴만 마주 봐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넘어가지도 않는 밥알을 곱씹으며 아빠를 생각하니 이 상황 자체가 몰래카메라 같았고, ‘어? 이거 혹시 꿈인가?’ 싶으면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 통과 목덜미를 무쇠솥으로 내리치며 현실이니 정신 차리라고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 하루 사이에 나와 내 가족이 십수 년 쓴 양은 냄비처럼 찌그러져버렸다.


“약은 내가 가져다주고 올 테니까 엄마는 집에 있어. 멀어서 내가 가는 게 나아.”


“너 어제 잠도 못 잤는데 가려면 힘들 거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가 갈까?”


“잠을 못 잔 건 엄마지. 난 엄청 잘 잤는데? 그리고 병원 가는 길 되게 지루해. 그냥 집에서 쉬세요. 심란하다고 움직이지 말고 누워계셔.”


“… 그래 그럼……. 조심히 다녀와.”




어제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이 평소 아빠가 먹고 있는 약이 있으면 챙겨 오라 하셔서 일주일 전쯤 동네 내과에서 새로 타온 당뇨와 혈압약봉지를 그대로 넣었다.


병원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걸 떠올리자마자 눈물이 삽시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당장 아빠가 곁에 없다는 게 거짓이 아닌 걸 알지만 체감이 되지 않았다. 눈물은 눈물대로 나오고 내 머리와 마음은 다시 진공포장 당해 무중력 공간에 던져진 것 같았다. 정신을 붙잡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찾고 싶어도 처음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유가, 상황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자잘한 일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모여 알아차리지도 못한 순간. 눈앞에 떡하니 울산바위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나라는 존재가 내 생각 속에서 쓸모없는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다 보니 병원 앞에 도착했다. 병원 근처 역까지 계속 눈물을 흘리고, 닦고, 코를 배부르게 마시며 도착했다.(정말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소셜미디어에 정신 놓고 우는 여자로 조회 수 좀 올렸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얼굴을 다듬고 중환자실 호출 벨을 눌렀다. 그저 벨뿐인데 다리는 덜덜 떨렸고, 심장은 무릎까지 떨어졌다 올라왔다. 그 벨은 정말 저승길 초입에 있는 안내자에게 내가 왔다고 알리는 것 같았다.(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간호사 선생님께 타온 지 얼마 안 되어 가득 차 있는 약봉지를 전해드렸다. 간호사 선생님 어깨너머로 아빠를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누가 누워있는지 구분되지 않는 환자 침대만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저희 아빠…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목이 메어와 겨우 저만큼의 말만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무거운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제한구역 철문이 닫히자마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철문 바로 옆 비상계단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누가 듣든지 말든지 상관없었다. 댐의 실금 사이로 줄줄 새어 나오던 눈물이 결국 댐을 폭파시켰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미리 다정하게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턱 끝까지 쫓아온 죽음이 나의 멱살을 잡고 이래도 버틸 수 있겠냐고 흔들었다. 네가 그렇게 염세적으로 살며 가벼이 여기던 죽음의 현실이 바로 이것이니 직시하라는 것 같았다.




저주였다. 이 정도면 누가 남에게 보낼 불행과 일방적인 저주를 우리 가족에게 퍼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내 인생은 행복에 다가가면 누가 자꾸 옆구리에서 칼을 꽂았다. 예전 상처가 다 아물어 망각에 빠질 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행들 덕분에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착각이었나 보다. 이번에 꽂은 칼을 뭐 어디 마장동에서 소를 썰던 칼이었는지 억 소리도 나지 않게 아프다. 이 와중에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가족은 지켜야 하니 죽지 않게 숨만 쉬고 살 수 있게 급소는 빼고 깊게 찔린 것 같았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벌게진 눈을 벅벅 닦았다. 이렇게 울 시간이 없다. 집에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쓰러지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엄마마저 잃는 것은 막아야 한다. 아빠의 운명은 본인과 병원에 달렸으니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 난 엄마 곁을 지켜야 했다. 이게 제일 첫 번째 임무였다.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난 말만 불효자가 아닌 리얼 불효자가 될 테니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앞으로 이렇게 우는 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스스로를 굉장히 과대평가한 다짐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함부로 다짐을 하면 안 된다. 꼭 그렇게 되지 않는 날이 기필코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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