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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20. 2023

간병, 끝을 알 수 없는 시작




언니의 연락을 받고는 부랴부랴 병원에 들어갈 짐을 챙겼다. 무슨 정신으로 짐을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병원 안 간병 생태계와 룰은 생각도 못 하고 아빠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병원에서 챙겨 오라는 것들과 예전에 병원 입퇴원을 자주 했던 다른 가족에게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가 필요할 것들을 마구잡이로 챙겼다. (이 짐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중에 마지막 전원(병원을 옮기는 것)을 할 때는 마트 카트에 차곡차곡 넣어도 산더미 같은 짐이 되어버렸다.)


병원에 가서 아빠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 언니, 나  세 명이 돌아가며 간병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무지함과 어리석음의 끝판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덮친 병원은 엄청 까다로워져 보호자는 무조건 한 명만 있어야 했고, 하루 중에 여러 번 보호자를 바꿀 수도 없었다. 거기다 교대할 때마다 매번 원무과에 내려가 민증을 보여주고 보호자용 손목팔찌를 교체해서 받아야 했다.(나중에는 이골이 나서 교대는 일도 아니었지만 교대가 쉬우면 꼭 다른 데서 문제가 터진다.)




점심이 살짝 지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만나기만을 기다렸던 아빠를 드디어 내 눈으로 봤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아빠는 몸에 주렁주렁 정말 많은 것들을 달고 나왔다.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어서 순간 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멍함은 찰나였다. 중환자실에서 같이 나온 간호사 선생님이 빛의 속도로 상태와 상황을 인계해 주셨다. 내가 인계를 받는 사이 신경외과 집중치료실로 들어간 아빠에게 대여섯 명 되는 신경외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붙어 아빠를 침상으로 옮기고, 몸에 붙은 선들을 정리해 주셨다.(극한 직업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는 기분이었다.) 처치가 끝나자마자 이브닝 간호사 선생님이 보호자가 해야 할 일들을 나에게 설명해 주셨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나열해 보자면,


@ 소변량&대변 양 체크하기

@ 가래 석션(이건 원래 의료인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가래가 진짜 수시로 끓어서 초반에는 간호사 선생님이 많이 해주셨지만 나중에는 보호자가 더 많이 함)

@ 욕창 생기지 않게 두 시간마다 좌우로 뒤집기

@ 기저귀 제 때 갈기(방치하면 욕창생길 가능성 높아짐)

@ 가래 빠지게 흉부 앞뒤로 두드리기

@ 콧줄로 유동식 챙기기(+식간에 소화 다 되었는지 체크하기)

@ 콧줄로 물과 약 먹이기

@ 경련 나면 경련이 생긴 구체적인 부분과 시간 지체 없이 간호사님께 꼭 말하기

@ 호흡기 치료하기


이 정도가 기본적으로 보호자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평생 꼼꼼함과 거리가 멀었던 내가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었지만 아빠를 잘 지키고, 회복하게 도와주려면 타인의 꼼꼼함을 웃돈 주고 사 와서라도 해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조무사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아하셔도 계속 물어보고 확인받았다.(평생을 감사해야 할 신경외과 수쌤+나머지 간호사 선생님들!)




하루는 어버버 하며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주말 출근을 뺄 수 없는 내가 엄마랑 교대를 해야 했다. 시력이 안 좋은 엄마는 안경을 써도 큰 글씨가 아니면 가까운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고, 체력은 이미 보름 가까운 시간 동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나도 어려워서 헤매는 일을 엄마가 과연 다 해 낼 수 있을까 싶었다.(하지만 엄마가 괜히 엄마가 아니라는 걸 병간호하면서 알았다.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엄마의 정신력 하나는 진짜 최고 수준이다.)


아빠의 상태를 체크하며 의도치 않게 밤을 거의 꼬박 새 버렸는데 그 시간 동안 간호사실에서 A4용지를 얻어와 해야 할 일을 큰 글씨로 모조리 적었다. 엄마에게 말로도 설명하고 그게 부족하면 이 메모를 보라고 눈을 뒤집어까며 최대한 꼼꼼하게 썼다. (마음도 급하고 오랜만에 많은 글씨를 쓰자니 악필이 되었지만 혹시 누군가 참고할 수도 있으니 병원마다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일만 사진으로 첨부해 봅니다.)


 (이것들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그건 병원마다 상이한 것들이라 병원마다 알려주는 방식대로 하면 될 것 같다.)


나이트 근무 간호사 선생님이 아빠를 체크하기 위해 오며 가며 나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쓰세요? 잠도 안 주무시고?”


잠을 이겨내며 뜬 게슴츠레한 눈을 벅벅 비비며 대답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해서 엄마랑 교대를 해야 하는데 계속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볼 수는 없으니 제 나름대로 인수인계해 드리려고요. 내일 저희 엄마 오시면 많이 물어보실 텐데 미리 죄송해요.”


"아니에요. 이제 간병 시작했는데 그러실 수도 있죠.”




밤낮없이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셔서 분명 귀찮으실 텐데 말이라도 감사했다. 오후가 되어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아빠의 짧은 머리카락과 그 밑에 개두술로 푹 꺼져버린 왼쪽 머리모양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으셨다. (물론 나도 그랬다.) 같이 그 자리에서 울 수는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회복시키려면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려서 간병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최대한 차근차근 엄마에게 인수인계를 해드렸다. 엄마는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가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나를 얼른 집으로 보냈다. 부족한 잠 때문에 몽롱하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과 한두 시간 사이에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더 빠져있었다.


“너희 아빠 얼굴을 보고 하려니까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약도 쏟을뻔하고 밥도 제대로 못 달아서 난리였어… 내가 다음에 또 할 수 있을까?”


“엄마. 해야지. 우리 하기로 했잖아. 오늘 하루만 잘 버텨줘. 내일 언니 오면 적어둔 종이 보여주면서 인수인계 잘해주고. 똑똑해서 잘할 거야. 너무 걱정 마.”




엄마에게 여지없이 단호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내가 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간병인을 쓸 여력도 없었지만 주위에서 간병인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터라 처음부터 쓸 생각도 아예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평소 성격을 토대로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 본 결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간병을 한다면 빠르고 긍정적으로 회복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사시나무 떨듯 하루 동안 간병을 마친 엄마가 언니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사연이 많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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