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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20. 2023

고요 속의 외침




인수인계. 사전적 뜻으로는 ‘물려받고 넘겨줌’이라고 한다. 일상에서도 그런 뜻으로 쓰인다. 회사에서 후임에게 일을 알려줄 때,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교대할 때 보통 사용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에서 엄마 - 언니 - 다시 나로 이어지는 간병 구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인수인계는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여러모로 인수인계라는 게 쉽지 않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우린 두 귀를 아주 꽉 막고 3일 동안 서로 고요 속의 외침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우선 간병에 뛰어들어야 하는 세 사람의 컨디션부터 이야기하자면 엄마는 망막박리 수술을 한 상태라서 한쪽 눈의 시력이 아주 낮았고 스트레스나 충격을 받으면 수술한 눈에서 섬광이 터지는 현상이 일어나거나 물체들이 울렁거려 글을 보기 힘들었다. 거기다 심장의 기능이 약해서 지금 이 상황을 버티고 있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언니는 출산 후 디스크가 안 좋아져서 몸을 쓰는 일을 조금 하면 바로 복대를 차야 했다. 갑상선 항진증 약을 열심히 털어먹고 있는 내가 그 중 제일 건강하다는 게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각자 몸이 아픈 중에 간병을 해야했으니 인수인계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는 아니었다. 둘의 의사소통 오류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 (혹시나 나중에 언니가 우연히 이 글을 보고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할 수 있지만 응. 그랬다. 습자지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하루 동안 간병을 마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언니에게 내 종이를 바탕으로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최대한 꼼꼼하게 알려줬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는 언니가 제대로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혼자 아빠 옆에 남은 언니는 엄마의 인수인계를 어디로 증발시켰는지 간호사 선생님과 조무사 선생님들에게 엄청난 질문 폭격을 날리며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주말 근무 중인 나에게 두어 번 전화까지 와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 하면서 엄마가 알려준 거는 다 엉터리라는 말까지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지?’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일요일 퇴근과 동시에 한 시간 반 동안 대중교통을 타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짐을 이고 지고 병실에서 마주한 언니의 모습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아주 오만상을 쓰고 허리에 복대까지 찬 상태였다. 게다가 보호자 침대에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 병상 근처를 걷는 거 자체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빠는 별일 없었지?”

“어. 별일 없었어. 가래가 많이 끓긴 했는데-”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별일이 아빠한테는 없었고 본인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언니는 다시 한번 말했다.


“엄마가 인수인계해 준 건 쓸모없었어. 다 다시 물어보고 네가 써놓은 종이 보고했어. 엄마가 이상하게 다 알려주고 갔다니까? 아니 그리고 아빠 대변은 그걸 어떻게 치워? 된 변은 하나도 안 나오고 다 묽어서 치우는데 힘들었어.”


나오는 한숨을 겨우 틀어막고 속으로 삼키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차분하게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아… 간병은 언니가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이건 엄마랑 내가 둘이 해내야 하는 일이구나.’




순식간에 결론이 났다.


언니를 집으로 보내고 5일 치 짐을 정리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엄마는 내 걱정부터 했다. 일을 마치고 바로 오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도 엄마에게 식사는 하셨는지 물어보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엄마. 아무래도 간병은 우리 둘이 해야겠어. 내가 평일에 5일 하고 엄마가 나 주말 출근하는 동안만 해주면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엄마도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평소 하소연이라고는 분기에 한번 할까 말까 한 엄마가 조심스레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가 간병을 하며 엄마에게 전화해서 쏘아붙인 것 같았다. 엄마가 잘 안 알려줘서 실수할 뻔했고, 조무사님이 가족에게 인수인계 안 받냐고 하며 자신을 무시하듯 대했다. 엄마한테 인수인계받는 게 아니었다. 보람이한테 받을 걸 이게 뭐냐. 등등 결국 다 엄마가 잘못 알려줘서 제대로 한 게 없다는 내용이 태반이었다.


온갖 줄을 다 달고 있는 아빠를 보며 그 통화 내용을 듣는데 간이침대를 바다에 던져놓은 것 마냥 어질어질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닌 사람이 내 지척에 있을 줄이야. 나보다 열 살은 더 먹은 사람이 할 언행이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와 둘이서만 간병을 하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세미 코마 상태에 있는 아빠의 손을 물티슈로 닦아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있다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 늙은 나이에 나를 준 건 목적이 있구나. 그 목적이 바로 책임감을 가지고 부모를 마음 다해 보살필 것. 자식 둘은 할 수 없는 일이라 그 일을 할 늦둥이 막내를 낳게 한 것 같았다. 신이 일방적으로 내게 준 내 삶의 이유였다. 하지만 나도 이 운명을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내 생의 목적이 그렇다면,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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