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선 회복탄력성 이야기
"지구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편이 제 물건을 다 버렸어요."
"어떤 물건이죠?"
"제가 쓰는 물건들이요."
"위치가 어디십니까?"
"행복아파트 정문으로 와주세요."
혹시 남편이 일반쓰레기를 버린 걸 착각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 안에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증을 안은 채 오 순경과 함께 순찰차에 올랐다.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자 아내는 우리를 분리수거장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쌀 포대만 한 검은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안에는 옷가지, 화장품, 액세서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게 다 제 물건이에요. 남편이 말도 없이 버렸어요."
봉투 안의 물건들은 대부분 멀쩡했고, 심지어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새 제품도 있었다. 단순히 실수로 버렸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업무용 단말기로 현장을 촬영한 뒤 신고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안은 이사를 며칠 앞둔 것처럼 휑했다. 거실에는 식탁과 소파만이 남아 있었고, 남은 짐들은 박스에 담긴 채 한쪽 벽에 쌓여 있었다. 그곳은 마치 온기가 빠져나간 빈 껍데기 같았다. 남편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묘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아내는 오 순경과 함께 안방으로, 남편은 나와 함께 작은 방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목이 부러진 청소기와 주먹 자국이 패인 문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한 지 1년. 초혼인 남편과 재혼인 아내, 그리고 아내의 초등학생 딸. 남편은 처음엔 모든 걸 품을 만큼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격 차이로 갈등이 반복되었고, 이혼을 고려할 만큼 관계는 멀어졌다고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딸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와 말투를 두고 서운함을 표현하자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남편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폭행은 없었나요?"
"오늘은 없었습니다."
"자녀분은 어디 계세요?"
"학교에서 아직 안 돌아왔습니다."
오 순경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 양쪽 진술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과거 아내는 딸과 함께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었다는 이야기가 신경 쓰였다.
"아무리 부부라도 동의 없이 상대방의 물건을 버리면 재물손괴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폭행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고소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정폭력 피해지원 제도에 대해서 안내한 뒤 당분간 떨어져 지낼 것을 권유했지만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각방 쓴 지 오래예요..."
"마주칠 일 없을 겁니다."
아내는 처벌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돌아가 달라고 요청했다. 더 이상 개입할 여지가 없었기에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아내로부터 다시 신고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남편이 위협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다시 그들과 마주했다.
"아내가 방 밖으로 안 나오겠다더니 거실에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큰소리를 좀 쳤더니 제 손을 물었어요. 그리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또 신고한 거예요."
"거실에 물 좀 가지러 나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제 턱을 꽉 움켜쥐었어요. 숨이 막힐 정도로 힘이 너무 세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몸부림치다 살려고 물었어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의 행동은 정당방위로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판례는 그 범위를 좁게 해석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당방위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또한 현장에서 증거가 부족하여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물리력을 사용하였더라도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까지 상대방의 주장에 따라 오히려 쌍방폭행의 가해자로 추정되기도 한다.
아내는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절차를 거슬러 판단할 수는 없었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현장 경찰관들은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절감한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들어왔다. 아이는 한참 동안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버렸다.
"따님을 혼자 둬도 괜찮을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남편이 말했다.
"..." 그녀의 표정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부모의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한 모습을 보여주고도 아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 속에서 이 가정이 어떤 세월을 버텨왔는지 알 것 같았다.
자녀를 위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배우자의 폭력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금전적인 어려움이나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가정을 유지한다면, 그 환경 속에서 자라는 자녀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한 연구에 따르면 부부싸움은 아이에게 전쟁을 겪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부모는 단순한 감정싸움이라 여기지만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처럼 각인된다. 특히 자녀가 이러한 다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폭언과 신체적 폭력이 동반될 경우, 이는 아동의 정상적인 정서 발달을 방해하는 정서적 학대로 인정될 수 있다.
피해 부모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음에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한 번만 더 믿어볼게요."라며 폭력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 말속에는 사랑이라 부르기엔 아픈 애착과 두려움, 그리고 삶을 버릴 수 없는 절박함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가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체념의 반복일까. 가정을 지키는 일은 함께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멀어지는 선택이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되기도 한다. 진짜 보호는 고통의 대물림을 끊어내려는 결심에서 시작된다.
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응급조치를 진행하였고, 재발 시 법원의 결정에 따라 접근금지나 연락 제한 등 임시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통보한 뒤 현장을 정리했다. 아동학대 정황은 폭행 사건과 함께 여성청소년수사팀으로 인계되었다.
남편과 함께 현관문을 나서자 비상구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따님 같은데 그대로 둬도 될까요?"
"내버려 두세요."
남편의 입에서 아이를 향한 폭언과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집에서 일 년을 함께 지낸 사이였다. 그는 줄곧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오 순경과 남편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나는 발걸음을 돌려 비상구로 향했다.
문을 열자 계단 구석에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몸을 웅크린 채 울음을 틀어막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가장 먼저 침묵을 배워야 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아이가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경찰관으로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또래의 두 딸을 둔 아빠로서 이런 상황을 막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나는 아이보다 한 칸 아래에 앉았다. 위로의 말 대신 그저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말보다 표정을, 표정보다 분위기를 먼저 느낀다고 한다. 우리 앞에 멈춰 선 이 아이 역시 이곳마저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자신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그 위태로운 감각이 소리 없는 울음으로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 흐느낌은 어떤 말보다도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다.
한참을 울던 아이는 조용히 눈물을 닦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지구대 명함 뒷면에 이름을 적어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해."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집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바로 이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에만 생사의 갈림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등을 돌린 어른들에게 방치된 아이들 역시 그 길 위에 서게 된다. 무시하고, 소리치고, 손찌검하는 부모의 모든 행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채, 아물지 않는 상처를 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때 어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의 나침반이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방향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무심한 행동 하나가 길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꼭 밝은 빛이 아니어도 좋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넘어지지 않을 만큼만 비춰줘도 된다. 그 길을 따라 아이들이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 그제야 그 빛은 제 역할을 다하게 되고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