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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짱상 Sep 02. 2024

아키타현 가와라게 지옥의 생이별

일본에서 4년, 4계절 3인 가족의 네 번째 여름 이야기

엄마

4년간의 일본 생활, 아니 우리 가족의 탄생 이후 최대 위기의 순간이 바로 이 지옥 유황 화산지에서 찾아왔습니다. 화산 활동으로 백화된 땡볕의 지옥 트레킹 길에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건입니다.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는 덥긴 긴해도, 처음 보는 이국적인 풍경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트레킹 길 위에서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어가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8월의 그늘 하나 없는 이곳의 더위에 점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다음 목적지인 폭포가 저 건너편에 있는데, 차로 여행 중이라 우리는 주차해 놓은 장소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순간에 나서는 건 항상 아빠입니다. 반갑게도 아빠가 혼자 돌아가 차를 몰고 오겠다고 합니다. 고마우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들과 나는 건너편쪽 다음 목적지 방향으로 갔고, 남편은 뒤돌아 차를 주차해 놓았던 곳으로 향했습니다. 남편은 성큼성큼 믿음직한 발걸음으로 가파른 언덕을 뛰다시피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뒤로, 남편과는 2시간 넘게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보니 이곳은 인터넷도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네요. 


벤치의 작은 그늘에서 아들과 단둘이 기다리며 이래저래 아무리 시간을 헤아려 봐도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거리입니다. 그런데 벌써 2시간째입니다. 황량한 이곳에 어린 아들과 내가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 속이 복잡했습니다.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2시간이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제 밤 묵었던 숙소로 걸어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 혼자가야 하나, 아니다 아이랑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로 무장하고 길을 나서려던 순간에 급하게 유턴해 들어오는 우리 차가 보였습니다. 


휴! 살았다!


아들 

이때만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유황 냄새 나는 곳에서 거의 2시간 넘게 찜닭이 된 일입니다. 사실 저는 아빠가 혼자 다녀온다고 했을 때에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리 더운 날에 혼자 30분간 차를 가지러 가다니, 이런 것이 가장의 몫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1시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했지만, 와이파이가 없는 1시간은 공부를 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찌저찌 1시간이 흘렀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빠 걱정보다는 옆에 있는 폭포를 구경하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빠의 걱정이 먼저였지만, 당장 눈앞의 재앙에서 살아남으려면 폭포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했습니다. 중간에서 저는 이건 아니라며 엄마랑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빠는 1시간도 넘게 지나서 왔네요.


아빠

아키타현의 온천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인근 유황산을 체험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날씨가 덥고, 저 아래 보이는 관광지까지는 제법 멀어 보여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저 아래 도착해서 다시 산정상 가까운 주차장까지 올라오는 건 가족 모두 열사병에 걸릴 것 같아 중간쯤에 나는 돌아가서 차를 가지고 올테니 아래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습니다. 


산악 지대라 네비게이션이 먹통이어서, 저기 보이는 목적지 방향으로 감만 믿고 달렸는데 점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다시 내가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전파가 닿지 않는 산악 지대라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또다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서 길을 찾아볼 것인가. 할머니의 조언대로 왔던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할지 몰라도, 거기에는 분명 길이 없었던 기억이 나 불안했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을 하며 한참을 허둥지둥 차를 몰다 보니 한 가지 떠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 휴대폰은 먹통이지만 자동차의 순정 네비게이션은 작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성이와 아내가 있을 법한 지도 위치를 대략 찍고 그 방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이미 한 시간이 지났고, 지금 열심히 되돌아가도 가족이 우리가 약속했던 그곳에 기다리고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하지만 은성이와 엄마를 믿기로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차 네비의 도움으로 겨우 약속했던 곳에서 2시간이 지나서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두 모자가 내 차를 보더니 달려왔습니다. 


드디어 이산 가족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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