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67
“좀 일찍 연락하지 그랬냐? 벌써 데모도 다 구했는데…”
“네, 나중에 일손 필요하심 연락 주세요.”
“일당은 그대로지?”
“네 그대로 주심 됩니다.”
“Ok, ok”
멜버른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일거리가 없어 노는 날이 많아졌다. 노가다 특성상 공사가 시작할 때 합류하지 않으면 한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택건이 아는 목수들은 대부분 필요한 데모도들을 구해서 공사를 시작했다. 물론 택건은 A급 데모도로 소문이 나 있어서 일을 구하려 여기 저기 연락을 돌리면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먼저 나서서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벌어놓은 돈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택건은 다른 데모도들처럼 데모도 일당만으로도 버틸 만했다. 호주의 값비싼 술, 담배만 하지 않아도 돈을 적잖이 세이브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더라…”
궁핍하지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 택건은 일기를 쓰려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별일이 없었다. 그는 드넓은 공원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전혀 심심하진 않은 하루였다. 책이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낮잠을 잤다. 배가 출출해지면 챙겨갔던 간식을 꺼내 먹었다. 그렇게 하루 해가 저물어 갔다.
호주에 온 이후 한국에서와는 달리 수많은 관계와 분주함에서 벗어난 뜻하지 않은 한가한 시간은 사색과 독서로 채워가고 있었다. 택건은 누가 자신을 찾지 않은 이상 아무도 먼저 연락해서 찾지 않았다.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별 볼일 없는 남자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여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는 이민자들 중에는 도박과 마약에 중독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이 없는 공휴일이나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 역전의 도박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슬롯머신의 숫자와 그림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돈을 노렸다. 대부분이 시간과 돈은 모두 날리고 더 많은 시간을 땀을 흘리고 노동하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택건은 비가 오면 도서관을 찾았고 날씨가 좋으면 드넓은 공원을 찾아서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는 사이 자신이 모르고 살았던 것들을 책과 새로운 삶 속에서 알아가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 과거의 잊혔던 기억들과 연결되고 각종 교양서를 읽으면 미래의 상상들과 연결되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현재를 잊고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 신비한 세계를 경험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