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 오은
"지난 주말, 책장을 정리하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에 생각이 가 닿았다."
- 오은 [뭐 어때] 29p -
책이 쌓여간다. 이제 책장에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곳곳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읽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책을 사면 책장에 들어가서 장식품이 되어버린다. 서점에서 손에 들려올 때는 설레는 마음과 함께였지만 소유된 책은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안심과 함께 잊힌다.
소유하면 소중함을 잊는 것일까?
오은의 산문집은 술술 읽힌다. 오래간만에 읽는 산문집이다. 소설이나 교양서와는 달리 산문은 읽기가 편안하다. 그래서 산문은 쉬어가며 읽는 듯 느껴진다. 그의 산문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에 펜을 들었다. 아니 노트북을 열었다.
약속이 있어 시내 번화가에 나가면 항상 일찍 나가 서점에 들른다. 특히 나는 중고 서점을 자주 들리는데, 중고 서점에 책들도 새것 못지않게 상태가 좋다. 반면에 가격은 30~40% 저렴해서 자주 이용하게 된다. 때문에 더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또 책을 구매했다. 2권을 사니 한 권만 더 사면 3,000원 추가할인이 된다고 점원이 유혹한다. 그래서 시집 한 권을 하나 더 얹혔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온 책들이 책장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아나간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얘네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새 책을 꽂으려 보니 자리를 잡고 앉은 책들의 태반이 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 난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알고 보니 대부분 도서관에 빌린 책들을 읽었더라.
빌린 책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책은 대부분 독서모임 토론 모임 선정 책이라 읽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집중해서 읽게 된다. 누군가가 올린 독서 모임에 나가기 위해 나의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읽게 되는 책이다. 이런 독서 또한 유용하다. 독서 편식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의 책과 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독서 편식은 다양한 세계를 접하지 못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 참여는 자신의 독서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만 자신이 읽기로 다짐한 책들이 모임(관계)의 유혹 때문에 계속 뒤로 밀려버려 언제 읽게 될지 모르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자신이 읽을 책으로 독서 모임을 여는 독자들이 있다. 나 또한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읽었을까’가 궁금하다. 내가 독서 모임을 나가는 이유이다. 한 가지 책으로 다양한 관점과 생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그리고 이런 대화와 토론은 나에게 많은 영감과 글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주최(호스트)하는 독서 모임에서 참여자들의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물론 참석자들의 동의를 구한다. 독서 모임이 끝나면 나는 독서 후기를 쓰고 그것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그 기록을 다시 보면서 많은 것들을 되새기게 된다. 토론 때는 몰랐던 놓쳤던 것들을 찾아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책 한 권을 씹어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또 그 기록을 편집까지 하는 과정은 그 책을 절대 잊을 수 없는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토론을 하고 싶어진다. 내 것으로 흡수하기 위해.
독서 모임의 다변화
대부분의 소규모 독서 모임은 모임의 장이나 일부 사람들이 선정한 책으로 독서 모임이 진행한다. 초보 독서가들에게는 숙련된 독서가가 추천하고 권장하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 관심을 가져가는 것은 나쁘지 않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언제나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게 마련이다.
이후 독서가 습관이 되고 오래 읽은 사람은 양서 혹은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는데 꽤나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독서 모임에서 자신이 읽고 있거나 읽었던 책이 독서 모임에 선정되면 금상첨화겠지만 세상엔 책이 너무 많다. 그중에 자신이 읽은 혹은 읽고 싶은 책이 걸릴 확률은 크지 않다.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독서 모임을 직접 만들어서 운영하는 듯하다. 주변에 독서모임이 부쩍 많아졌다. 그들은 자신이 읽고 있는 혹은 읽은 책을 함께 나눈 사람들을 찾는다. 읽고 쓰는 사람이 많아지니 함께 듣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독서 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모습일 것이다. 긍정적이다.
나 또한 여러 권을 동시에 읽다 보니 이제 2~3군데 독서 모임에서 활동하며 과거처럼 끌려 다니며 책을 읽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읽고 거기에 맞는 토론 모임을 찾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때 나의 눈길을 사로잡아 책장에 사로잡혀 있는 책들에게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동안 가진 것을 보지 않고 계속 남들이 새롭게 추천하고 좋다는 것들만 쫓다가 외면당한 책들을 올해에는 나의 손때를 묻히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숨은 보석
독서 경력이 올라가면서 생긴 현상 중 하나는 대중적이지 않지만 독특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작가라서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독특한 글감을 찾게 마련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책은 분명 양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또한 보편적인 지식과 생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책은 내가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다룬다.
나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내게 남다른 영감 혹은 놀라운 앎을 전해주는 책을 갈망한다. 그런 책은 내가 글을 쓸 때 아주 요긴한 글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공유하는 이야기는 보편적인 공감을 주지만 나는 보편적인 공감보다는 다소 이질적이고 이상하지만 설득되고 이해되는 그런 류의 책이 더 매력적이다.
내겐 이것이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도전은 기회비용이 크다. 모두가 선호하는 고전이나 베스트셀러는 딱히 잃을 게 없는 독서이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선택이다. 독서 시간이 부족한 바쁜 현대인들에겐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요즘은 이렇게 넘쳐나는 책 들 속에서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추천해 주는 북큐레이터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쓰는 사람(작가)도 읽는 사람(독자)도 많다. 책은 많지만 내게 딱 필요한 그런 책이 무엇이고 또 그것을 찾기란 갈수록 어려워졌다. 너무 많은 옵션은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북큐레이터
내가 꾸준히 독후감을 쓰고 북튜브 영상을 만드는 이유는 나 스스로 필력을 쌓고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초보 독서가나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물론 이것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아주 주관적인 활동이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이가 공감하고 어울리는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많지 않더라도 나의 글과 영상을 좋아해 주는 분들과의 연결을 원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을 뿐이다. 나를 위한 일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그 일은 지속가능하고 또한 유익한 일이 된다. 이것이 윈윈(Winwin) 아닐까?
뭐 어때?
독후감을 쓰고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내 글과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이 댓글로 혹은 개인적으로 들려온다. 쓴소리와 응원하는 말과 무시하는 말 등등, 여러 소리들이 있다. 이때 그런 소리들에 모두 귀 기울이면 삶의 밸러스가 무너진다. 그땐 ‘뭐 어때?’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 개인의 생각과 표현은 누군가에게 용기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불쾌와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세계는 죽은 세계와 같다. 문학과 예술은 정치와 경제에서 허락되지 않는 것들을 수용하고 해소하는 영역이다. 비현실(감성)과 현실(이성)의 영역이 조화를 이룬 사회가 이상적이다. 비현실의 영역은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놓치고 혹은 간과한 것들을 깨닫고 다시금 돌아보게 하기 위한 기능을 한다. 문학과 예술의 존재이유이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 -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시선은 이런 개인의 표현을 비난하고 은폐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가 공격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가 누군가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을 이제 잘 알고 있다. 익명성은 사람에 따라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드러내고 글을 쓰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상처받을 용기와 공격하지 않을 인내를 키우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성장이란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글과 말이 아니라 내면의 내공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자신의 언어를 다듬는 것은 성장의 과정이고 타인의 언어에 상처받지 않는 것은 성장의 결실이다.”
– 글 짓는 목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