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와 우뇌 사이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크리스 나이바우어

by 글짓는 목수

“뇌의 좌측에서 자신에 대한 이미지(에고)를 창조한다면, 이것을 관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스템 바깥에서 바라보는 일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우뇌다.”

-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_6장], 크리스 나이바우어 -

인간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다.

하나는 질서를 좋아하는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꿈꾸는 바다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좌뇌와 우뇌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해부학적 구분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두 방식에 대한 은유에 가깝다. 좌뇌는 세계를 분해하고 설명하려 한다. 우뇌는 세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느끼려 한다. 하나는 계산하고, 다른 하나는 경험한다.


현대인은 대체로 첫 번째 바다에 더 오래 머무르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두 번째 바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No self No problem] in Aladin


얼마 전 쓴 에세이[인간의 삶과 나무의 생 사이]에서 오래된 친구 한 명을 소개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친구가 계속 떠올랐다. 그 친구는 지인 중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 좌뇌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30년을 지켜봐 왔기에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친구도 나를 잘 안다. 잘 아는데도 그 친구랑 만나면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를 이 책을 읽고 또 한 번 깨달았다.


그건 그가 좌뇌형이고 나는 우뇌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좌뇌형이 선호되는 환경에서 40년을 살았고 우뇌형이 좌뇌형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나름 터득했기에 그를 이해하지만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는 30년지기 친구라는 추억을 매개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의심이 없어서 졸라게 티격태격 대지만 또 만날 수 있다.

최근 산을 오르면서 오디오 북으로 만난 책이었다.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 등산 간에 멈춰서 메모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등산 시간이 평소보다 1.5배 늘어났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선사했다. 그걸 장기 기억(해마)에 저장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오르며 읽다 Hiking & Reading in 乘鶴


좌뇌의 시대


산업혁명 이후 인간 사회는 정확성과 속도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기계와 공장, 행정과 과학, 금융과 기술은 모두 계산과 분석을 기반으로 움직였다. 이후 학교는 이러한 세계에 적응할 인간을 길러내는 기관이 되었다. 시험은 사고의 방향을 정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정답을 찾는 훈련을 받는다. 질문의 의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그 의도에 가장 가까운 답을 찾아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강화되는 능력은 논리와 집중, 정확성과 속도. 즉, 다시 말해 좌뇌적 능력이다.


“좌뇌의 또 다른 특징은 끊임없이 범주(Category)를 만들어 내는 경향성이다.”

-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_2장] 크리스 나이바우어 -


때문에 현대인은 점점 더 분석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기보다 측정하고, 경험하기보다 설명하려 한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먼저 장르를 분류하고, 어떤 글을 읽으면 먼저 구조를 분석한다. 예전에 읽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 (서평참조)에서 인간의 범주화의 오류가 만들어낸 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 토론 250530 in 서면 (책삶)

현대 사회에서 감각은 종종 논리의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원래 그렇게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언어 이전의 세계, 설명 이전의 감각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석양을 볼 때 먼저 계산하지 않는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붉은 빛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떤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논리 이전의 경험이다. 음악 역시 그렇다. 어떤 곡을 듣고 눈물이 흐를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즉시 설명하지 못한다. 감정이 먼저 오고 이해가 뒤따른다. 이해가 먼저 온다면 그 자는 아마 예수나 부처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될 사람이다. 이 세계는 분석보다는 직관에 가깝다. 이미지와 감정, 공간과 리듬의 세계다. 우리는 이것을 우뇌적 세계라고 부른다.

Sunset in 乘鶴

명상과 몰입 사이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 우뇌의 활성화 단계에서 의문이 생겼다. 그건 내가 몰입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몇몇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요가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저자는 우뇌가 활성화되는 상태가 명상(Meditation)과 몰입(Flow) 할 때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요가(명상)의 어원은 ‘결합(Union)’이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와 우주의 모든 것의 결합.” –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_4장] 그리스 나이바우어 -


이 두 세계는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을 나타낸다. 이 차이점이 내가 도인(수행자)되지 않고 작가(창작자)가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명상은 생각을 줄이는 방향으로 향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 머릿속에는 끝없는 문장이 흐른다.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명상은 이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숨을 바라보고 몸의 감각을 느끼며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이 상태에서 언어는 점점 힘을 잃고 감각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_김대식 in 부산도서관

얼마 전 읽은 AI관련 책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_김대식](서평참조) 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뇌과학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명상을 할 때는 자기 서사를 만들어내는 활동이 줄어들고 감각과 주의에 관련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가 상대적으로 활성화된다. 즉 인간은 명상 속에서 설명하는 존재에서 관조하는 존재로 잠시 이동한다.


몰입은 그 반대 방향에 있다. 몰입은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상태다. 관조 상태에 멈춰있지 않고 흐른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를 몰입(Flow)라고 불렀다. 그는 몰입을 ‘다른 목적 없이 행위 자체에 완전히 빠져든 상태.’라고 묘사했다.


몰입 상태에서 인간은 시간 감각을 잃고 자기 의식이 약해진다. 음악가가 연주에 빠져들고 화가가 캔버스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작가가 문장을 멈추지 못할 때 우리는 이런 상태를 경험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뇌의 일부 영역이 오히려 억제된다는 사실이다. 자기 검열과 계획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활동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데, 이를 일시적 전전두엽 억제(Transient Hypofrontality)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직관과 감각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이 곧바로 행동이나 언어로 이어진다.


그래서 명상과 몰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태다. 과정은 같지만 결과는 다르다. 명상은 감각을 바라보는 상태이고, 몰입은 감각이 행동으로 흐르는 상태다. 명상에서는 언어(멈춤)가 멈추고, 몰입에서는 언어(흐름)가 흐른다. 언어(혹은 예술, 음악)로 출력된다. 문학이다. 하나는 고요한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흐르는 강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음악의 흐름 안에서 글이 출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감성(감정)이 장악한 뇌 상태에서 이성(논리)의 미세한 개입으로 외부로 그것이 표현되는 상태이다.


3가지 인간 유형


그럼 인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좌뇌형 인간이다. 이들은 세상을 분석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공학자와 프로그래머, 회계사와 행정가 같은 직업은 이런 사고 방식과 잘 맞는다. 이들은 문제를 분해하고 규칙을 발견하며 정확한 해결책을 찾는다. 현대 사회의 많은 시스템은 이러한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두 번째는 우뇌형 인간이다. 이들은 세계를 설명하기보다 경험한다. 음악가, 화가, 시인, 혹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감각에 가깝다. 이들에게 세계는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풍경이다. 계산보다 직관이 먼저 움직이고, 분석보다 감각이 앞선다.


그러나 진정한 창작자(Creator)는 이 둘 사이에서 탄생한다. 창작자는 균형형 인간이다. 그는 우뇌에서 이미지(영감과 통찰)를 얻고 좌뇌에서 그것을 구조(문학과 예술: 文藝)로 만든다. 감각에서 시작해 언어로 완성한다. 시인이 단지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철학자 역시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직관적 통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 예술가도 손에 도구나 악기를 들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창작자의 정신은 늘 두 세계 사이를 왕복한다. 마치 두 대륙 사이를 오가는 항해자처럼.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좌뇌의 언어(이성적, 논리적)를 더 많이 요구한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창조성은 언제나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설명 이전의 감각, 생각 이전의 이미지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직관이 다시 언어로 옮겨질 때 비로소 하나의 문장이 된다. 예술과 철학, 과학의 큰 발견들도 종종 이 과정을 거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떠올릴 때 먼저 수식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빛 위를 타고 달리는 상상을 했다고 말한다. 직관이 먼저 왔고, 수식은 나중에 따라왔다. 어쩌면 인간은 완전히 깨어 있는 존재도, 완전히 잠든 존재도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_매슈 워커

“고래는 양쪽 반구가 분리되어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한쪽 반구는 계속 깨어있고, 다른 쪽 반구는 잠에 빠져들 수 있다.” –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_1부4장] 매슈 워커 -


우리도 고래처럼 두 개의 의식 사이를 오가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래는 좌뇌와 우뇌과 분리되어 작동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세계를 계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를 꿈꾼다. 한쪽에서는 논리를 세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창작이란, 그 두 바다가 잠시 하나의 물결로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AI 시대에 어떤 능력이 더 중요해질지는 명확하다. 이미 인류는 좌뇌가 만들어낸 정보와 데이터로 가득차 있다.


당신은 좌뇌형인가 아님 우뇌형인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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