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기였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까?
이스터 연휴(부활절, 4/2~4/5) 공원에 앉아 따스한 햇살 아래 요즘 SF작가로 뜨고 있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을 읽었다. 책은 8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은 그 8가지 이야기 중 하나이다. 책 속에 포함된 두 편의 소설로 한국 과학 문학상(대상: 관내분실, 가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수상했다. 난 8편의 단편 중에서 [공생가설]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첫 문장은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왜 우리가 저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이유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아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7세 이전의 기억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3세 이전의 기억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왜 그럴까? 그것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나 또한 유치원 때(7세) 시절부터는 몇몇 기억들이 존재하지만 그 보다 어렸을 때 기억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저게 내가 맞나? 난 기억이 없는데...' 부모 품에 안겨있는 내 모습을 봐도 저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부모님의 기억으로 딴 사람 얘기 듣듯 나를 떠올릴 뿐이다.
과학과 삶의 연결
김초엽 작가는 여기에서 착안하여 짧은 단편을 썼다. 그녀는 전공과 배경지식을 적극 활용해서 소설을 쓴다. 포스텍에서 화학(학사)과 생화학(석사)을 전공한 그녀,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풍부하다. 특히 과학이 아직 풀어내지 못한 우주와 생명의 비밀들에 관한 과학 지식을 인간의 삶을 그녀 특유의 상상력으로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든 과학적 소재들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미지의 행성 "류드밀라"를 얘기한다. 류드밀라는 한 여자의 이름이고 그녀의 공상으로 그려진 류드밀라라는 가상의 세계는 대중의 찬사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우주에 그녀가 상상한 세계와 동일한 행성이 존재함이 밝혀진다. 과학의 발달로 아기들에게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뇌파를 감지한다. 일정한 패턴을 분석해서 해석한 뇌파는 아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말들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기의 뇌 속에 다수의 존재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패턴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면
"얘가 잘못 움직여서 그래, 의자를 넘어뜨렸거든"
"아까 그 화면에 정신을 팔려 있었던 거지"
- [공생가설] 중에서 -
위와 같이 아기의 뇌 속에서 별개의 다른 개체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신호이다. 저자는 아기가 태어나면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아기의 기억을 일정 시간 동안 지배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 미지의 존재는 어느 다른 행성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 세계(류드밀라) 같은 곳에서 왔다가 아기가 7살이 넘으면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기막힌 설정이다.
그때 그 아기의 기억들도 모조리 가져가 버린다는 가설이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아기 때의 기억을 전혀 상기하지 못하는 것을 저자의 과학적 가설을 통해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
우리 몸속에는 체내 활동을 관장하는 미토콘드리아 같은 별개의 미생물들이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뇌의 영역을 관장하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작가는 순수하던 어린아이 시절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외계 존재 혹은 신)가 뇌의 영역을 관장하다가 아이가 사회화되고 순수함을 읽어갈 때쯤 떠나간다고 얘기한다. 오염된 물에선 물고기가 떠나가듯 더럽혀진 인간의 정신 속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속 중 주인공 여자 류드밀라는 유일하게 그 미지의 존재와 계속 공생했고 그 미지의 세계를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 속에서 사회화되지 않고 순수하게 자라왔다는 가정이다. 참으로 기발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미약한 존재로 살아가면서도 가끔씩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그것이 육체적인 부분이든 정신적인 부분이든 나의 능력 밖의 일이 벌어지곤 한다. 마치 무언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밝혀내지 않은 미지의 힘이나 기운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는 그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신의 영역으로 구분 짓고 인간의 한계를 얘기한다. 물론 과학은 그것을 인정하진 않는다.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 과학이 해야 할 역할이다. 아직 과학은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터리들을 안고 있다. 과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도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처럼 서로 대립하며 양립하는 이론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자신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고 자신(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복잡하게 설계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광경을 지금도 지켜보며 실망하거나 혹은 대견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까지 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신이 만든 그 설계도가 우리가 신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부루마블 게임을 하듯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순간 게임은 끝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영혼회귀?!) 그것이 우리가 신앙세계에서 말하는 종말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6:6-7절]
지금 신은 우리가 종착지로 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씩 재미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에서도 인간에게 실망한 하나님은 물난리를 내리시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우리가 신이 되는 순간 인간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신비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세상의 이치를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내가 고심해서 아무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만든 게임의 이치를 누군가가 알아내고 그 속에서 빠져나와 나와 대적하려 든다면 찜찜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으며 과학과 인간 그리고 절대적인 영역(신)에 대한 상관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이 풀지 못한 많은 미스터리는 언제 일진 모르지만 하나씩 풀어질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며 조금씩 미지의 영역에 다가갈 것이다. 그 미지의 영역이 어디이고 무엇이고 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멈추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인간은 신이 되려는 게임 속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떠나지 말아요"
- [공생가설] 중에서 -
류드밀라는 자신 안에 그 미지의 존재와 함께 하면서도 그 존재가 떠나갈까 두려워했다. 혹시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 잠시 신과 같이 있다가 신을 떠나보내고 다시 그 신의 기억을 찾아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