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Jul 19. 2021

꿈을 꿈꾸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꿈과 꿈은 동음이의어이다.


   은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과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꿈(소망, 염원) 두 가지의 뜻을 품고 있다. 영어 Dream도 물론이고 최근 중국의 국가주석이 외신에서 자주 외치는 중국몽(中國夢 : 중국의 꿈)의  중국어 몽(夢) 또한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는 동음이의어이다. 꿈은 왜 두 가지 의미를 한 글자에 내포하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가 원하는 것을 꿈에서 꿈꿀 수 있면?


  우리는 인생의 1/3이라는 긴 시간을 잠을 자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의 의지와 통제 밖에 있다. 누군가는 그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아쉬워 잠을 줄여서 일하고 공부하며 꿈을 줄이고 꿈을 이루고자 한다. 나 또한 과거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학생 때도 항상 야근과 야자로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잠에 들곤 했다.  


   한국은 잠을 적게 자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한국인은 수면시간은 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고 한다.(하루 평균 7시간 51분) 도시의 밤은 환하게 밝혀진다. 불야성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위성사진은 또 하나의 우주처럼 수많은 불빛들이 별처럼 환하게 반짝인다.

지구의 밤

   보통 잠을 자지 않는 자들은 두 가지 부류이다. 유흥에 빠진 자들과 일과 공부에 빠진 자들이다. 전자는 현재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다가올 미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잠자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지새우진 않을 것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저자는 꿈을 통제한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소설을 만들었다. 아는 지인의 책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소설은 많은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다.

 

  주인공 페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입사를 통해  꿈을 사는 자들과 꿈을 파는 자들의 이야기 꾸며진 소설은 꿈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가치 지불 수단의 변화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소설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꿈을 사는 대가를 후불로 지불한다. 그것도 돈이 아닌 내가 꿈을 꾸고 느낌 감정을 지불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소설의 묘미이자 소설가의 능력 아니겠는가?


   그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사람의 감정을 가치 지불의 대상으로 설정했을까? 하는 작가의 의도를 내 맘대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당연히 돈(화폐)을 가치 지불 대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최근 화폐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전 세계에 불어닥쳤다. 끝도 없이 찍어낼 수 있는 화폐가 과연 희소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체재로 나타난 것이 바로 가상화폐(Cryptocurrency)이다. 가상화폐의 상징인 비트코인은 중앙 기득권(화폐 발생의 주체)이 없으면서 희소가치를 가진 존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가상화폐시장에 불을 지폈다. 홍수처럼 불어난 돈은 제한된 가상화폐를 사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그 부작용으로 또 수많은 가상화폐가 탄생하며 가상화폐의 총량 또한 미친 듯이 불어났다. 이젠 전 세계의 화폐 종류보다 가상화폐의 종류가 더 많아진 듯하다. 국가가 만들던 화폐를 이젠 너도 나도 만들어 낸다. 결국 화폐도 가상화폐도 모두 그 희소가치가 퇴색되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메말라 가는 인간의 감정을 희소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면...?


  피도 눈물도 없이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의 시기 사람들은 돈을 벌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한다는 말을 믿고 철저한 이성주의과 물질주의에 입각해 살아왔고 그런 자들만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마치 교과서인 양 따라서 살아왔고 그 과정 속에 감성은 점점 메말라 갔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 잠못이루던 설렘과 친구의 전학 소식에 밤새우며 흘린 눈물과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알고 보니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웃음 짓던 감성들은 대입과 각종 자격증과 취업 시험에 대한 고민과 주식과 부동산에 돈 될만한 이슈나 정보를 쫓느라 사라진 지 오래다.


[띵동. 201번 손님께서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의 값으로 '설렘' 소량 도착했습니다.]                                  

                                                                                       - [달러구트 꿈 백화점] 중에서 -


  미래에는 이런 메말라버린 인간의 감정들을 창출하고 모으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지도 모른다. 다소 황당한 얘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줄어들고 화폐는 늘어나고 물건도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는 또 다른 희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상상도 전혀 불가능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셀렘이라는 느낌도 물론 호르몬의 작용이다. 미래에는 호르몬 주입을 통해 감정이나 쾌락 등을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이라는 대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호르몬 분비를 유도해내는 것과 직접적인 호르몬 주입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되찾는 것과 각종 영양제와 방부제가 섞인 화장품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것과 흡사하지 않을까?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도 딱 그 정도일 거예요.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 

                                                     - [달러구트 꿈 백화점] 중에서 -


  주인공 페니가 백화점 사장 달러구트와 면접을 보며 하는 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자는 꿈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현실에 찌들어 메말라버린 감정을 되살릴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통제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척박한 현실의 시간과 통제할 수 있고 행복한 꿈의 시간은 각자 분리되어 서로를 침범하지 않지만 꿈을 통해 감성을, 현실을 통해 이성을, 이 둘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2/3을 현실에 머물지만 1/3을 원하는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뭐 누군가는 12시간을 꿈속에서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소설처럼 꿈을 꾸며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상이 나타날까? 오늘 밤 나의 꿈(염원)을 꿈꾸길 기대해 본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전 09화 눈에 띄면 죽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