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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11. 2023

집중과 몰입 사이

삶을 살고 삶을 찾는 방법

"쿵"

"야~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집중 안 할래?"


하우스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페인트 작업도 대부분 끝이 나고 곳곳에 드러나 있던 내장(각종 파이프와 전선들)과 뼈대(프레임)그리고 곳곳의 틈새들은 새하얀 피부(페인트)와 각종 예쁜 마감재(타일, 마루등)로 덮여 아늑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나와 목수가 집 안에 남은 폐자재들을 밖으로 운반하다 기다란 팀버가 벽 모서리에 부딪쳤다. 부딪친 모서리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흠집이 생겼다. 목수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한숨을 내쉰다. 이럴 땐 나도 내가 싫다.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다물고 목수의 핀잔과 잔소리를 묵묵히 받아내야 한다. 내장 인테리어 공사는 외장 공사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시선이 항상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동물의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곳은 항상 깨끗하고 깔끔하고 예쁘게 보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이 어떤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래서 좁은 실내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난 대부분의 목수들은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목수의 뇌는 점점 집중의 뇌가 되어간다.

하우스 공사

집중(集中)


집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ㆍ현상(現象)ㆍ대상(對象) 등(等)이) 한 곳이나 한 대상(對象)에 또는 한정(限定)된 짧은 시간(時間)에 몰리거나 쏠리게 함. [네이버 사전]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를 뜯어보면 모일 '집(集)'에 가운데 '중(中)' 가운데로 모은다는 의미이다.


영어로는 Concentration 혹은 Focus on,  Pay attention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어떤 사물이나 현상 혹은 움직임등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이 집중과 몰입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구분하며 이 둘 사이를 오고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글을 구독하시고 자주 읽는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나의 글은 대부분은 몰입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집중한 뇌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잘 모르지만...) 그런 류의 글은 아마도 전공서적(법, 의학, 공학등) 혹은 기술서적 그리고 각종 설명서에 적혀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글은 아마도 집중한 뇌 상태에서 자신이 아는 전공 기술적인 지식을 순서에 맞게 설명하는 형태로 글이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런 류의 글과는 다르다.


몰입(沒入)


몰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온 정신(精神)이 빠짐'[네이버 사전]이다. 한자어를 뜯어보면 빠질 '몰(沒)'에 들어갈 '입(入)'으로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어 간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Be immersed in, Be absorbed in 혹은 Be lost in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영어단어들의 어감을 잘 모르기에 이것이 내가 느끼는 몰입의 기분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그래도 Lost라는 단어가 그나마 내가 느낄 수 있는 어감 중 가장 가까운 듯하다. 나도 몰입하면 현실의 나를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건 지금처럼 내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시간에 느끼는 기분이다.


나는 매일 집중과 몰입을 모두 경험한다. 이건 물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집중과 몰입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이 집중과 몰입의 비중과 그 깊이가 다르다는 것에 차이만 있을 뿐, 중요한 건 이 집중과 몰입은 서로 그리 친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집중을 오래 한 뇌는 몰입을, 몰입을 오래 한 뇌는 집중이 쉽지 않다. 나는 이런 팽팽한 둘 사이를 오고 가야만 한다.


일과 글 사이


나의 일은 대부분 집중의 시간이다. 출근부터 퇴근 전까지 공사현장에서는 항상 주의를 집중하며 일을 해야 한다. 서두에 묘사한 상황처럼 자재와 내가 한 몸이 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주의집중이 없으면 항상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뭐 물체끼리 부딪치면 다행이지만 만약 물체가 사람을 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사현장은 나만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조심해야만 서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목수일은 기술 수준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호흡과 일하는 패턴이 잘 맞아야 한다. (뭐 대부분 데모도나 중간 기술자가 최고 기술자의 패턴에 맞춰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움의 카피 과정이자 되물림의 과정이다.) 일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 처음 목수 일을 배울 때는 여러 가지 사고를 많이 쳤다. 하지만 또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너무도 감사한 것은 나와 누군가가 크게 다친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하루에 감사하게 된다.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자~ 팩업(마무리) 합시다"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물론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은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초집중의 시간은 마치 우주의 웜홀을 통과하는 것처럼 시간을 빠르게 지나가게 한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집중의 일과가 끝이 나면 몸에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다. 느끼는 건 짧지만 실제 오랜 시간 집중한다는 것은 적잖은 피로가 쌓인다. 뇌가 휴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퇴근 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보통 초고 작업보다는 퇴고 위주로 한다. 초고 작성 때 최상의 몰입상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는 몰입을 원하지만 나의 뇌는 몰입에서 계속 밀어낸다. 몰입하려 해도 좀처럼 몰입이 쉽지 않다.


진한(두 샷 혹은 트리플샷)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다. 뇌를 속인다. 그러면 뇌는 나에게 몰입의 시간을 허락한다. 하지만 이런 몰입은 다음날 더 힘든 뇌와 몸 상태를 가져오기 때문에 웬만해선 쓰지 않는 필살기이다. 하지만 정말 꼭 써야겠다면 고농도 카페인과 타우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뇌를 속인다. 가장 최상의 몰입은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난 직후 바로 쓰는 것이다. 이때 가장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하다. 주변도 적막하고 몸과 정신도 편안하게 이완된 상태에서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뇌가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줘야 한다. 잠과 몰입의 경계를 무사히 넘어와야 한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몰입하면 꿈을 이룬다.


계획에서 목표로 : 일


모든 일이 대부분 비슷하겠지 일에는 계획이 있고 목표가 있다. 목수일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계획(도면)에 맞는 결과물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일이다. 이건 예외가 없다. 도면(계획)대로 만들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도면상의 2~3mm의 오차 없이 그리고 수직, 수평을 모두 준수하며 계획대로 차근차근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일의 과정에서는 예측 못하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지만 그 나중의 결과는 반드시 도면의 그것과 같아야만 한다.


MBTI 유형중 J(Judging, 판단계획형)과 잘 맞는 일이 아닐까. 나는 P(Perceving, 인식즉흥형) 유형이다. 어찌 보면 이 일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계획과 결과 사이에는 수많은 즉흥적이고 다이내믹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특히 공사 현장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상황들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 재치와 임기응변이 발휘되지 않으면 발만 동동 구르며 일이 진척되지 못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이듯 계획과 목표 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들을 그때그때 잘 헤쳐나가야 하듯이 일도 계획과 목표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목표가 성공할 수도 혹은 좌절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연에서 운명으로 : 글


글은 도면이 없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전공서적이나 기술서적등은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글이 아니라면 이건 도면을 그려 놓고 쓸 수 없다. 요즘에는 글(이야기)의 상업화로 글을 쓰기 전 플롯이나 시놉시스를 먼저 짜고 쓴 경우도 있지만 사실 내 생각엔 쓰다가 플롯이나 시놉시스가 생겨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내 경우엔 그렇다) 아무런 영감이나 구체적 상상 없이 주어진 플롯과 시놉시스에 맞춰 글을 쓴다는 것은 갇혀버린 글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글은 안갯속이 휩싸인 희미한 주제에서 시작하지만 이건 쓰면서 점점 구체화되고 형태와 의미와 목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형태와 의미와 목적은 처음에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엔)


나는 사실 글을 시작하는 시점과 끝나는 시점은 모두가 예상치 않은 것들인 경우가 많다. 우연으로 시작한 글이 운명처럼 끝난다고 해야 할까? 지금 쓰는 글도 책상에 앉기 전까지는 분명 '그래 오늘을 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앉았는데... 문득 서두에 일을 하다 생긴 에피소드가 떠오르며 끄적인 몇 줄의 대화문이 예상치 못한 글감들을 쏟아냈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의 글감은 우연처럼 다가와서 글이 끝나갈 쯤에는 마치 이걸 썼어야 했던 것 같은 운명 같은 기분을 안겨준다. 마치 우연으로 만나 인연의 과정을 거치면서 운명 같은 사랑이 완성되는 것만 같다. 우리의 만남과 관계가 그런 것처럼 이건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서 진행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알 수 없다. 어떻게 될지... 우연으로 스쳐 지나갈 수도, 인연으로 끝날 수도, 혹은 운명 같은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나의 브런치스토리 서랍에는 적다만 수많은 글들이 저장되어 있다. 우연으로 끝난 글(마무리하지 못한)들과 인연처럼 적어가고 있는 글(집필 중 혹은 퇴고 중인 글) 그리고 운명처럼 탄생해 독자분들과 함께하는 지금의 이 글까지... 이건 시작과 과정과 끝이다.


목수가 원하는 집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그냥 쓰고 보니 원하던 것이었던 기분이다. 집은 도면대로 만들다 보면 원했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글은 종종 예상치 못했던 것이 탄생한다. 운명은 원하는 데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 뭐 운명도 아니겠지만...) 이건 모든 이들이 삶의 목표(꿈)를 이루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지만 모두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가야 할 운명의 길이 아닌 길을 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집중과 몰입사이


삶을 사는 것과 삶을 찾는 것은 다르다.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집중해야 하고 삶을 제대로 찾으려면 몰입해야 한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은 집중을 잘한다. 그래서 우리는 집중력을 키우려 그렇게도 애썼나 보다.


"넌 가 왜 이리 집중을 못하니?"


나는 어린 시절 주의가 산만한 아이였다. 사고도 많이 치고 여러 가지 호기심과 모험심이 투철해 부모님과 주변에서 항상 걱정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넌 가 왜 이리 몰입을 못하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 우리는 항상 아이들의 몰입상태를 깨우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언가에 몰입(놀이)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들의 몰입의 상태에서 깨워 그들을 삶(현실)의 영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밥 먹어야지"

"자 이제, 양치질해야지"

"늦었어 어서 자야지"

"그만 놀고 이제 공부해야지"


이건 놀이나 동화책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밥도 먹여야 하고 이빨도 닦여야 하며 내일 등교할 아이의 잠도 재워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현실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현실의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점차 몰입에서 집중으로 그 삶의 영역을 옮겨간다. 그렇게 올바르고 비슷한 성인(成人)이 되어간다.


나 또한 과거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이 집중의 시간이었다. 잘 살기 위해 부단히도 집중하며 살았다. 매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한 해 한 해를 살았다. 그런데 삶은 집을 짓는 것처럼 도면처럼 만들어지지는 않는 듯했다.


삶의 공간이 바뀌고 수많은 관계와 일에서 벗어나면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몰입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게 몰입인지도 모르는 몰입의 시간을 가졌다. 그냥 무언가에 빠져드는 기분을 따라가 봤다.


"저는 손가락으로 생각해요"


누군가가 물었다. 'XX 씨는 생각이 많은 거 같아요' 그런 생각들이 어떻게 나오냐고 물었다. 어떤 생각을 하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쓰다 보면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들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냥 머릿속에 우연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그 생각들이 손가락을 거치면 인연이 되고 또 운명을 만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가야 할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집중도 해야 하고 몰입도 해야 한다. 삶을 살고 삶을 찾는 일을 모두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집중보다는 몰입을 선호한다. 하지만 삶은 찾는 것보다 사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잘 살기 위해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오늘도 집중과 몰입사이에서 하루가 지나간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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