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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24. 2023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세상에서...

"아~ 뭐 먹지? 짜장면 먹을까 아니면 짬뽕을 먹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본 고민일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짬짜면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은 이게 가능하지만 삶은 이것이 쉽지 않다. 당신은 당신의 입장을 가지고 색깔을 만들고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자신과 같은 입장과 색깔과 의견을 가진 자들과 공감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만약 당신이 뚜렷한 입장과 색깔과 의견을 가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적잖이 고달프게 된다.


네 편 내 편으로 나뉜 세상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인간은 세상을 둘로 나누는 관념 속에 갇혀서 살아간다. 남/녀, 음/양, 절대/상대, 유신/무신, 보수/진보, 여/야, 좌/우 등등 이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정해지는 것도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남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이길 거부하는 혹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이길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당신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색깔이 짙어지는 일련의 인생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 그 사이(경계)를 넘어가면 다시 다른 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그렇게 우리는 치우친 삶을 살며 자신의 삶이 옳고 다른 쪽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이 둘 사이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얼룩져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둘로 나눠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MBTI 가 어떻게 돼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MBTI를 먼저 물어보곤 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모이면 공통의 대화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있기에 이 MBTI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좋은 주제이다.


과거에는 처음 보는 상대방에게 갖가지 질문, 예를 들면 직업, 취미, 특기, 좋아하는 음식등 이런저런 수많은 것들을 물어보며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려 했다면 이제는 그런 시간과 노력 없이도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 대신 성급하게 상대방을 판단해 버리는 오류 또한 피할 순 없다. 나 또한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인지 최근에 MBTI 관련 정보들을 많이 찾아보게 된다. 이야기를 쓰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보니 이런 인간의 여러 가지 성격유형을 찾아보는 것이 인물 캐릭터 설정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MBTI는 시간을 두고 사람을 알아가는 노력과 인내를 생략하고 상대방이 나랑 잘 맞을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MBTI는 4가지 영역에서 각각 상반되는 성향을 가지고 16가지의 성격 유형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테스트이다.

 

우리는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 이 여덟 가지 유형 중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있다. 이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증명된 것이 없지만 아마도 둘 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영역의 중간에 있는 사람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어떨까?


"물에  탄 듯 술에 탄 듯"


우리는 종종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람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성향, 마치 모든 성향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사람, 과연 우리는 이런 사람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쉽게 친해지기 쉽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당신이 어떤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서는 공감을 느낄 것이고 당신과 반대 혹은 다른 성향에게서는 반감 혹은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성향은 당신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편협한 사람이라면 나와 다른 이에게서 반감만 느끼겠지만 지혜로운 한 사람이라면 그에게서 배움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왜냐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안함은 변화가 없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다소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 시간은 내가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저항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에게 변화(정반합의 성장과정)가 생긴다.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계속된다면...


이런 생각을 해봤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나와 다른이 혹은 상반되는 사람들과 계속 마주하고 부딪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고달픈 과정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말한 변증법(정반합의 성장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과연 우리는 색깔과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삶을 살아가려면 항상 이 두 상반되는 영역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두 영역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을까? 아마 그건 신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창조한 신만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 자체도 유신론과 무신론의 두 갈래의 길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생각(관념)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중도(中道)


두 가지로 나눠진 세상에서 그 사이에서 머물며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남자(陽)이면서 여자(陰)이거나, 기독교(이원)이면서 불교(일원)이거나 혹은 육체노동자(Blue)이면서 정신노동자(White) 일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것이며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 것이다. 왜냐 그 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고 그런 집단과 공동체는 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존재이다. 세상에 중도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이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네 편 내 편 나누고 네가 강한지 내가 강한지를 겨루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쪽이 강하면 다른 한쪽은 핍박받는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시 수렵사회에서는 힘세고 날렵한 자(현재로 치면 육체노동자)들이 무리를 다스렸다. 신도 법도 윤리도 없던 원시 세상에선 힘(무력, 완력) 앞에 넙죽 엎드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어떤가 오히려 이성과 지성을 가진 자들이 그들을 컨트롤한다. 또한 과거엔 오랜 시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핍박받았지만 이제는 여성이 남성을 핍박하는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뭐 아직도 여성이 핍박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수만 년 전의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여성의 지위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으며 남성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아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이렇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바뀌어 왔다.


강함과 약함 그리고 옳고 그름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계속 변해간다는 반증이다. 지금은 네가 옳고 강하지만 언젠간 내가 옳고 강한 때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내가 살아생전에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옳고 그름은 나의 실존여부와 관계없이 바뀔 수 있다. 이 무구하고 장대한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 인생의 시간은 너무나 미세하고도 미세하다.  


사이에서


만약 당신이 이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어느 순간 두 입장 사이에서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거나 치우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럼 당신의 삶은 좀 고달프겠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또 이해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양자택일의 여러 순간을 맞이하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장대한 우주의 시간을 이해한다면 그 순간 당신이 선택하지 못한 다른 쪽의 입장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 사이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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