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0, 알람 소리에 새벽이 왔음을 알았다. 뇌가 깬다고 몸이 깨는 것은 아니다. 뇌가 몸을 컨트롤하지만 몸이 out of control 일 때도 있다. 어제 늦게까지 이어진 일상과 여행의 피곤한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더듬어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다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삐비빅 삐비빅"
06:00, 또다시 2차 공습경보가 울린다. 새벽 읽기와 쓰기 시간은 물 건너갔다. 뭐 여행 중이니 봐주자. 슬며시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어깨 양쪽에 곰 두 마리가 앉아 있는 듯하다. 슬리퍼를 신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다른 세상의 다른 새벽의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어제 늦은 밤에 감춰져 있던 숙소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새벽의 공기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더욱이 이런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과 함께라며 더욱 그러하다. 하늘은 새벽에서 아침으로 옮겨가며 희미한 어둠마저 모두 삼켜버린다.
Guest house
산책이 끝나고 숙소에 어젯밤에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먹으며 노트북을 켠다. 오늘 일정을 짜야한다. 당일치기. 유튜브 음악을 틀었다. 가사 없는 잔잔한 찬양곡이 선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Ok! 오늘은 여기서 시작하자!"
그래서 가까운 교회를 검색해 봤다. Hillsong이 여기도 있다. 그것도 숙소와 15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첫 번째 일정이 결정되었다. 예배시간까지 1시간 반이 남았다. 시간 계획이 세워지면 몸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데드라인은 언제나 몸과 마음을 분주하게 한다. 날씨가 맑다. Grab으로 오토바이를 불렀다. 금방 온다. 교회까지 1.5불도 되지 않는 상상 못 하던 저렴한 가격에 또 한 번 놀란다. 콜을 부르자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났다.
"Where are you from?"
"Korea"
"North Korea? South Korea?"
"South"
Grab bike
나이가 꽤 있으신 현지 아저씨이다. 처음 건넨 인사는 국적 확인이었다. 이 이후의 대화는 아저씨의 영어 능력의 한계로 쉽지 않았다. 대화는 간단한 영어 단어로만 가능했다. 문장을 만들면 이해도가 더 떨어진다. 언어의 시작은 소통보다 의사전달이 우선이다. 이 더운 날 Grab에서 제공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산 것인지 모를 공유택시 회사의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다 벗어도 더운 날씨에 두꺼운 점퍼까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인가? 광고비를 받나?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도로는 아침부터 차와 오토바이과 뒤섞여 혼잡하다. 바람을 가르며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이 색다르다. 빨리 도착했다.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예배당으로 보여 들고 있었다.
"Do you need any translation service?"
"Is there Korean service?"
"I'm sorry, we have English service only"
"Ok, I would better improve my English listening ability"
자원봉사자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녀에게서 해드폰을 건네받고 자리를 잡았다. 찬양이 시작되고 신을 향한 사람들의 노래와 함성이 이어졌다. 나도 목청을 높여 본다. 한국에선 밀폐된 좁은 공간(노래방)에서만 높이던 목청은 이제 넓은 공간으로 펴져나간다.
Hillsong in Bali
목사의 설교가 와닿지 않는 건지 통역하는 사람의 이해부족과 번역능력의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Jesus'가 여기서는 'Yesus'라는 것 하나는 알아들었다. 한국어에 더 가깝다. 영어는 '제수스'고 인도네시아는 '예수스'다.
예배당을 나와 좀 걸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편의점으로 몸을 숨겼다. 살 것 같다. 주변을 검색했다. 근처에 별다방이 보인다. 차를 타기에 애매할 정도로 가깝다. 걸었다. 걷다가 더위에 지치면 잠시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이번엔 식당으로 몸을 숨겼다. 처음으로 사 먹는 현지 음식이다.
Omelet rice with Chashu
홍콩식 식당이었다. 오믈렛 차슈덮밥과 물만두를 시켜서 허기를 채웠다. 종업원들이 나를 계속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인이 잘 찾지 않은 도로가에 있는 식당에 백팩을 메고 팔토시에 셀카봉까지 들고 있다. 영어로 음식을 주문하려 하자 여 종업원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더니 옆에 있던 남자 종업원을 불러온다. 그 남자는 그나마 나의 영어를 알아듣는다. 그렇게 다행히 주문을 성공하고 자리에 앉았다. 더위에 지친 몸이 에어컨 바람을 만나면 다시 생기를 얻는다. 에어컨은 분명 인류의 과학문명의 커다란 혜택일 것이다. 다시 생기를 얻었고 칼로리가 보충되면 에너지도 얻었다. 다시 더위 속으로 나가야 한다. 밖은 더 더워진 것 같다. 아마 실내에 갇혀있던 열기를 모두 밖으로 빼내니 밖은 더 더워지는 것이 아닐까?! 건물 밖에 수많은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열기는 더위를 무더위로 만드는 과학의 결과일 것이다.
"와우~"
화려하고 근사한 인테리어를 뽐내는 별다방이다. 목수일을 하다 보니 이런 고급스럽고 멋있는 인테리어를 보면 예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감상하게 된다. 다방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디테일을 유심히 관찰한다.
"모카프라푸치노 플리즈"
"what size?"
"Venti size Pz"
"Cream on top?"
"Yes Please"
"What's your name?"
"Thomas"
Starbucks reserve Dewata in Bali
이곳에 오면 항상 같은 대화문이 이어진다. 9달러다. 비싸다. 역시 별다방. 현지 사정과 물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브랜드 파워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브랜드가 되려 하고 명품을 찾는다. 품질과 성능과 맛의 보편화 시대에 차별화는 이제 브랜딩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렇게 '글 짓는 목수(Carpenwriter)'로 주야장천 해시태그를 달고 글을 올리는 것 또한 퍼스널 브랜딩이다. 뭐 이윤창출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 비싼 모카프라푸치노 한 잔에 더위만 피하기엔 좀 아깝다. 그래서 노트북을 펼쳤다. 헤드폰을 쓰고 나니 북적대던 카페 안에는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 속에 무성 영화가 펼쳐진다.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글감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또 현실을 떠난다.
현실로 돌아오니 1시간 반이 흘렀다. 써놓은 글을 보니 꽤나 길다. 신기하다. 갈수록 현실의 시간과 비현실의 시간의 괴리가 커지는 기분이랄까? 비현실에서 한참을 있다 온 것 같은데... 현실의 시간은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은 듯 한 느낌이다. 몰입의 품질이 향상된 듯하다. 뿌듯하다. 그 보상으로 달콤한 모카프라푸치노를 마시며 기분을 배가한다. 다시 더위 속으로 나갈 시간이다. 현지의 명소들을 한 번 둘러봐야 한다.
태양을 피하고 싶다. 이번에 Grab 택시를 불렀다. 이번 기사님은 영어 단어로도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이다. 기사 가 핸드폰 번역기를 돌리면서 위험한 운전을 이어가자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안전제일이다. 내가 번역기를 돌려서 들려줬다.
"제발... 운전에 집중해 주세요"
기사도 그제야 침묵 속에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사원에서 내가 힌두교의 성지인 발리에 와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무료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경비가 나를 막아 세운다. 돈을 받더니 나의 허리 아래 하체를 모두 가리는 천 두루마리를 입혀준다. 신이 머무는 공간에선 의복의 정갈함이 필요한 듯 보인다. 다리 털이 좀 많긴 하다.
Masceti Temple
"Bali Hinduism is differen from India" (발리 힌두교는 인도랑은 좀 달라요)
사원 안을 둘러보다 생긴 의문을 사원을 지키는 승려인지 관리인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가 하도 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통에 말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오후 인적이 거의 없는 사원 안에 나 혼자 돌아다니니 혹시 좀도둑인가 했나 보다.
그때부터 그는 그가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해서 설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심오한 종교의 세계를 너무 심플한 언어로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다만 내가 이해한 것이라면 '발리'는 유일하게 무슬림이 대부분인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도가 가장 많이 분포한 섬(힌두교도 약 85%)이라는 것과 이곳의 힌두교는 인도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나 또한 힌두교를 잘 모르지만 사원 곳곳에서 보이는 불교 사원에서나 보이는 관음보살상 같은 것들이 요괴 같은 힌두교의 상징물들 사이에 간혹 등장한다. 또한 집집마다 모시는 사당 같은 석탑이 있고 그 위에는 꽃잎이나 꽃가루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징물들이 놓여있고 때마다 향을 피운다. 마치 힌두교와 불교가 믹싱된 느낌이랄까? 위치적으로 이곳은 힌두교 번성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지역이다. 무슬림으로 둘러싸인 섬들 사이에 힌두섬이라... 그리고 불교가 섞인듯한
과거의 성스러운 역사 뒤에는 현재의 화려함과 현지의 아름다움을 즐겨야 한다. 해변의 비치클럽으로 향했다. 발리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것이 바다 위로 떨어지는 석양이다. 일몰시간 보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어디 가기도 애매한 시간 맨발로 해변을 거닐며 바닷바람을 음미한다. 가족과 연인과 온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그들만의 추억의 만들고 있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다 그들이 나의 앵글에 들어왔다. 사진이 나만 보기에 아까울 정도다.
Three and one
"Excuse me, this is a picture of you guys"
"Wow! so beautiful~"
나는 명작 사진 속 주인공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그들은 입을 벌리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그들에게 그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환한 그들의 미소와 손짓을 받으며 다시 가던 길을 이어간다.
바다 위의 하늘이 점점 붉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태양이 기울면 붉게 물든다. 빛과 어둠사이는 빨강이다. 왤까? 해변을 걸으며 생각했다. 아마 그건 빛과 어둠 사이엔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항상 고통의 과정이었다. 그 고통이 진할수록 핏빛에 가깝다. 그 고통이 끝나면 누군가는 빛으로 누군가는 어둠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어둠에서 빛으로 또 누군가는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그 고통을 견디며 빛과 어둠 사이를 오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Potato head beach
발리의 석양은 너무도 붉었다. 여태껏 내가 보아온 석양 중에 가장 빨간 핏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땅은 빛과 어둠이 가장 강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곳이라서일까?!...
일정의 마지막은 역시 마사지다. 하루의 여독은 그날에 풀어야 다음 날의 여행이 순조롭다. 지인이 추천해 준 마사지 샵을 찾았다. 호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서비스를 여기서는 최상의 아주 저렴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류의 서비스는 가격대비 질이 떨어진다.
Massage
"아아아~악!"
"Are you Ok?"
"ok ok keep going~"
어깨 위에 살던 곰들을 끌어내리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참기 힘든 통증이 신음소리로 터져 나온다. 마사지사는 나에게 연신 괜찮냐는 말을 건넨다. 참아야 한다. 그래야 고통 뒤에 찾아올 안식을 알기에... 오랜 시간 목수일과 매일 같은 수영으로 쉴 새 없는 어깨는 딱딱해질 데로 딱딱해져 있었다. 그 근육들을 마사지사가 부서뜨리는 것 같았다. 고통이 만든 딱딱함은 통증으로 다시 풀어야 한다. 치료가 통증을 수반하는 이유이다.
30분가량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통증이 이어지고 몸이 연체동물처럼 유연해지는 기분이 들자 나도 모르게 스스륵 잠에 빠져들었다.
"Finished"
"thanks a lot"
마사지사가 나가고 나는 온몸이 풀리고 몽롱한 기분으로 한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느낌이다. 영혼이 다시 육체로 돌아올 시간이 필요하다. 꿀잠을 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