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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29. 2024

일상과 여행 사이

발리에서 생긴 일 (Day-1)

발리행 비행기를 타게 된 건 우연이었을까?


며칠 전 야심한 시각 침대에 누워서 갑자기 떠오른 여행 생각에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지금 아니면 못 갈 거라는 생각이 나의 빠른 터치를 유도했다.


나의 여행은 항상 그랬다. 마음먹었을 때 티켓을 구매해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항상 머리로 생각만 하다 하지 못한 일들이 삶의 후회로 남아 지나온 시간들 대부분이었다. 발리로 떠나는 날 까지도 여행 일정을 짜지 못했다. 숙소도 여행 당일 새벽에 예약했다. 가성비 가장 좋은 숙소로 (당일이 되니 에어비엔비에 특가 상품이 뜬다)


여행 가는 당일 오전까지 일을 해야 했다. 일 때문에 늦은 오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하루다. 공항에 가서야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여행 정보들과 지인들이 알려준 관련 발리 여행 관련 링크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친한 동생들이 공항까지 픽업해 준 덕분에 편안하게 왔다.


비행기 안은 한산했다. 내 옆자리와 뒷자리가 모두 비었다. 이코노미 좌석이었지만 비즈니스처럼 누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며 펼쳐지는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은 비로소 나를 일과 일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여행이 시작된 것이 실감된다.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의 이유 with 여행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


호주에서 지내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곳이 점점 삶의 터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행하는 마음에서 이주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 삶은 현실이 된다. 현실은 고통을 품고 있음을 안다. 그때부터 삶은 고통으로 변해간다. 고통의 삶 속에서 낙원이 되어준 건 글(이야기)을 쓰는 시간이었다. 글을 쓸 때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뇌의 깊숙한 곳 해마(장기기억과 무의식)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 속에 머물다 보면 현실의 고통은 어느새 사라진다. 그렇게 현실의 삶을 견디는 또 다른 방법을 알아내었다.

in the sky with 光

오늘부터 며칠간은 현실에서 삶을 벗어나는 시간이다. 현실의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글(소설)을 쓰는 것과 여행은 많이 닮아 있다. 하나는 비현실에서 또 하나는 현실에서 삶의 터전을 벗어난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면 낯설고 신기한 것들로 눈과 귀와 입이 분주해진다. 이 분주함은 삶의 분주함이 주는 고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면서도 집을 계속 떠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류의 고생은 일상이 주는 고통과는 달리 추억을 남기기 때문이다. 일상의 반복되는 삶은 추억을 남기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냄에도 일상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억은 새롭고 신기하고 인상 깊고 낯선 것들에 더 오래 붙어있는다.

이코노미 like 비지니스

여유로운 비행기에서 미리 주문해 둔 기내식을 먹고 책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다 포만감에 잠이 밀려온다. 옆자리의 팔걸이를 모두 올리고 드러누웠다. 처음엔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빈자리가 많아 승객들이 모두 두세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간다. 승무원도 별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누웠다. 이코노미석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잠을 자 본건 처음이다. 2시간쯤 잤을까? 비행기가 출렁거리는 진동에 잠이 깼다. 창 가리개를 열어 바라본 풍경은 경이로웠다. 석양빛이 구름 위와 아래로 뻗어나가며 노란색 솜이불을 만들었다. 구름 위에는 선명한 파란색이 펼쳐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 파란색은 조금씩 짙어진다. 우주로 갈수록 공기가 줄어 공기 중에 산란하는 빛이 줄어 어두워짐이리라. 그렇게 높은 하늘은 어둠으로 덮여 있다.

응우라라이 공항 in Denpasar

발리에 도착했을 땐 짙은 어둠 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3시간의 시차 때문인지 발리는 저녁 9시였지만 나의 몸의 시계는 00시를 느끼고 있었다. 몸이 무겁다. 그런데 입국 절차가 복잡하다. 도착 비자를 사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또 각종 입국 서류들을 작성하느라 1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리고 또 핸드폰 사용을 위한 심카드 구매와 개통까지 거의 1시간 반을 공항에 붙잡혀 있었다. 수화물까지 있었으면 아마 2시간은 지체되었을 것이다. 이럴 땐 백패커가 빠르다.

in DPS airport

"우하~ 숨이 턱 막히는 구만"


공항을 나오니 시드니에서 느끼던 여름이 아닌 또 다른 여름의 기다리고 있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나의 몸의 수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증발로 열을 빼야 하지만 습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 속에서는 열이 몸 안에 갇혀버린다. 빨리 숙소로 가야 한다.


"Taxi~"

"니하오!, 곤방와! 안녕하세요!"


입국장을 나온 나의 뒤를 두 세명의 남성이 따라붙으며 나의 국적을 확인하려 한다. 나는 핸드폰만 주시하며 그들의 호객 행위를 못 들은 체 한다. 이제 홀로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바가지 씌우는 상인들과 기사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그리고 Grab이 다 깔리고 목적지까지 택시 비용을 확인한다. bike도 있다. 싸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그냥 택시를 타야겠다.


"Same price!"


옆에 서 있던 택기 기사가 나의 핸드폰 화면을 본 모양이다.


"Discount 10% of Grab price, Ok?"

"Oooh, Ook Ok~ go go"


그렇게 흥정이 끝났다. 나는 택시 기사를 해봐서 잘 안다. 이 늦은 시간 공항까지 나왔으면 빈차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든 승객을 한 명이라도 태워서 돌아가야 한다. 10% 정도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Deal이다. 왜냐 그들이 Grab으로 콜을 받아서 왔다면 어차피 10% 이상 아니 아마 그 이상의 수수료를 차감하고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기사와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현지 택시에서 제일 먼저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다. 그래서 몸이 피곤함에도 먼저 말을 걸었다. 택시 기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어가 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굳이 언어가 아닌 표정과 어감 그리고 제스처로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영어는 그저 거들 뿐이었다.


"What is that?"

"This is baliese religion"

"Religion?"

"Hindu"

"Ah"


그때부터 기사는 창문을 내리더니 도로 주변 곳곳에 보이는 조그만 석탑 같은 것들을 가르치며 그것들이 모두 각 가정과 개인들이 세워놓은 사원이라고 설명한다. 그 속에 신이 깃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의 난제로 그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차 안에 놓인 꽃과 이파리 가루 같은 것이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정말 미래에 그의 가족의 안전과 행복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그에게 미소를 주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Here you are"

"Thank you, Wait I give you changes"

"it's oK, 10% is yours"

"Oh thank you thank you"

Accomodation

그렇게 그와의 환담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다. 12시가 넘은 시간 숙소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숙소 키를 건네기 위해 나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로 그 시간까지 잠도 못 자고 기다린 그녀에게 죄송함을 표현했다.


배가 고프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숙소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새벽시간 편의점 앞에는 까무잡잡한 청년들이 맥주파티를 벌이고 있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듯 보였다. 나는 괜한 불화를 피하려 그들과 되도록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빨리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어치우고 피로와 포만감에 취해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일상과 여행 사이에서 하루가 지나갔다.


달 밝은 밤 in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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