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과 마주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낯설음을 통해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낯설음이란 두려움을 품고 있지만 두려움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만킥하게 된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희열을 얻고자 여행을 떠난다.
나의 여행도 항상 그러했다. 좀 더 낯선 풍경과 좀 더 낯선 사람들을 찾게 된다. 그건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일반적인 여행객들이 취하는 행동이 아닌 다른 행동을 통해 좀 더 익숙함에서 멀어지고자 함이다. 더욱더 낯선 풍경과 상황이 익숙함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 이건 눈과 귀로만 보는 것이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여행이다. 관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웃기지만 일상에서는 관조하는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여행에서는 관조하는 태도를 벗어나려 한다. (관조의 반대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건 일상이 익숙함이 고통과 권태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여행의 낯설음이 낯 섬에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머물러야 하는 익숙함과 떠나야 하는 익숙함을 구별하고 달리 대해야 한다.
그것이 삶과 여행을 좀 더 의미 있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삶과 여행의 의미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현지인의 삶을 느껴보기로.
몇 번의 Grab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니며 발리의 도로와 교통 상황들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뒤섞인 도로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런 무질서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차와 바이크와 사람들은 익숙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일상이지만 나와 같은 관광객은 낯설음과 동떨어짐일 뿐이다. 그 낯섬과 동떨어짐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Bike rental (3days - Aus $76) ㅜㅜ
바이크 렌털 업체를 찾았다. 150cc 파란 붕붕이를 대여했다. 적절한 가격에 빌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렌트한 사실을 하루가 다 지나고 알게 되었다. 좋았던 기분이 순간 나빠졌다. 비교는 항상 상대적 박탈감을 선사한다. 어차피 날아간 돈 몰랐다면 기분까지 날아가진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이 돈이란 녀석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마치 이성관계처럼...
스미낙에서 우붓까지 로드트립을 결정했다. 막상 오토바이를 빌리긴 했는데 쓩쓩 달려대는 오토바이와 차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뒤에 오는 차량들의 행렬을 한 참 동안 예의주시 하며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어느 간격과 타이밍에 들어가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여유로운 호주의 도로 컨디션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지금은 곤혹의 순간이다. 한참을 끼어들지 못하고 인도 위 보도블록에서 쩔쩔매는 나를 본 렌털업체 직원이 도로로 나와 뒤에 오는 차량들을 통제해 주고 나서야 나는 바이크의 액셀을 당겼다.
그렇게 처음 도로로 나서는 그 순간 느끼는 긴장감은 모처럼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동안 도로 위를 차량과 오토바이들 사이에 끼여 휩쓸려 다녔다. Grab 오토바이 뒤에 앉아 관조하며 바라보던 도로는 이제 내가 직접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체험의 시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이때부턴 과거와 미래는 사라지고 모든 감각이 현재에 초집중 상태로 돌입한다. 손에서 땀이 나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 경직된 상태가 지속된다. 피로감은 더욱더 가중된다. 게다가 발리의 열대 더위는 헬멧 안의 나의 머리를 땀으로 흠뻑 적셨다. 머리털이 많이 길었다. 보온효과가 배가 돼 머리에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
현지 이발소를 찾았다.
이젠 현실에선 구하고자 찾고자 하면 모든 것을 구하고 찾을 수 있다. 구글신이 모든 것을 알려준다.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길을 묻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묻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교류가 줄어듬이다. 정보검색으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어 편리하지만 인간과 인간은 서로 불편해짐 이리라. 과거엔 스마트 폰이 없던 시대에 여행은 묻고 또 묻는 과정이었다. 여행은 이동이며 이동은 길을 알아야지만 여행자는 모르기에 계속 물어야 한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젠 모든 여행객들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 화면만을 들여다보며 이동한다.
현지인이 해준 헤어컷이 나쁘지 않다. 서비스가 최상급이다. 헤어컷에 샴푸, 면도, 두피 마사지까지 가격도 저렴하다. 짧아진 머리는 이제 좀 더 많은 열을 발산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근처에 아트갤러리를 발견했다. 작가가 예술을 지나칠 수 없다. 조그만 미술 갤러리였다.
NYaman Gallery
"I'm curious about what they were thinking and imagine when they make the work of art."
(전 궁금해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 때 무슨 생각과 상상을 하는지가)
미술품들만 둘러보고 가려했는데 거기서 만난 현지 관리인과 예술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니 나의 글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가려던 미술관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I make a door open when I write." (전 쓸 때 문을 열어 둬요)
"what do you mean?" (무슨 말이예요?)
"It means that make readers to think more various." (독자들이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예요)
비록 닫혀있는 세상에 머물지만 생각은 열려있고 싶다. 그리고 내 글을 읽는 독자도 그러했으면 한다. 과거엔 생각 생기면 내 생각대로 썼지만 이젠 그 생각을 조금씩 숨기는 연습을 하게 된다. 글 속의 의도가 분명한 글보다는 글의 의도는 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해석과 생각과 상상을 만들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진다. 아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예술 작품들도 그러할 듯하다. 그냥 아무런 배경 정보와 설명이 없이는 이 작품 속에 작가의 의도를 알아낼 수 없다. 그래서 예술은 열려있다. 작가는 힌트와 영감을 줄 뿐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상상은 독자와 감상자의 자유이다. 예술가는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네가 보는 데로 느끼세요이다. 뭘 느끼고 상상하는지는 독자에게 달려 있고 그 느낌의 강도와 깊이와 넓이는 독자의 삶과 지식과 감성의 강도와 깊이와 넓이에 달려 있다.
다시 헬멧을 쓰고 달린다. 도로 위는 긴장의 연속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도심을 좀 벗어나면 괜찮겠지 했다. 그런데 이건 뭐 어딜 가나 차들과 오토바이들로 복잡하다.
과거 베트남 다낭에서 바나힐까지 오토바이 로드트립을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도심에선 좀 복잡했지만 도심을 벗어났을 땐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여유 있게 달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쾌적하고 여유로운 라이딩을 상상했다.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스미낙에서 우붓까지의 도로 상황은 거의 비슷하게 정신없고 어지럽다. 그때 비로소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이 넘는다는 배경지식(세계 4위, 2억 7753만)이 떠올랐다. 사람이 많으면 어딜 가나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달린 지 30분, 백팩의 무게와 경직된 몸, 더위에 흐르는 땀 주변 차량의 소음으로 몸이 지친다. 잠시 도로가에 멈췄다.
리어카
눈앞에 뭔가를 팔고 있는 리어카들이 보인다. 시원한 음료와 어묵탕 같은 것을 판다. 정말 싸다. 2불도 안 되는 가격에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음료를 파는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와 어묵탕을 파는 검게 그을린 남자아이가 외국인을 처음 본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음료와 음식을 건넨다. 그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문명이 크게 발전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발전된 문명에서 온 사람들에게 적대감보다는 신비감과 호기심이 더 발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비감과 호기심은 친절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낯선 이들에게 거부당하지 않는 친절함을 느낄 때 나는 기쁘다. 그래서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이방인에게 이것만큼 감사한 것도 없다. 이방인과 여행자는 항상 위험과 적대감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안전과 우호감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여행에서는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이유이다.
fishcake soup and Lychee juice ($2)
그들이 건넨 음료와 음식을 들고 도로가의 간이 테이블에 앉아 현지인들과 섞여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들의 매일 즐기는 그 익숙한 곳과 맛은 나에겐 모두 낯설음이다. 이런 안전한 낯설음이 좋다.
다시 불안전한 도로로 나서야 한다. 이놈의 도로는 언제쯤 안전함과 익숙함을 가져다줄까? 우붓까지 1시간 반 정도 달린 듯하다. 들어선 우붓시내는 더욱 번잡하다.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어딜 가나 복잡하다. 숙소가 우붓시내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오토바이를 렌트하지 않았더라면 우붓 시내로의 이동이 쉽지 않았을 거 같다.
Laksmi homestay
시내에서 떨어진 대가는 낯선 고요함이었다. 숙소와 숙소 주변의 경치는 낯설지만 평온했다. 낯섦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눈앞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이 안정을 찾아준다. 대만족이다. 그리고 다음날 여행에서 우붓의 매력을 알게 되고 이곳에서 일정을 하루 더 연장했다. 우붓이 발리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남은 일정을 모두를 우붓에서 보내기로.
미고랭 & 드래곤푸르트 주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 일정의 마지막인 저녁식사와 마사지를 하기 위해 다시 시내로 나섰다. 미고렝과 용과 주스로 허기를 달래고 숙소 근처의 마사지 샵에서 하루종일 긴장한 몸을 풀었다. 처음엔 낯설던 마사지사의 손길이 점점 익숙해진다. 나도 모르게 이젠 마사지를 받다가 잠이 든다.
그렇게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서 하루가 끝이 난다.
Between unfamiliarity and familiarity in Massage 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