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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31. 2019

내가 물속으로 들어간 이유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

난 물을 무서워했다. 어릴 적 파도치는 풀장에서 튜브를 끼고 깊은 물에서 놀다가 튜브에 바람이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날 이후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은 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시간만 나면 물속으로 뛰어든다.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등산과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남과 다른 점은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즐긴다는 것이다. 단체 운동은 소질이 없어 보인다. 특히 구기 종목은 꽝이다. 군대에서도 축구, 족구는 나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선임이 되어서도 후임들에게 개발이라고 무시를 당할 정도였다.

hiking

   20대 때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수많은 산을 누비고 다녔다. 주말만 되면 도시락을 싸들고 등산화가 달아 없어질 정도로 이산 저산 돌아다는 산악 동호인이 되었다. 심지어 주중에도 회사를 마치고 야간산행을 갈 정도였으니 무릎이 남아날 리 없었다.  조금씩 찾아온 무릎 통증이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퇴행성 관절염이네요"

"헐~"


   30대 초반에 찾아온 관절염, 의사는 등산은 줄이고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운동을 하라며 관절약을 한 다발 지어주다. 그 이후 자전거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즈음 이직한 직장의 직속 사수가 자전거 마니아였다. 아침저녁으로 자출(자전거로 출근)할 정도였다. 자의(自意)는 아니었지만 깐깐한 사수와 친해지려 당시 그가 추천해준 자전거를 당시 80만 원이라는 거금(처음엔 100만 원이 넘는 자전거를 사라고 꼬드기는 걸 만류하고)을 들여 그와의 자출에 동참했다. 시련의 시간이었다. 정신적으로도 모자라 육체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보냈다.


   혹한의 겨울, 폭염의 여름, 계절을 따지지 않고 와 눈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자출은 강행되었다.  몇 백만 원이 호가하는 고급 로드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를 쫓아가느라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체력도 부실한데 장비빨까지 달리니 그와의 차간 거리는 가까워질 리 만무했고 핀잔이 끊이질 않았다.  매일 왕복 30km가량을 달렸다. 일과 운동을 같이하는 직장생활은 고문이었다. 당장 자전거를 버리고 싶었지만, 사수와의 관계를 위해 이를 꽉 깨물고 그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2년간을 리고 직장을 떠났다. 회사에 일하러 다닌건지 태릉선수촌에 훈련을 다닌 건지 아직도 헷갈린다. 덕분에 난 강한 체력과 하체를 가지고 전역? 아니 퇴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훈련은 매일 연속되는 야근을 버틸 수 있는 기초체력을 길어주었던 것 같다.

Riding in the mountain

  그 지긋지긋한 자전거를 이제 안타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몸에 밴 페달링 습관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이번엔 자전거와 함께... 산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맑은 공기와 녹음 속에서 들려오는 산소리가 회사생활에 지친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자전거로 산을 오를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듯한 고통은 어지러운 상념들을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산 정상에서 잦아드는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온전히 느끼며 빠져드는 평안함은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설명하기 힘든 오르가슴 같은 것이었다. 너스로 내려올 때(다운힐) 느끼는 짜릿한 스릴은 짧지만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충분했다.


미세 먼지가 찾아왔다.


   불과 몇 년 사이 맑은 공기는 멸종되어 가고 있었다. 수돗물에서 생수를 사 먹었듯이 이젠 공기도 사서 마셔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듯 보였다. 숨이 먼지로 차오르는 라이딩은 나를 더 빨리 저승길로 안내할 듯 보였다. 먼지 속 라이딩은 나의 몸을 아프게 만들 뿐이었다. 원망스러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화려한 금수강산은 어디로... 이젠 나의 유일한 낙을 빼앗아 가버리는구나

   

물속은 안전하겠지


  그래서 물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먼지가 뒤덮는 날이나 일 년 365일(수영장 휴관일만 빼고) 상관없다. 물속이 나를 보호해주니까? 4년 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수영을 배우려 새벽 초급반을 찾았다. 첫날 어색한 수영복을 입고 유난히도 도드라지는 아랫부분이 자꾸 의식되어 몸을 움츠려 내린 손으로 가리고 수영장에 들어서던 날을 기억한다.

  

 킥판을 부여잡고 발버둥을 치고, 앞으로 나가지 않아 뒷사람의 똥침을 맞으며 수없이 마신 수영장 물 때문에 입에서 락스 냄새가 난다며 놀리던 직장동료들의 말이 기억난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물속이 편안해졌다. 이젠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수영장으로 향하는 습관이 생겼다. 집에선 씻을 일이 없수도세가 거의 없다.  흘릴 일도 없어 빨래도 없다. 장비빨(only 팬티)에 꿀릴 것도 없다. 여러모로 좋다. 4년 넘게 수영을 하면서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담배도 끊었고 없던 어깨가 생겼다. 고질적인 비염과 가래도 사라졌다. 가장 재밌는 변화는 주량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자신감 충만하다. 다음날 숙취가 덜하다.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


   내가 수영에 심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물 속은 나와 세상을 차단시켜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과거 직장 생활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카톡 업무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업무(팀별, 부서별, 프로젝트별 등) 단톡 방의 메시지들은 나를 힘들게 했다. 퇴근 이후에도 계속 쏟아지는 카톡들로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스마트폰은 세상과 나를 24시간 로그 온 워킹(Working) 상태로 만들었다.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세상과 로그오프 하는 시간이다. 팬티만 걸친 채 물속에서 유영하는 순간 자유인이 된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나의 숨소리뿐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건 주름 잡힌 셔츠와 바지도 목을 죄는 넥타이도 진동하는 스마트폰도 니다. 오로지 태초부터 존재했던 물 밖에 없다.(그럼 난 아담?!)

   

"야~ 왜 전화 안 받아? 왜 톡 확인 안 해!"

"수영하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주말 등 직장 상사,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나 톡을 수신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되었다. 이젠 그런 핑계도 통하지 않을 듯 보인다.  왜 스마트 폰에 방수 기능을 넣었는지,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더욱 인간을 옥죄어 오는 듯하다.

 

그래서 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난 물속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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