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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18. 2024

신과 돈 사이

[마르크스] 피터 싱어

“사유가 존재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사유에 선행한다”

- 피터싱어 [마르크스] 중에서 -


‘모든 사물은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 인간의 정신을 지배해 온 관념 중에 하나이다. 모든 철학은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발견된 생각을 언어로서 표현한다. 철학적 사고는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과학은 철학적 사고에서 패턴과 규칙을 발견하고 현실의 사물과 현상에 적용 혹은 구현 가능한 숫자와 공식으로 표현한다. 그 숫자와 공식은 많은 새롭고 획기적인 사물(가공된 제품, 식품, 무기 등등)을 만들어 내는 기초가 된다. 기초과학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사유가 우선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제 그 반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했다.


그건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며 세상에 넘쳐나는 사물들로 인해 인간들이 그것에 구속되고 속박됨으로써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사유가 아닌 소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카를 마르크스 (1818~1883)

독일의 주류 철학의 끝판 왕에 도착했다. 칸트에서 시작한 관념론을 이어받은 헤겔은 관념론적 변증법을 착안해 내었고 마르크스는 그의 철학을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현실 사회(정치)에 접목시켰다. 그는 생각(관념 - 칸트)과 역사(과거 - 헤겔)에만 머물던 철학을 현재의 사회와 다가올 미래의 사회를 변화시킬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마르크스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의 확장과 연결에만 국한되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철학으로 바꾸려는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철학을 멀게 느끼는 이유는 모두 딴 세상 얘기만 하고 있는 교수들과 박사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뭔가 대단하고 의미심장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당장은 아무런 변화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왜냐 현실의 삶, 즉 정치와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하는 생각의 변화는 실질적으로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없다. 


생각의 변화가 자신의 습관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와 문화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두가 다 그 철학 읽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연스러운 문화인식과 가치관의 변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건 자발적인 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를 통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건 그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당장 피부로 와닿을 수 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고 거북할 수 있다. 모든 변화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는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만 혁명과 혁신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인내를 감수할 수 있을 다수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자를 우리는 혁명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런 노력보다는 진영논리와 이익을 위해서만 국민을 이용하려 하는 것 같다.


유럽에서 마르크스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1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2005년 영국 BBC 선정 가장 위대한 철학자 1위)


“마르크스는 인간 자유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종교도 철학도 아닌 화폐라고 주장한다”

피터싱어 [마르크스] 중에서 –

칸트(1724~1804)와 헤겔(1770~1831)

칸트와 헤겔을 비롯한 독일의 관념철학자들은 모두가 정신(Spirit), 영혼(Soul), 신(God), 절대자(Absolute), 무한(Infinite)이라는 개념으로 모든 사유를 전개해 나갔다. 철학이 종교와 연결되는 접점이기도 하다. 종교는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 것이 바로 종교 아니었던가? 왕은 물질세계를 관장하고 신은 정신세계를 관장하며 이 둘이 인간 세상을 양분하고 지배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사유(思惟)는 노동과 소유로 대체


신의 위상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이전에는 인간세상에는 인위적인 물질의 종류와 개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공장(기계)과 노동자(인간)가 합체하면서 엄청난 물질(공산품, 가공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편리하고 유용한 물질들은 사람들의 욕망과 편의를 충족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사유하는 시간은 모두 노동하는 시간과 소유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어 가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자본가), 새로운 사회 계급이 탄생한다. 왕과 신 사이에 그들과 비등한 힘을 가진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물질(인위적으로 가공된)을 창조해 내는 그들은 그 물질을 화폐로 저장하고 증식시키는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탄생시켰다. 화폐라는 피가 돌아야만 살 수 있는 구조로 바꿔버린다. 세상은 이제 왕의 권위도 신의 말씀도 아닌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다. 문제는 그 산업 자본주의의 초기, 부르주아들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그 시스템에 균열이 가게 되었다. 엄청나게 생산된 물질이 초기에 그들에게 부와 힘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물질을 소비할 능력이 없는 다수의 저소득층 노동자들로 채워진 사회가 피(화폐)가 돌아가는 것을 멈추게 만들어 동맥경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산업혁명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감정인 자유를 다시 이 사람들에게서 일깨워야 합니다. 이 감정만이 사회를 다시 인간의 공동체로 탈바꿈시켜 지고한 목표인 민주주의 국가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루게에게 쓴 편지>


피터 싱어 [마르크스] 중에서 -


마르크스는 하루 15시간씩 공장에서 노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했다. 그는 마음속에는 연민과 동정의 감정이 불타올랐고 여태껏 탁상공론만 해왔던 위대한 철학자(칸트와 헤겔)들의 생각을 역이용해서 그것을 현실 사회를 바꾸는데 이용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면서 그의 철학을 완성해 나간다. 헤겔은 그의 철학적 스승이었고 또한 무너뜨려야 할 성벽과 같은 존재였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헤겔은 권좌에 올라 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철학으로 권력자들의 비위나 맞추는 존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헤겔의 철학은 당대 독일의 정신을 대표하는 철학으로 격상되었고 그는 국가로부터 명예 훈장을 수여받고 베를린 대학의 총장 자리에 까지 오른다. 마르크스는 그를 끌어내릴 계획을 세운다. 그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정반합의 불편한 성장’ - 서평 참조)을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변형해서 재탄생시킨다. 사회주의 혁명이 불씨는 그의 역발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관념론적 변증법 vs 유물론적 변증법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관념)이 부딪힘으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 나감으로써 인류의 사고체계가 발전하고 가치관이 변해간다. 이건 헤겔 (관념론적) 변증법의 핵심이다. 나(정, 正)와 너(반, 反)가 합(合) 쳐지며 새로운 무언가 다른 관념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이건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는 나선형 구조의 발전 방식이다. 물론 그 반대로 아래로 하강하는 퇴보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인간과 인간의 생각의 충돌이 아닌 사물(물질)과 사회(현상)의 충돌로 놓고 생각했다. 산업혁명 이후 넘쳐나는 물질들이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물질을 만드는 주체와 사회를 이끄는 주체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물질을 생산하는 자들이 물질에 의해 소외된다. 이건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농경의 시작이 밀(벼)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정작 인류는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 약화와 논밭에 얽매어 노예(농노, 소작농)와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두 가지의 존재로 사회가 나눠졌다고 봤다. 그리고 이 둘은 정과 반의 입장에서 계속 충돌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부분의 사회문제가 여기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호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둘의 관계는 필요악의 관계이다. 반드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서로를 미워한다. 마치 이혼할 수 없는 부부관계와도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물질과 현상의 모순 관계를 변증법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


“화폐는 보편적인, 그 자체로 구성된 모든 사물의 가치이다. 때문에 화폐는 세계 전체에서, 인간 세계 및 자연에서 그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강탈했다. 화폐는 인간에게 낯선 인간 노동의 본질이자, 인간에게 낯선 인간 현존의 본질이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70p>_책세상


피터 싱어 [마르크스] 중에서 -


왕과 신의 자리를 대체해 버린 돈은 세상의 모든 것에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척도가 되어갔다. 물질의 증가와 함께 화폐도 증식했다. 이것들의 증가와 증식이 인간의 존엄을 소멸시키는 원흉이라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물질과 자본의 증식이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있으며 이건 과거 신(정확히는 신의 대리인)의 자리를 화폐가 대체한 것이라 판단했다. 신이 화폐로 바뀌었다.


“관건은 오로지 고백입니다. 인류가 죄를 용서받으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피터싱어 [마르크스] 중에서 -


마르크스는 자본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증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글로 묘사한다. 논증과 변증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해 낸다. [자본론]의 집필이었다. 마르크스는 과거 종교개혁으로 신의 세상이 쪼개진 것처럼 화폐로 만들어진 자본주의 세상도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유물론적 변증법을 통해 설명해 낸다. 사람들은 그의 글 속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신(有神 : 신이 우주를 지배하는)도 유물(唯物: 물질이 만물의 근원)도 아닌 유인(唯人: 인간이 만물의 근원)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신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종식시키고 인간만이 가장 존엄한 이상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신이 지배하고 물질이 지배하는 모순의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한 그는 그 모순을 바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모순 없는 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주와 인간은 모순 속에 갇혀서 살 수밖에 없음을 몰랐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피터 싱어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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