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걷고 쓰고

치악산 둘레길 140km 한 달 만에 걷기

치악산 둘레길 11코스 완보기

by 당근


6월에 지리산에 가기 위해 3월 말부터 주말을 이용해 원주의 치악산 세렴폭포, 소금산, 미륵산을 다니던 중이었다. 원주 근교의 낮은 산부터 시작하여 4월 셋째 주 주말에는 치악산 종주를 할 계획이었다. 치악산을 종주하기로 한 그 주 수요일에 원주로 전근 간 B(전 직장동료, 3월부터 원주를 탐험 중인)가 치악산 둘레길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총 11코스였다. 주말을 이용하여 하루에 한 코스씩 걸으면 1달 반이면 다 걷겠다 싶었다. 치악산 둘레길 걷기로 목표를 바꾸었다.


둘레길 여권에 둘레길 코스 중간에 있는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기념품도 준다고 하여 여권도 구입하기로 했다. B가 원주시청 매점(두 개 밖에 없어서)과 원주 걷기 여행길 안내센터에 가서(이곳에서 한 개 더 구입) 여권 3개(나, B, 남편)를 구입했다. 여권은 하나에 만원씩인데 둘레길 인증하는 여권이 이렇게까지 비싸야 하나(종이의 질이 지나치게 고급임)싶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치악산 둘레길 11코스를 주말을 이용하여 8일 만에 다 걸었다. 주중에 인제에서 일하고 주말에 원주로 와서 둘레길을 걷다 보니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하기 위해서 11개의 코스를 차례대로 걷지 않았다. 뒤죽박죽 걸은 길,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본다.


1. 스탬프함은 왜 못 본 거야!


1코스 꽃밭머리길 2번째 스탬프와 4코스 노구소길 2번째 스탬프를 못 보고 지나쳤다. 코스 종점까지 걸은 후 차를 타고(다행히 두 코스 다 차로 갈 수 있는 곳에 스탬프함이 있어서) 다시 가서 스탬프를 찍었다. 차로 갈 수 없는 산 중턱이나 산 정상이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2. 열쇠는 어디다 두고?


11코스 한가터길을 걷고 난 후 국향사 앞 찻집에서 여유 부리며 차까지 마셨다. 차를 가지러 11코스 시작점(영서고 앞 강변길)으로 가려고 했으나 차 열쇠가 없었다. B가 배낭 안에 열쇠를 넣어두고 '오늘은 배낭 없이 걸어도 되겠죠'하며 내 차에 배낭을 두고 걸은 덕분에 택시를 타고 시작점까지 가야만 했다.


3. 점심 먹을 체력은 남겨둬야지!


올라갈 때 50%, 내려올 때 30%. 그리고 20%의 체력을 남겨둬라(어떤 자료에서는 40%,30%,30%). 많은 등산 관련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체력을 남겨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등산이 끝난 후 셋이서 닭백숙 하나를 시켜놓고 아무 말없이 백숙에 함께 나온 누룽지죽만 후룩후룩 먹다가 반 넘게 남은 닭백숙을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정말 입맛이 뚝 떨어짐). 뿐만 아니라 아예 밥 먹을 기운마저 없어서 산행 후에 점심도 안 먹고 일행과 헤어지는 일도 생긴다.


4. 고생한 발에게 치악산 청정 계곡물을!


5코스 서마니강변길, 8코스 거북바우길, 10코스 아흔아홉골길을 걸을 때 계곡에 발을 담그고 쉬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계곡물의 냉기가 전해지면서 발바닥 통증이 완화되고 정신도 번쩍 들었다. 5코스 서마니강변길에서 4코스 종점을 향해 가다가 계곡에 발 담그고 먹은 컵라면 맛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5. 화장실이 문제로다.


간이 화장실이 가끔 보이나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이용하기 어렵다. 깨끗하지 않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어서 마을 회관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마을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보였다. 마을 회관 앞에 서 있는 분들께 가서 화장실을 좀 이용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나와 눈을 마주친 분이 잠시 망설이는 게 보였다. 그때 옆에 있던 분이 바깥화장실이 있으니 그곳을 쓰라고 했다. 재래식에다 변기 위에 거미가 집을 짓고 살고 있을 정도로 사용흔적이 없는(아주 오래 전에 많이 급했던 사람들이 사용한 듯한 흔적은 많은)화장실이었다. 실내 화장실을 권하지 않은 각박함에 잠시 마음이 씁쓸했다. 지저분하고 무서웠지만 너무나 급해서 잘 쌌다. 아니 잘 썼다.


6. 리본을 찾아라!


걷는데 정신이 팔려서 혹은 힘들어서 혹은 이야기하느라 혹은 당연히 이 길일 거야 하며 걷느라 둘레길 코스를 벗어날 때가 있었다. 한참 가다가 리본이 보이지 않아 멈춰 섰을 때 20분을 더 와서 20분을 다시 되돌아간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5코스, 10코스) 또 한 번은 걸어서 다시 되돌아가기에 엄두가 안 나서 히치하이킹을 수줍게 한 번 시도해 봤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둘레길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도로를 걸어서 코스를 찾아간 적(4코스)도 있었다.



7. 새벽에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서는 이유는?


시작점과 종점의 위치가 달라서 차 한 대를 종점에 두고 다시 시작점으로 와서 걸어야 했다. 6시에 걷기를 시작했다면 종점에 5시 30분쯤에 차를 댔다는 것이고, 그 얘기는 집에서는 5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는 말이다. 새벽 찬 기운을 맞으며 집을 나설 때는 이 새벽에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자려고 누웠을 때, 자다가 아침인가 하고 눈을 떴을 때 낮에 본 초록 나뭇잎들이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토요일에 많이 걸어서 힘들면 일요일에 걷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고 나면 또 나가고 싶어졌다.


8. 준비해간 비옷은 왜 안 입고?


둘레길을 걷기로 계획한 첫주 토요일에 비 예보가 있어서 일주일 내내 시간대별 비 예보를 봤다. 1시에 비그림이 있어서 어쩌면 일찍 시작하면 비 오기전에 1,2코스를 모두 마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1시쯤 온다던 비는 11시쯤 온다는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고 실제로는 10시 좀 넘어서 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창 넓은 등산모자가 비를 가려주니 우의를 꺼내입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그냥 걸었다. 누구라도 먼저 우의를 입자고 했으면 입었을텐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2코스를 끝날 즈음부터는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는데도 무슨 오기인지 우의를 입지 않았다. 덕분에 점심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난로 앞에 딱 달라붙어서 몸을 녹여야만 했다.


9. 코스 평

(차소리 안 들리는 곳을 좋아하고, 땡볕보다는 그늘을 좋아하고, 오르막보다는 평지를 좋아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


제일 난도가 낮은 코스는 7코스 싸리재옛길이다. 완만한 임도를 계속 내려오다 신림면의 강변을 따라 걸으면 그림 같은 용소막 성당이 나온다. 숨찬 구간이 전혀 없다.


제일 아쉬웠던 코스는 6코스 매봉산자락길이다. 곳곳에 포클레인이 장마철을 대비하여 산사태 방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산이 무너지기 쉬운 모양의 흙이었다. 6코스 종점에 가까워졌을 때 나이 드신 여자분 셋이 올라오다 한 분이 다리를 다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산 쪽의 나무를 잡고 올라가려다 나무가 흙, 돌과 함께 쏟아져 내린 게 보였다.


제일 좋았던 코스는 3코스 수레너미길이다. 별 4개짜리 난이도 조금 힘듦이라 표시된 코스이지만 마을, 들판, 계곡, 적당한 난이도의 등산, 숲, 휴식공간, 느린 우체통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이 따로 있나, 여기가 바로 순례길이지'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생각할 때 B도 그런 말을 했다.


9코스 자작나무길을 내려올 때의 시멘트 임도(땡볕)와 10코스 아흔아홉골길을 내려오는 구간의 신촌댐 주변 가로수 하나 없는 아스팔트 도로(땡볕)를 걸을 때가 많이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날은 4,5코스를 이어 걸은 날이다. 4코스 종점이 차도에서 멀어서 보통 두 코스를 이어 걷는 사람들이 많다 하여 각오를 하긴 했지만. 두 번이나 리본을 놓치고, 횡성읍 강림면에서 영월읍 무릉도원면으로 갔다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로 둘레길이 아닌 길을 걸어서 5코스 서마니강변길을 찾아갔다. 넉넉잡아서 7시간이면 끝내겠지 싶었는데 9시간이나 걸렸다. 그날은 스탬프 도장 찍는 곳도 그냥 지나쳐서 4코스 시작점에서 두 번째 스탬프함이 있는 곳까지 임도를 따라 차로 다시 갔다 오기도 했다. 졸리고, 밥 먹을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점심도 먹지 않고 각자 집으로 갔다.


11코스 한가터길은 영서고에서부터 혁신도시와 반곡역을 거쳐 국향사로 올라가는 코스의 길인데 거꾸로 국향사에서부터 숲길(지그재그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음)을 내려온 후 평지를 걸어서 코스를 마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8일 만에 140km를 걸었다는 건 완보(完步)하였으나, 완보(緩步)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번에 늦봄부터 초여름까지의 치악산 둘레길 풍경을 실컷 봤으니 다음에 걷는다면 가을이 좋겠다. 그때는 이번에 걸었던 길 중 좋았던 몇 코스만 뽑아서 완보(緩步)하면서 완보(完步)해 보고 싶다.



1코스 꽃밭머리길(4/20)
1코스 꽃밭머리길(4/20)
2코스 구룡길(4/20)
2코스 구룡길(4/20)
3코스 수레너미길(5/11)
3코스 수레너미길(5/11)
4코스 노구소길(5/18)
4코스 노구소길(5/18)
5코스 서마니강변길(5/18)
5코스 서마니강변길(5/18)
6코스 매봉산자락길(5/12)
6코스 매봉산자락길(5/12)
7코스 싸리재옛길(4/28)
7코스 싸리재옛길(4/28)
8코스 거북바우길(4/28)
8코스 거북바우길(4/28)
9코스 자작나무길(4/27)
9코스 자작나무길(4/27)
10코스 아흔아홉골길(5/19)
10코스 아흔아홉골길(5/19)
11코스 한가터길(4/21)
11코스 한가터길(4/21)




치악산 둘레길에 관한 정보는 홈페이지에 잘 나와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시려면 이곳에서 얻으시길.

www.chiaktrail.kr


제주올레길·해파랑길·부산갈맷길 등의 바다를 낀 길들이 섬세하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길이라면, 치악산둘레길은 거칠고, 투박하며, 남성스러운 길로, 사계절이 뚜렷한 팔색조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치악산둘레길은 길을 걸으면서 심신을 치유하고, 나를 찾으며, 둘레길 곳곳마다 소박한 삶의 체취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코스를 선정하였습니다. - 출처 : 치악산 둘레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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