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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토마토 들고 출근합니다

모닝커피 들고 출근하세요? 전 방울토마토 들고 출근합니다!

by 당근

모닝커피 들고 출근하세요? 전 방울토마토 들고 출근합니다!

손마디 통증으로 이번주는 배드민턴을 쉬기로 했다. 배드민턴 가방 때문에 학교까지 차를 몰고 다녔는데 배드민턴을 쉬는 김에 이번주는 걸어 다닐 생각이다. 오늘은 일찍 학교에 가고 싶다. 집을 나오면서 뚜껑 있는 1회용 플라스틱컵 하나를 챙겼다. 지난주 목요일에 A(나의 배드민턴 선생님)가 집까지 배달해 준 포도주스(직접 갈아서 만든)와 건야채칩을 담아 온 플라스틱컵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관사 4층에서부터 학교 진로실 4층까지 몇 걸음인지, 몇 분 걸리는지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핸드폰 스톱워치를 켰다.


관사가 산 가까이 있어서 복도 창문 근처에는 유난히 시커멓고 큰 산모기가 많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누가 모기약을 뿌렸는지 오늘은 산모기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유황냄새가 난다. 어디서 가스가 새나 잠시 걱정.


주차장 옆의 텃밭으로 갔다. 봄에 감자심을 때 오이 고추 2 포기와 방울토마토 4 포기를 함께 심었는데 고추도 방울토마토도 혼자 먹기에 많았다. 고추도 토마토도 한 포기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가 열리는지 모른다.


여름방학 3주 동안 원주에 가 있는 사이에 방학에도 관사에 계속 사는 분께 고추랑 토마토를 따 드시라고 했다. 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니 오이고추 한 포기는 말라서 죽었고 방울토마토 4 포기와 오이고추 1 포기는 살아있었다. 역대 최악,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와 함께한 올여름의 그 폭염을 이겨내고 날마다 열매를 키우고 익히고 있었다. 방울토마토 익은 것을 따니 딱 플라스틱컵 한 컵이 나왔다. 관사 앞 야외 수도에 가서 손도 씻고 토마토도 씻었다. 갓 따서 갓 씻어낸 방울토마토.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지. 사진 한 컷.


왼 손에는 방울토마토컵을 들고 오른쪽 어깨에는 에코백(등산복이 들어있음, 퇴근 후에 기룡산 등산 약속이 있음)을 메고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감리교회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데 기룡산에서 등산하고 내려오는 여자 두 명(따로)이 보이고, 기룡산으로 올라가는 남자 한 명이 보인다.


나팔꽃이 전봇대를 따라 올라가며 꽃을 피운 모습이 예쁘다. 한 손에는 플라스틱컵을 들고 또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남의 텃밭 앞에서 나팔꽃 사진 찍는 내 모습을 기룡산에서 내려오던 여자 한 분이 힐끔 보고 걸어간다. 그분 뒤를 따라 감리교회옆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 여자분이 성당 쪽으로 간다. 나도 성당 쪽으로 간다. 성당 옆문으로 가면 학교가 더 가깝기도 하고 성당 앞을 지나면 왠지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도 들어서 그 길을 주로 이용한다. 성당 옆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대추나무가 주렁주렁 달린 대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또 사진 한 컷.


앞서 가던 여자분이 마리아상 앞에서 손을 모으고 짧게 기도한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사진 한 컷.

향교를 지나서 학교 정문에 들어선다. 하늘도 푸르고 운동장 잔디도 푸르디푸르다.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면 아마 지금 불어오는 선선한 이 바람의 색깔도 파란색일 것이라 생각한다. 유황냄새가 계속 난다. 누가 쓰레기를 태우나, 어디서 가스가 새나 또 생각한다.


운동장에서 계단을 30개 정도 올라가야 학교 건물이 있다. 할머니 한 분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하고 계신다. 계단을 올라서서 본동 앞 능소화 앞에서 멈춰 섰다. 꽃이 많이 지고 덤성덤성 남아있는 꽃도 시든 게 많지만 아직도 생생한 꽃이 있다. 능소화도 한 컷.


1층 왼편 행정실 쪽 문으로 들어서는데 행정실에서 TV 뉴스 소리가 들린다. A기사님이 계신가 궁금했지만 그냥 올라가기로 한다. A기사님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4층까지 한 계단 한 계단 타이거 스텝과 레스트 스텝으로 걷는다. 대청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니 유튜브에서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무서운 유튜브) 대청봉 관련 영상, 등산할 때 힘들게 걷지 않는 방법 등을 맞춤형으로 정보를 제공해 줘서 요즘 계단을 오를 때마다 연습하고 있다.


진로실 문을 열고 책상뒤 소파에 에코백을 던져놓으니 핸드폰에서 7시 알람이 울린다. 혈압약 먹을 시간이라는 알람이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다른 날 보다 십여분 일찍 먹었는데 약을 들고 와서 학교에서 시간 맞춰 먹을 걸 그랬나 생각한다. 핸드폰 알람을 끄고 스톱워치도 끈다. 소요시간 12분 20초, 763걸음. 보통걸음으로 왔으면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여유 부리며 걸어오느라 5분 정도 더 걸렸다.


냉장고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컴퓨터 전원을 켠다. 신경외과에서 퇴행성관절염은 아직 아니고 손가락을 많이 써서 그렇다고 했는데, 손가락을 덜 쓰고 살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은 손가락이 좀 아프더라도 출근길을 적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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