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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존중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기준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강요해선 안 된다.

by 당근과 채찍

며칠 전, 평소 산책하던 루틴을 어기고 차 안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었다.

어쩌면 일상의 한 조각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떠오른 건 김수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었다.

"아이들도 그 나이에 가장 원숙한 존재다."

짧지만 꽤 큰 울림이었다.


우리는 종종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판단한다.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세상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은 어른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평가다.

정작 그 아이는 자기 세계 안에서는 가장 충만한 존재일 수 있다.

이런 시선은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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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기준을 들이대고 있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업무 질문을 전달할 일이 있었다.

나는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팀장은 “그건 자율적 판단을 방해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순간, 혼란스러웠다.


나는 단지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배려는 상대방의 생각할 기회를 막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 하나에도 나의 ‘기준’이 은근히 묻어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란 결국, 나의 기준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준이 없는 게 아니라, 그 기준이 타인을 옥죄지 않게 하는 연습. 그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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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에는 선이 있다

물론, 무조건 다 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평등한 존재로 봐야 한다.

나이, 위치, 경험과 상관없이.


하지만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무례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다면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중은 무한히 퍼주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그 선은 내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타인을 무 자르듯 단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질서로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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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사람은 더 멀리 본다

단호한 태도는 분명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쉽게 따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부드러운 사람이 좋다. 단순히 친절해서가 아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더 넓은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려 한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단단함이다.

진짜 강한 사람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판단을 해도,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누군가의 존재를 줄이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존중이고, 그 태도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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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은 경계를 지키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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