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지 않은 은밀한 이야기
한 달에 한 번, 내 몸이 계약 위반이라면서 화를 낼 때가 있다. 근데 나는 계약을 한 적도 없고, 기대감을 심어준 적도 없다. 마음대로 기대해 놓고 화를 내버리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배란통, 생리전증후군(PMS), 생리통까지 갖가지 통증은 다 던져놓고선 갖은 생떼를 부리는 꼴이라니. 꼭 나 같다.
글을 쓰기 위해 매 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이 행사를 어떻게 표기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읽는 글일 텐데, 어떻게 하면 거부감이 없을까. 그런데 굳이 이걸 돌려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이 문제에 대해서 궁금했다. 왜 은밀하게 말해야 하는 걸까? 매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처럼 매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찾아보니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월경을 돌려서 표현하는 단어는 전 세계적으로 5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생리, 마법, 매직, 마술, 그날, 대자연. 어쨌든, 월경이 시작됐다. 이 기간에는 현저히 에너지가 떨어지고, 개인에 따라 곳곳에 통증을 느낀다. 물론 통증이 수반되지 않는 복된 이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복통과 골반통증이 주로 나타나고 가끔 허리통증과 드물게 두통까지 나타난다. 그리고 사흘동안 통증이 지속된다. 그야말로 페스티벌이다. 고통의 축제.
그러다 보니 보상심리 또한 커진다. 나는 지금 아프고 힘드니까 좀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고통받고 있으니까 단 음식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등 합리화를 하면서 스스로와 타협한다. 어제도 그렇게 야밤에 사과를 한 개 날름 먹어치웠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폭주기관차를 타고 집안의 모든 군것질거리와 다이어트에 독이 될 수 있는 음식들을 다 먹어치웠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주일간의 전략을 잘 짜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일주일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나는 오후에 바삭한 게 먹고 싶으면 견과류 한 봉지를 꺼내어 먹을 것이고, 단 것이 먹고 싶으면 귤을 한 개 까먹을 것이다. 그리고 밤에 단 게 먹고 싶으면서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면 꿀을 한 티스푼 넣은 단백질 셰이크를 타먹을 것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이제 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그랬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산책을 가고, 여느 날보다 더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고단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이 피로한 날들을 이겨나가는 힘이 될 것이고, 오늘의 콩나물밥처럼 별것 아닌 시도도 이 시기엔 대단한 성취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성취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다. 저녁엔 새우튀김을 만들었는데, 맛에 취해 그만 평소보다 거하게 먹어버렸다. 특히, 남편이 남긴 새우튀김은 괜히 더 맛있었다. 이 맛있는 걸 배부르다고 남기다니, 내가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야식은 내 잘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