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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취소, 취소, 취소

by Carroty

시월 중순에나 도착한다고 했던 애플 워치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새 상품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어젯밤에 선언해 버린 파업은 당장에 철회하기에 바빴다. 프리랜서가 파업은 무슨 파업인가. 글은 결국 계속 쓰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나는 무명 글쟁이일 뿐인데 내게 안 쓴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다이어트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업은 취소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컨디션이 전 날과 다르게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지지부진했던 체중감량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호르몬의 노예도 이젠 취소다. 월경이 끝나면서 변비와 붓기가 빠르게 사라진 덕분이었다. 애플 워치를 서둘러 연동하고, 비가 잠시 그쳤을 때를 놓치지 않고 산책을 다녀왔다. 어제까지는 방전 직전처럼 빌빌거렸는데, 워치가 교체되자 나도 새 배터리를 장착한 것 같았다. 이 워치를 차고 자면, 나의 수면 중 무너짐까지 데이터로 남겨지지 않을까.



글을 쓰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다 샤인머스켓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4시간이 지난 시간이어서 제법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시간이었다. 오른손이 주섬주섬 5알을 꺼내어 왼손에게 쥐어주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왼손은 내가 깨닫기 전에 입으로 샤인머스캣 한 알을 입으로 넣었다. 거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한두 시간 정도 지나니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고작 5알이 또 달고 시원한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든 것이었다.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니 편의점에 가자고 하려다 오늘 아침 몸무게를 떠올렸다. 조금만 더 애쓰면 73kg대로 내려갈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아이스크림 공장 영상을 찾아봤다. 수백, 수천 개의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지고 포장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잠시만 주위를 돌려주면 사라질 유혹이었는데 빠른 해결방법을 선택할 뻔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것도 취소다. 이왕이면 샤인머스캣 5알을 취소하고 싶지만, 그건 이미 먹은 거라 취소가 안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파업도, 호르몬의 노예도, 아이스크림도 나약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수면 데이터까지 업그레이드해서 추석 연휴를 단단하게 지나가 볼 예정이다. 그런데 내일 점심에 아웃백 가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아웃백은 취소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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