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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Dec 20. 2023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엄마는 똥을 좋아해

봄비는 특별한 사랑표현방식을 갖고 있다. 이 사랑 표현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봄비의 사랑표현은 주로 밤 11시경에 일어났다. 남편과 내가 모두 집에 있고,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 타이밍에 주로 맞춰져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봄비는 우리 둘 모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 나를 좀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필요에 의해 생활패턴을 약간 바꿔서 오전 5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봄비는 그 시간에 같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내 곁에 머물렀다. 일에 집중한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봄비가 신이 나서 내게 뛰어왔다. 봄비는 환한 미소를 띠고 발을 구르며 말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봐! 나 잘했다고 칭찬해줘!"


그렇게 삼일을 내리 내게 모닝똥을 선사한 봄비는 누구보다 행복해보였고, 봄비의 따뜻한 선물은 나를 향한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봄비가 처음부터 이렇게 똥 싸는 것을 기쁘게 전달하거나 자랑스러워하진 않았다. 몇 년 전, 한동안 봄비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체크하는 것이 대소변이었기에 봄비가 건강한 똥을 싼 것을 볼 때마다 기쁜 마음에 며칠 동안 계속 칭찬을 해주었고, 그런 내 행동이 봄비에게는 '엄마는 내가 똥 싸는 걸 좋아해.'가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상대에 따라서 관심의 표현을 하는 말이나 행동이 하나씩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봄비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괜찮아?'라는 질문을 한다. 봄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괜찮냐고 묻기를 몇 번, 문득 반대로 내가 이 질문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당시 그 질문에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상대를 바라보기만 했었다.


내게 '괜찮냐'라고 물어주던 사람은 아빠였다.


그때는 아빠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고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아빠의 괜찮냐는 질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금에서야 아빠가 왜 그렇게 질문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괜찮아?"라고 묻는 것은 "내가 너의 안녕과 평화를 염려하고 있어."라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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