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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Dec 27. 2023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아빠는 장난감을 좋아해

봄비에게 엄마는 '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빠에게 장난감을 물어다 주면 함께 장난치고 놀아주기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보단 친구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봄비는 남편과 단 둘이 집에 있을 때가 최고의 휴식시간이라고 느낄 것이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오롯이 개인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주말 내내 나와 함께 하는 봄비는 월요일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어두워진다. 피곤과 얼굴로 싸우는 개의 모습이 보인달까. 대체공휴일 등으로 월요일까지 연이어 쉬는 날이라면 봄비의 얼굴에 이렇게 쓰여있는 것 같다.


"엄마, 회사 안 가?"


내가 근무 중일 때, 남편은 봄비의 한없이 편안한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곤 한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걸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게, '쟤는 왜 나랑 있을 땐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지?'라며 질투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


봄비는 우리 집에 처음 온 그 순간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강아지'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보호센터에서 데려와 집에 내려놓은 봄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단비의 밥을 먹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그런 봄비를 보곤 웃음을 터트리며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지금의 봄비 사진과 우리 집에 온 첫 해의 봄비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기 봄비는 우리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시간 동안 주눅 든 얼굴로 있었다. 그때의 봄비는 단순히 배가 고팠던 것은 아닐까. 눈치를 보기보단 생존의 욕구가 강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강아지가 남편의 말을 잘 새기고 익혔는지 우리와 함께 산 지 몇 개월 만에 남편의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개'가 되었다. 집은 말 그대로 개판이 되었지만 그 모습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남편의 말은 봄비가 우리 가족이 되게끔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나로 살게 했다. 결혼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유산을 하고, 세 달도 되지 않아 아빠를 떠나보낸 나는 공황장애가 왔다. 공황을 알아차리고 병원 진료를 권유한 것부터 괜찮다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것도, 조금씩 힘을 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곤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응원해 준 것도 다른 멋진 말이 아니었다. 무심하게 내뱉는 그 한마디였다.


"괜찮아.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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