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열네번째날
분명 어제 종일 건강하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공복혈당이 140mg/dl이 넘었다. 온종일 고민했다. 왜 나의 공복혈당이 120mg/dl을 넘었을까. (공복혈당은 70~100mg/dl가 정상이고, 100~120mg/dl가 당뇨 전단계로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오후 늦게 문득 '아, 내가 잠들기 전에 초콜릿 세 개를 먹었구나'하며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 극도로 피곤한 상태라 제어능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범인을 찾았다.
20대 때는 일에 지친 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가나초콜릿과 같은 판 초콜릿을 3개씩 사 와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날이 덥거나 속이 타는 날은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한 자리에서 5개씩 먹었다. 투게더 한 통도 애교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식습관, 생활습관을 고려했을 때 지금 몸이 축난 게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나이가 더 들고, 상황이 악화된 상태로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다면 더 무기력해졌을 것 같다. 지금 신경 써서 개선하면 조금은 불편해도 건강하게 중년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제 먹고 기억을 못 한 부샤드초콜릿은 최근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제품이었다. 특히 씨쏠트초콜릿을 좋아했는데, 그건 진작 다 먹고 다크초콜릿만 몇 개 남아있던 차였다. 차라리 씨쏠트 맛을 먹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라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반성한다.
요 근래 이상하게도 몸이 축축 처지고, 기운이 없고, 자꾸 졸리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다'라고 유독말했다. 월요일부터 계속 흐린 날씨 탓인가, 했는데 기압이 낮아져 공기 중에 산소 함유량이 적어 피로를 느끼는 게 맞다고 한다. 그렇게 슬며시 나의 체력저하를 외면했다.
밤이 길어지는 게, 확실히 겨울이 오고 있다. 점심은 미나리 샤부샤부를 먹었다. 이런 날씨에 얼큰한 국물이라니, 선배들의 메뉴선정이 정말 기가 막혔다. 가게는 입구를 환하게 열어놓아서 초록색 가로수가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놀러 와서 식사를 하는 기분에 괜스레 더 들떴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한 선배들은 나의 근황을 듣더니 눈가가 그렁그렁해져서 소고기를 추가로 시켜줬다. 바쁘고 힘들고 아픈 게 소고기를 먹게 해 줬다. 가끔 이럴 땐 야근에게 고맙다.
오후 내내 하품이 나왔다. 샤부샤부에 넣은 칼국수 사리를 살뜰히 먹고, 죽까지 해먹은 탓이었을까. 오래간만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었더니 몸이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점심에 비타민C 한 알을 먹고, 아르기닌을 한잔 타서 마셨지만 기운이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퇴근 직전에 간식을 꺼내먹었는데, 배가 고프기보단 피곤해서 탄수화물이 당겼던 것 같다. 맛밤도 결국 탄수화물 아닌가. 그래도 맛밤이 고구마 말랭이보단 당이 낮아서 맛밤으로 먹고 있다. 큰 맛밤을 다 먹으면 작은 맛밤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건강한 간식에 적응되면 조금씩 양을 줄여가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다.
'나는 이래서 못 먹고, 저래서 못 먹어'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몸은 아우성을 치고, 정신은 가출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사단이 생긴다. 폭식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나의 미각 세포들은 창을 들고 일어서서 '맛있는 것을 내놔라!'라고 외친다. 그러면 나는 그 저항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 가능한 건강한 간식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하다 보면 흔히 '당이 당긴다'라고 말할 때가 온다. 보통 초콜릿에는 당류와 우유가 들어가서 무설탕 프로틴 초콜릿을 찾다가, 우유가 들어가 있지 않은 제품을 발견해 기쁜 마음으로 힘들 때 먹어주고 있다. 같은 브랜드에서 나오는 다크초콜릿에 견과류가 들어간 제품도 있는데, 그 제품에도 우유, 계란이 들어가 있지 않다. 나는 우유와 같은 시설에서 제조한 제품은 먹을 수 있는 정도이기에 그나마 알레르기 유발정보에 우유, 계란이 없으면 먹는 편이다. 포카칩, 콤부차, 김치만두 등 우리가 단박에 떠올리지 못하는 제품에도 우유는 들어가 있다.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영양성분표를 보고 구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올리브영에 가서 식품코너를 구경해도 영양성분표만 본다. 의외로 젤리는 우유가 안 들어간 제품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탓에 즐기지 않는다.
사실 영양성분표를 더 열심히 보기 시작한 때는 자가면역질환과 더불어 지연성 알레르기를 앓고 난 뒤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익혀둔 영양성분표 보는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됐다. 외국어로 되어있는 영양성분표는 핸드폰 카메라 등으로 찍어서 번역을 하면 어느 정도 추정치는 알 수 있다.
저녁에는 족발을 먹었는데, 족발에도 우유가 들어갈까?라는 호기심이 일었다. 글을 쓰다 말고 족발을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우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업체마다 조리법은 달라서 들어가는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없는 걸로 하자. 쟁반막국수는 먹지 않고 족발에 상추를 싸서 먹었다. 지방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을 때 탄수화물을 함께 먹지 않는 것은 나의 일말의 양심이다. 사실 어제 소개한 운동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줬다.
이번주에 프로젝트 완료보고가 있어서 그런 건지, 오전부터 간헐적으로 상복부에 통증이 느껴졌다. 오후까지 '어라?' 하는 기분이라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는데, 자기 전이되니까 속이 답답하고 통증이 심해졌다. 얼마 전에 폭주한 것 때문에 뱃속에 가스가 차셔 속이 아픈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가스가 찼다고 하기엔 장이 건강했다. 일단은 내일 아침까지 하루정도 더 지켜보기로 했다. 회사 가기 싫어서 아픈 병이면 좋겠다. 그리고 회사도 안 가면 좋겠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