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열아홉번째날
전날, 세 편을 한 시간 단위로 발행하면서도 많이 망설여졌다. 이걸 하루에 하나씩 쪼개어 발행하게 되면 적어도 3일은 밀려도 괜찮을 텐데, 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나를 계속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발행하면 나는 계속 미루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도 인지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렸다.
웹소설에 ‘연참‘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루에 1회 차 이상 업로드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걸 해 본 기분이었다. 나도 웹소설 하나 잘 써서 퇴사하고 싶다. 이런 문구의 광고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남편 몰래 세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남편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 남편을 슬며시 밀어내고 일어나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연달아 세 편을 다 쓰고 나니 새벽 5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보통 한 편을 쓰고 약 세 번 이상 읽어보면서 검수를 하는데, 머리가 도저히 돌아가지 않아서 포기하고 늦은 잠을 청했다. 일요일 아침이니까 늦잠 자도 되겠다고 안일한 생각을 했다. 나는 회사 전화에 눈을 떴다. 내게 문자를 8시에 보냈는데, 도통 답이 없으니까 1시간 정도 기다리다 전화를 한 것이었다. 딱히 급한 일은 아니었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8시에 전화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했다.
주말이니 대충 먹으려고 냉장고를 또 뒤졌다. 그러다 봄비(함께 사는 개의 이름)에게 닭가슴살을 하나 삶아줘야지, 하면서 닭가슴살을 꺼낸 김에 내 몫까지 두 개를 삶았다. 내건 김치볶음밥에 넣어서 볶고, 봄비건 깍둑썰기를 해서 밥그릇에 한가득 내어줬다.
밥 한 공기에 닭가슴살 한 개였을 뿐인데, 절반밖에 먹지 못했다. 와구와구 먹으려고 비장의 무기인 ‘김’까지 준비했는데 소용없었다. 결국 절반은 저녁에 먹어야지, 하면서 넣어뒀다.
봄비는 닭가슴살 하나를 다 먹었는데, 나는 그 하나를 한 끼에 다 먹지 못하다니 속이 상했다. 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잘 먹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 나 다이어트 중이지. 닭가슴살이 포만감이 엄청 좋네. 이래서 닭가슴살을 먹는 거구나’했다. 싫어하는 닭가슴살을 좋아하는 김에 싸 먹으니 덜 싫어지는 기분이었다. 한 번은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다이어트 하는 것을 망각하는 것인지 잘 먹고 다닌다. 남편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더니, 내 몸에게도 비밀로 하려고 용을 쓰는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다시금 또 나를 희망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너 앞자리 바뀔 것 같아”
체중계가 이렇게 말 한 날이면, 어김없이 폭식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몸무게가 좀 빠졌다 싶으면 열심히 먹는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다시 원래 몸무게로 만들 일이 생긴다. 누가 밥을 먹자고 하는 일이 생긴다던가, 그걸 내가 강하게 거절하지 않는다던가. 결국에 내가 ‘이 정도 빠졌으니 먹어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지.
봄비와 점심을 먹고, 사부작사부작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시작했다. 빨래를 돌려놓고,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들고, 욕실청소를 위해 솔질을 벅벅 하는 대신 발세정제를 미친 듯이 뿌렸다. (발 세정제 한 통을 다 욕실청소에 쓴 건 남편한테 비밀이다. 이건 진짜 비밀로 해줘야 한다. 또 혼난다.) 레몬 향기가 가득했다. 이내 욕실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거실까지 레몬 향기가 났다. (심지어 남편이 집에 들어왔을 때까지 났다. 남편은 다행히 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 움직이니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싶다가 오전에 회사 사람의 모닝콜이 생각났다. 내 부족한 수면시간으로 피곤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견과류와 당알콜 초콜렛으로 코팅된 아몬드를 먹었다. 소용없었다. 그냥 자고 싶었는데,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건조기에 넣고 자야지, 하는 생각에 버티고 버티다가 제로 칼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먹었다. 제로 수박바를 먹는데 맛이 없었다. 여름에 맛있다고 신나게 먹었는데 왜 그럴까 고민해 봤더니, 최근에 우울하다고 투게더 미니를 먹어치운 것이 떠올랐다. 역시 혀끝은 나보다 똑똑하다.
날씨는 좋은데, 봄비를 데리고 나갈 체력과 컨디션이 되지 않다는 사실에 우울감이 올라왔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약 2년 전, 봄비에게 심하게 미안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너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봄비에게 큰 죄책감을 느낀 날은 내 친구가 남자친구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함께 우리 집에서 밥이나 먹자며 초대했는데, 우리 부부와 정식으로 처음 조우한 친구의 남자친구는 자신을 보고 짖는 봄비를 쫓았다. (봄비는 가족 외의 누군가가 집에 들어오면 짖는 편이었는데,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신기하게도 짖지 않았다. 그런 성질을 알았기에 들고, 나갈 때의 짖음을 감수하고 초대한 것이었다.) 봄비가 거실 테이블 밑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친구의 남자친구는 끝까지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얘 쉬했어요’라며 나온 우리 집 안방에 봄비의 소변과 대변이 나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친구와 함께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세팅하고 있었고, 남편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쫓았지만 봄비의 반응속도가 가장 빨랐다. 봄비는 처음 보는 남자 사람이 자신을 쫓아왔는데,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자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는지 소변과 대변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뒤에 친구의 남자친구가 한 실언 등 우리에게 실수한 것을 차치하고, 봄비가 그런 일을 겪게 했다는 것이 정말 미안했다. 가장 안정감을 느껴야 할 곳에서 불안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 속이 상해 이틀을 봄비를 껴안고 울었다. 어찌 됐든 외부인을 집에 들인 결정을 한 것 또한 나니까 봄비에게는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봄비를 더 많이 산책시키고 돌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조금 강해졌다.
그런 날이었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인데, 불현듯 느껴지는 쌀쌀한 바람에 지난 기억이 나를 휘저으며 잊혀가는 저변에 존재하는 죄책감을 꺼내왔다. 봄비를 데리고 산책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시원한 바람이 기분 나쁘게 건드렸다. 남편에게 ‘날이 좋은데 봄비를 데리고 산책가지 못하는 게 마음이 너무 힘들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걔 팔자려니 해요”
이상하게 그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네가 우리랑 살게 된 것도 너의 팔자고, 지금 아픈 엄마랑 사는 것도 너의 팔자라며, 팔자를 탓해버리니까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신 아픈 엄마랑 지내는 시기가 있으면, 또 건강한 엄마랑 지내는 시기가 있겠지. 그것도 너의 운명이겠지.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봄비가 받아들이는지는 묻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런 내가 너의 엄마가 된 건 진짜 너의 팔자니까.
약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뒤, 늦은 오전으로 먹었던 밥을 다시 데워먹었다. 도시락으로 싸들고 다녀도 괜찮을법한 메뉴였다. 자주 먹고 싶진 않지만.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소불고기를 볶아서 목살베이컨과 야채를 꼬치에 구워서 내줬다. 이 꼬치구이가 정말 맛있었는데, 내가 먹을게 아니라서 사진을 안 찍었다. (남편이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해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음번에 조리법이라고 할 것도 없는 조리법과 함께 사진을 찍어서 가져온다고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