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야기, 스무번째날
70.55kg까지 내려갔던 몸무게가 하루 만에 72.05kg으로 1.5kg이 증량했다. 무슨 일일까. 어제 내가 뭘 많이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하다가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물'이었다. 보통 회사에서 물을 많이 마시려고 노력해도 정신이 없으면 하루에 약 1L 마시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주말, 특히 일요일이 되면 '아, 토요일에 물을 안 마셨네. 회사를 안 나가니까 이 정도도 안 마시는구나'하면서 열심히 마신다. 2L짜리 생수병을 꺼내놓고 하나를 다 마시고, 좀 더 마신다. 그래서 그런 걸까, 혹시 원인이 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간 기록해 둔 몸무게를 보니까 여지없이 월요일만 되면 몸무게가 늘었다.
이제껏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병원에서 '만성탈수'로 진단받았다. 왜 언급하지 않았냐면 나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고, 특히 밥 먹을 때 국물을 같이 마셔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오랜 시간 다이어트를 하면서 든 습관 때문인지 어색해진 숟가락을 쓰는 것도, 국물 마시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나는 맹물 마시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라, 보통 차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을 선호하고 순수한 물을 섭취하기 어렵다. 그래도 노력은 하는데, 일에 치이다 보면 하루에 1L 마시면 잘 마신 정도다.
만성탈수에 대해서 기억한 후, 출근길에 만성탈수에 대해서 좀 더 찾아봤다. 만성탈수인 사람이 물을 넣으면 최대한 수분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몸이 부을 수 있다고. 나는 간헐적으로 물을 많이 넣어주니까 증상이 개선되지 않고 '이때다!'싶어 몸에서 물을 다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부지런히 물까지 마셔줘야 하니까 정말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다.
점심은 힘든 이번 주를 버텨내기 위한 몸보신을 했다. 오늘 출근한 것 대단하고, 이번 주도 잘 견뎌보자.
오후에는 PT수업이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PT수업 전에 잠시 PT센터 대표님과 인터뷰가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같이 퇴근하기로 했다. 그 시간을 고려하게 되면 브런치가 발행되어야 하는 11시까지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남은 일은 내일의 내가 모두 처리할 거야'라며 다 던져두고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1시간의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차를 한 잔 마시며 글을 작성하고, 발행예약을 완료했다. 급작스레 생긴 일정이지만,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그리고 퇴근 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기분도 새로웠다. 보통 집 거실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데, 카페에서 작은 무선 키보드 하나만 올려놓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멋져 보였다. 차가 아니라 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이 많이 찌고는 친구들이 사진 찍어준다고 권하는 것은 모두 거부하고, 가끔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도 했다. 그런 내가 인터뷰이가 되겠다고 했다. 운동선생님의 부탁에 '필터 필수'라는 조건으로 약속까지 다 잡아놓고 고민했다.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PT센터 대표님을 만나고 저 세상 기억이 되었다. 그분은 나라는 사람을 만나서 약 10분 정도 촬영하기 위해서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읽고, 담당 선생님께 나의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 질문을 준비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운동을 배우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대화를 나누며 내가 느낀 대표님은 진심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시고, 지도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최근에 만나고 '저 사람 참 행복해 보이고, 좋은 사람 같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에세이를 출판하는 사람, 옷을 사랑해서 더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본인이 직접 공부하고 뛰어다니는 사람, 보이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여 두 다리로 잘 서고 두 팔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에 일이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닮아가고자 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내가 닮아가는 사람과 만나 저녁을 먹었다. 하이디라오에서 66분짜리 대기를 시작했다가 배고픔에 뛰쳐나가서 양꼬치와 양갈비를 먹었다. 우리가 식당에서 나오니 예상 입장시간이었다. 오늘도 우리의 식사는 30분 컷이었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 이슬비가 내려 비에 젖은 이파리 냄새가 났다. 내가 어릴 적, 외할머니네 집에 가서 창문을 열면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할머니네 집 작은 방 창문을 열면 넓지 않은 밭이 보였다. 아침 이슬에 젖은 풀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어서 창틀에 매달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그 공기를 느끼곤 했다. 그 냄새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 새벽 서리가 내려 풀에 젖은 물 냄새. 물과 풀이 만나면 나는 자연의 냄새. 이 냄새는 나에게 포근한 기억을 가져다준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3시간을 걸려 도착한 외할머니네에서 투박한 식사를 둘러앉아 먹고, 근처 이모네 집에 간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며 아빠와 빌려온 만화책을 보면서 누워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게 만들어주는 풀 냄새가 나는 집에 남편과 손잡고 돌아오며 따뜻한 일상에 감사함을 진하게 느꼈다.